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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13년. 서로의 관점에서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그 여자 그 남자의 다.다.다(다르게 들리지만 다르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입니다. 그 남자 이야기는 남편 지용민 시민기자가, 그 여자 이야기는 아내 박보경 시민기자가 썼습니다. - 기자 말

[그 남자 이야기] 갑작스런 두 아이의 휴업, '메르스 이산가족' 되다

8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삼성서울병원이 정문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병원을 빠져 나가고 있다.
▲ 삼성병원 앞 마스크 행렬 8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삼성서울병원이 정문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병원을 빠져 나가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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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주말, 아이들과 함께 경기도 인근 처갓집에 갔다. 토요일 오전에 출발해 일요일 저녁에 귀경할 계획이었다. 아침도 거른 채 이른 아침에 출발했는데 길이 막혔다. 오후 1시에 처갓집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은 뒤 낮잠을 잤다. 꿀잠에서 깬 오후부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잠에서 깨니 놀라운 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는 뉴스였다. 순간 뒤통수를 강타당한 느낌이 들었다. 나와는 먼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막연했던 걱정이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불안감 속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무렵, 둘째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시계를 보니 오후 8시였다. 토요일 오후 내내 유치원 선생님들의 회의가 있었던 모양이다. 다음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휴원이라고 안내해주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두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일개 유치원에서 토요일 저녁까지 회의를 하면서 휴원을 고민하는 상황인데, 정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다른 의문은 첫째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가 하는 답답함이었다.

잠시 후, 아내의 단체카톡방(단톡방)에 불이 났다. 첫째가 다니는 반 엄마들의 단톡방이다. 엄마들은 토요일 밤이었음에도 이리저리 정보를 수집하느라 분주했다. 한 엄마가 다음주 우리 지역 휴교 명단을 어디선가 입수했다(다음날 확인하니 그 정보는 정확했다). 큰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빠져 있었다.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부터 나는 큰 애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계속 전화를 걸었다. 휴업 계획이 있는지, 관련해 회의라도 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오전, 오후 거듭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이번에도 아내 단톡방에 소식이 올라왔다. 큰 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이미 휴업은 결정됐지만 운영위원회를 거쳐서 학부모에게 공지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의 말은 정확했다. 오후 3시 운영위원회가 끝나자 아내의 전화로 휴업을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잠시 후, 경기도교육청에서 일주일 내내 유치원, 초등학교 등의 강제휴업을 결정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두 아이 모두 휴업 대상 기관이었다.

나와 아내는 직장을 다닌다. 두 아이가 다니는 교육기관의 일주일 동안 휴업이 확정됐다. 곧이어 아이들이 다니는 태권도, 피아노학원 등에서도 휴관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두 아이를 일주일 동안 어떻게 돌볼지 막막했다. 메르스 비상사태인 것도 알겠고, 아이들을 위한 휴업인 것도 알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돌봐야 한다는 말인가. 졸지에 메르스 이산가족이 된 맞벌이 부부들은 무기력했다. 그리고 화가 났다.

안심하고 믿어달라는 정부에게... "도대체 원인이 뭔가요?"

경기도 평택시에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대규모로 발생한 가운데 8일 오후 평택역앞 번화가에서 한 어머니가 아이의 마스크가 제대로 착용되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 '마스크 제대로 써야지' 경기도 평택시에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대규모로 발생한 가운데 8일 오후 평택역앞 번화가에서 한 어머니가 아이의 마스크가 제대로 착용되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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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간 처갓집에 아이들을 두고 부부만 귀경했다. 애초 1박 2일만 할 계획이어서 필요한 옷가지는 택배로 보내주기로 하고 올라왔다. 큰 아이가 마스크 두 개를 어디선가 가져와서 나와 집사람에게 주었다. 일요일 저녁부터 우리 부부는 마스크를 했다.

일요일 밤 지하철에도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마주 앉은 10여 명의 사람 중 마스크를 한 사람은 젊은 여성 두 명 뿐이었다. 다른 곳을 둘러봐도 대략 20% 정도만이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옆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메르스 관련 뉴스만 보고 있던 아내에게 물었다.

"학교도 집단 휴업하는 상황인데 마스크를 쓴 사람은 20% 정도밖에 안 되네. 그런데 마스크를 쓰면 정말 효과가 있나? 정부에서는 공기전염이 안 된다고 했잖아."
"글쎄… 잘 모르겠어. 그건 그렇고 아이들 없는 동안 영화가 보고 싶어. 그동안에 영화를 너무 못 봤어."
"메르스는 어쩌고? 마스크 쓰고 극장에 가자고?"

마스크를 쓴 채로 몇 시간 다녔더니 갑갑하고 숨 쉬는 것도 불편했다. 문득 궁금했다. 이걸 쓰면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닌지. 메르스는 공기전염이 되는 건지 아닌지. 확진환자가 나오고 우리나라의 메르스 발병률이 메르스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2위라고 하던데, 우리는 이 병에 대해서 뭘 알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늦은 시각에 집에 도착했다. 뉴스를 검색하던 중 '메르스 확산일로, 박 대통령 미국순방 예정대로?'란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맞아, 박 대통령이 미국에 간다고 했었지. 유치원, 초등학교 등이 집단휴업하는 등 나라가 비상시국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간다는 말인가?

두 아이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아이들은 갑자기 엄마 아빠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기나 할까? 도대체 우리 국민이 이 정부에게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화가 났다.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졸지에 '메르스 이산가족'이 된 나의 불만은 폭발했다. 

이번 경우는 냉정하게 돌아봐도 정부탓이다.

[그 여자 이야기] 휴교 그리고 엄마들의 한숨 "아이들은 어쩌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메르스 대책으로 8일부터 3일간 강남-서초 일괄휴업이 시작된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초증학교 교실에 학생은 등교를 하지 않고 출근한 교사만 업무를 보고 있다.
▲ 메르스 예방 선생님만 등교한 교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메르스 대책으로 8일부터 3일간 강남-서초 일괄휴업이 시작된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초증학교 교실에 학생은 등교를 하지 않고 출근한 교사만 업무를 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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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서둘러 친정집으로 향했다. 친정엄마의 생신도 있었고, 주말이나마 숲 속에서 뛰어 놀게 할 요량으로 부지런을 떨었던 것이다. 시원한 숲 속에서 수박도 쪼개 먹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여유로운 오후를 지내고 난 저녁 무렵, 남편은 내게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우리 동네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뭐라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해??"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건 아이들이었다. 아직 아이들 관련한 소식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나쁜 뉴스를 들으며 아이들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러나 저러나 애들 학교는 어떡하지?"라고 혼자 중얼거릴 무렵 작은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내용은 수요일까지 휴원한다는 것. 상황을 지켜보고 휴원을 금요일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역시 발 빠른 대처였다. 그럼 큰 아이 학교는 어떻게 되는 걸까? 서둘러 같은 반 엄마들이 모이는 단체카톡방을 열어보았다. 내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엄마들의 고민의 목소리는 많이도 쌓여있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휴업을 예정한 학교의 명단이 공유됐는데 그중에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없었다. 그렇지만 엄마들은 우리 학교도 휴업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렇구나... 이런 상황에 교실에 아이들 모아두는 것도 위험하겠지' 싶었다.

그러면 이제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진짜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오전 시간에만 일을 한다는 조건으로 생협 사무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가 3개월이 되었다. 일요일 저녁까지 사무국에서 아무 연락이 없으면 어김없이 출근을 해야 할 텐데, 그럼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SNS를 가득 메우고 있던 엄마들의 고민도 나와 같았다. 맞벌이를 하는 엄마들이 당장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다는 것이다.

운이 좋게도 우리는 친정집에 와 있었으니, 부모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들을 며칠만 봐달라고 부탁드리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문제였다.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곳에 있으니 전염의 위험도 줄어들 테고, 제일 믿음직스러운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봐주신다니 안심이 되기도 하였다.

갑작스런 메르스 휴교, 집에 혼자 남겨진 아이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메르스 대책으로 8일부터 3일간 강남-서초 일괄휴업이 시작된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초증학교 돌봄 교실에 한 학생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메르스 대책으로 8일부터 3일간 강남-서초 일괄휴업이 시작된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초증학교 돌봄 교실에 한 학생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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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휴업을 알리는 문자메시지는 일요일 오후 늦게 왔다. 학교에서 보내는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 휴업한다는 엄마들의 말은 있었지만 학교에서 보내는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 괜스레 마음이 불안했다. 큰 애를 집으로 데리고 가야 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보낸 메시지는 휴업을 알림과 동시에 부득이하게 학교에 와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돌봄교실을 운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메시지를 보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 와중에 돌봐줄 사람이 없어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니 같은 엄마로서 속상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월요일이 되고 평소와 다름없이 사무국으로 출근을 했다. 생협 사무국에는 모두 8명의 여성이 함께 일하고 있고, 그중에 초등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엄마는 나를 포함해 4명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자마자 아이들을 물었다.

"아이는 어떻게 하고 나오셨어요?"
"어쩌긴 방법이 있어야죠. 집에 혼자 두고 나왔어요. 이게 무슨 난리인지."

나를 제외한 3명의 엄마는 아이들을 집에 혼자 두고 나왔다고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들이라 몇 시간 정도는 혼자 있을 수 있으니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번 주 내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참 못할 짓이구나 싶었다. 애들만 두고 나오는 엄마의 마음은 또 얼마나 불안하고 안타까웠을까?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메르스'라는 병이 언론에서 주요뉴스로 다뤄지기 시작한 후로 18일이 지난 어느 날 정부는 메르스의 주요 감염지인 병원의 이름을 공개했다. 그동안 엄마들은 이 전염병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정확한 내용을 알고 싶어 정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지 못했다. 솔직히 앞으로도 정확하고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문득,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엄마 생각에 울지나 않는지. 친정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무척이나 보고 싶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메르스, #휴업, #아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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