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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꽃, 시든 꽃이 이별이 아쉬운 듯 서로 붙잡고 있다.
▲ 낙화 떨어진 꽃, 시든 꽃이 이별이 아쉬운 듯 서로 붙잡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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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혔다. 이 열매가 익기까지 떨어지는 열매도 있을 것이다.
▲ 열매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혔다. 이 열매가 익기까지 떨어지는 열매도 있을 것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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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꽃이 사로를 붙잡고 있다.
가는 꽃들이 서로 그리워하듯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붙잡고 있다.

꽃이 떨어진다고 다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그냥 떨어져버리는 꽃도 있으며, 시들어버리는 꽃도 있다. 꽃 피었다고 모두 열매를 맺는다면 열매의 무게로 가지가 부러져 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너무 열매가 많으면 실한 열매를 얻기가 힘들다. 그러니 떨어진 꽃에게 남은 꽃, 열매 맺은 꽃은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대체로, 꽃이 진 자리라야 열매가 맺는다.
이건 진리다. 꽃이 지지않고 열매가 맺힌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므로.

작은 꽃이 지자 꽃보다 훨씬 큰 열매(씨앗)주머니가 열렸다.
▲ 소루쟁이 작은 꽃이 지자 꽃보다 훨씬 큰 열매(씨앗)주머니가 열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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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루쟁이는 볼품없는(?) 꽃을 피운다.
그리고는 열매(씨앗주머니)를 다닥다닥 줄기마다 가득 달고는 마치 제가 꽃인냥 치장을 한다.

종기나 부스럼 등 피부병에 좋다는 이야기에 어릴적 버즘이 피면 소루쟁이 이파리를 짓이겨 바르곤 했었다. 그래서 나았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부작용때문에 고생한 기억도 없다. 열매가 있으면 반드시 꽃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불꽃놀이를 하듯 붉은 꽃, 그 꽃이 진자리마다 열매가 맺힌다.

하얀 오미자꽃이 하나 둘 시들어갈 무렵 (5월 19일), 송글송글 작은 열매들이 맺히기 시작한다.
▲ 오미자 하얀 오미자꽃이 하나 둘 시들어갈 무렵 (5월 19일), 송글송글 작은 열매들이 맺히기 시작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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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꽃이 시들면서 송글송글  맺혔던 열매가 보름이 지난 날(6월 5일) 제법 오미자의 꼴을 갖췄다.
▲ 오미자 5월 19일 꽃이 시들면서 송글송글 맺혔던 열매가 보름이 지난 날(6월 5일) 제법 오미자의 꼴을 갖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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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과 6월 5일, 대략 보름만의 변화다.

꽃이 막 시들 즈음에는 송글송글 모래알만하던 것들이 제법 오미자의 모양새를 갖췄다. 이제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조금 더 커진 후에는 가울이 오기 전까지 속을 익혀갈 것이다. 그 속에 다섯가지 맛을 채우려면 여간 바쁘지 않을 것이다.

아마 꽃이 지는 그 순간, 시드는 순간에 담은 맛은 쓴맛이 아닐까 싶다.
이른 봄 햇살에 좋아라 피어났더니만, 화무십일홍이라고  봄날이 다 가기도 전에 져버려야만 하는 운명, 그 맛이 얼마나 썼을까?

붓꽃이 시들어 가며 붓끝으로 그린 그림은 열매였다.
▲ 붓꽃 붓꽃이 시들어 가며 붓끝으로 그린 그림은 열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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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게 고개숙여 피어나던 꽃도 열매를 맺으면 당당하게 하늘을 향한다.
▲ 매발톱 수줍게 고개숙여 피어나던 꽃도 열매를 맺으면 당당하게 하늘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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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 한 잎 오래 붙들고 있으라 제대로 씨앗을 맺지 못했다.
▲ 할미꽃 할미꽃 한 잎 오래 붙들고 있으라 제대로 씨앗을 맺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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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꽃과 매발톱과 할미꽃의 열매(씨앗주머니)는 꽃이 피었을 때와는 다르게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다. 붓꽃은 본래부터 하늘을 향하던 꽃이니 그렇다고 해도, 매발톱이나 할미꽃은 고개를 푹 숙이고 피어나는 꽃들이 아닌가?

꽃 피어날 때에 그렇게도 수줍었던 이유는 제 안에 있는 꽃술이 너무 약해서 비바람에 상할까 싶어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씨앗을 날릴 즈음에는 조금이라도 더 높이 있어야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날아갈 것이니 그렇게 까치발 들듯이 고개를 들었을 것이다.

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꽃술만 남았다. 그리고 꽃이 남기고 간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 큰애기나리 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꽃술만 남았다. 그리고 꽃이 남기고 간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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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닥다닥 피어났던 냉이꽃이 씨앗도 다닥다닥 맺었다.
▲ 냉이 다닥다닥 피어났던 냉이꽃이 씨앗도 다닥다닥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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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살포시 땅을 향한 큰애기나리 같은 열매도 있고, 거반 땅에 눕다시피한 냉이도 있다. 참으로 신비스럽다. 제가 피어나는 모습과 피어나는 성격에 맞게 열매들이 맺혀있다.

큰애기나리는 커다란 이파리에 숨어 꽃을 피운다.
제대로 햇살과 대면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이파리를 통과한 은은한 햇살에 고개를 숙이고 피었다가 지는 꽃이다. 열매 역시도 햇살과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 그들은 숲속 그늘진 곳을 좋아한다. 이미 열매를 맺을 때부터 햇살과 직접 대면하는 일을 피하는 것이다.

냉이는 흙 속에 씨앗을 숨겨둔다.
그리고 이른 봄 씨앗을 틔울 때는 한꺼번에 틔우지 않는다. 씨앗을 저축해 두었다가 조금씩 조금씩, 먼저 피어난 것들이 시절을 다하고 나면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냉이는 봄나물로 그토록 살신성인을 해도 늘 텃밭어귀에 넘쳐나는 것이다.

꽃이 진 자리라야 비로소 열매가 맺히는 자연의 신비를 보면서, 무엇하나 희생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모든 것을 다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본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놓아야 한다. 빈 손만이 뭔가를 잡을 수 있다.


태그:#오미자, #씨앗, #열매, #소루쟁이, #매발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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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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