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서울 강남역 일대. 하얀 마스크를 낀 시민들이 종종 걸음으로 출근길에 나섰다. 28도까지 오른 초여름 날씨에 시민들의 입과 코가 마스크로 가려져 갑갑해보였다. '만원 버스' 속 마스크 낀 시민들의 얼굴에도 짜증이 묻어나왔다. 정부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아래 메르스) 초기 대응 실패가 시민들의 표정에 고스란히 옮겨져 있는 듯 했다.

28도에 마스크 낀 시민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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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스 공포에 퇴근길 발걸음 재촉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의심 환자 급증으로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3일 오후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에서 시민들이 메르스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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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적으로 달려들어 3차 감염이 없게끔 하겠다"던 보건당국의 약속은 거짓이 돼버린 지 오래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까지 메르스 감염자는 30명, 감염 의심자는 모두 398명으로 3차 감염자는 3명이다.

메르스는 지난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견된 뒤 중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던 남성이 지난달 20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기 시작한 뒤로 대한민국에는 메르스 공포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서울시내에서 만난 시민들은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스스로 안전을 챙기는 모습이었다. 또 보건 당국의 미흡한 대처를 질타하며 국민적 우려에 정확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노인들은 지금의 우려가 언론에 의해 조장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강남역에서 일곱 살 딸과 함께 마스크를 끼고 있던 김진철(38)씨는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가 시민 불안을 가중시키는 것 같다"면서 "정부를 더 이상 믿을 수 없고, 가만히 있지 않기 위해서, 최소한의 대응을 위해서 마스크를 썼다"고 말했다. 이어 딸의 마스크 상태를 확인한 김씨는 "메르스 공포 속에서도 국민 스스로 알아서 자기 몸을 돌봐야 한다"면서 "정부는 국민에게 해주는 일도 없이 공포만 조장하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남역에서 만난 대학생 김영선(23)씨는 "어젯밤에 갑자기 열이 나서 메르스일까 걱정이 돼서 일단 마스크를 샀다"면서 "버스에서 옆 사람이 기침을 하면 화들짝 놀란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정부가 메르스 확산에 대해 걱정말라고 했지만 3차 감염자까지 나와서 불안감이 커졌다"며 "국민들에게 제대로 이 상황을 설명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전성희(36)씨는 "날씨도 더운데 마스크를 써야 해서 더 답답하다"며 "정부의 대처 때문에 국민들이 더 큰 피해를 본다, 빨리 안정화될 수 있도록 정부가 대응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스크 2배·손세정제 17% 판매 증가..."단체 구입도 고려"

시민들의 예방 활동에 편의점과 약국 등에서는 마스크와 손세정제 구매가 늘어나고 있다.  또 마포 일부 지역에서 손소독·손세정제 품귀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메르스 첫 발병 환자가 나타난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1일까지 마스크 판매량은 전년 대비 두 배 이상(111.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손을 청결하게 하는 손세정제와 물티슈 판매도 각각 17.8%, 29.3% 증가했으며 구강청정제도 16.8% 많이 팔렸다.

A편의점 종각역점에서 마스크를 구매하던 직장인 안윤희(33)씨는 "회사에 갔더니 많은 분들이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저도) 쓰기로 했다"며 "회사에서는 단체로 구매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아무개(40) 점장은 "(메르스 발병 이후 마스크 구입이) 봄철 황사나 초미세먼지로 경보가 발생할 정도로 판매되고 있다"면서 "주로 배달부나 택배 기사 등 야외 활동이 많은 이들이 마스크를 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ㄱ약국의 약사 선영호(44)씨는 "공기 중 미생물 전파를 막는 '엔(N)95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는 없다"면서 "시중에 파는 일반 마스크로도 충분하며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병원 면회를 자제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서울 대치초 등 네 곳 휴업... 서울시교육청 대책반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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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치초, 메르스 예방 휴업 결정 3일 오후 메르스 확산으로 인해 감염 예방을 위해 임시 휴업을 결정한 서울대치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인근 중학교 학생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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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서울시내 네 곳의 학교가 휴업을 결정했다. 집단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이날 오후 6시 현재까지 서울 대치초등학교와 인근 대곡·대현초, 서울 중구 예원학교가 오는 4일과 5일 이틀간 휴업을 결정했다.

대치초 관계자는 "학교 인근의 아파트에서 50대 격리환자가 나왔고 음성 판정을 받았다"면서 "학생들의 1/3이 이 아파트에 거주함에 따라 학부모들의 메르스 확산에 대한 우려가 많아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쳐 휴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학교 학생과 관련된 환자는 아무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대치초에서 만난 학부모 이아무개(37)씨는 "(메르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옮겨간다고 하니까 학부모들이 겁이 나서 휴업을 건의한 것으로 안다"면서 "휴업 뒤 주말을 지내본 다음에 메르스에 대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각 학교 내 감염병 대책 상황실을 구성해 집단 감염에 대비하기로 했다. 상황실은 교육부, 서울시 등 관련 기관과 긴밀히 협조해 상황 점검해 위기단계에 따른 휴교와 휴업기준 마련, 단체 활동 자제나 금지 여부 결정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또 시교육청은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천병철 교수를 단장으로 하는 대책상황실 자문단도 구성했다.

'고위험군 노인'들은 상대적 느긋한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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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피해 나무그늘 아래서 휴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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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정오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는 60, 70대 이상의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공원 내 100여 명의 중 마스크를 쓴 사람은 2명뿐이었다. 강남과 인근 종각역 등 인근 거리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메르스로 인해 숨진 2명은 50대와 70대로 고위험군에 속해 있던 이들이다. 보건당국은 50대 이상의 격리환자를 고위험군으로 파악하고 있다.

공원 내 정자에 앉아 있던 김웅연(78)씨는 "정부가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은 맞지만 이후 대응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면서 "언론이 이번 사고에 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닌지 싶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메르스와 비슷하다는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나 에볼라 바이러스의 공포가 뒤덮을 당시에도 비슷한 분위기였다"고 덧붙였다.

성아무개(68)씨도 "TV를 통해서 메르스 전파 상황은 지켜보지만 이곳 사람들은 큰 걱정을 안 하고 있다"면서 "비가 온 뒤 더위가 주춤하면 메르스 전파도 줄어들지 않겠나, 기다려 보자"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오후에서야 메르스 종합대응 컨트롤 타워를 구축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연 뒤 나온 후속 조치다. 지난달 20일,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딱 2주 만에 나온 종합적인 대응이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