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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공식포스터.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공식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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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하라, 더 깊은 잠에 빠지게 하라."

이 남자의 잠언, 유혹적이다. (지젝의 '억압적 탈승화'란 개념을 빌려와) 세상이 그렇다고 격렬하게 믿고 있다. 탈근대의 자본주의 하에서 개인들이 부지불식간에 처하게 되는 현실 혹은 그 달콤한 유혹. 그렇게 내가 아닌 우매한 '저들'은 그렇게 잠들어 있고 또 계속 잠들게 할 수 있다고도 믿는 이 남자, 한정호는 누구인가. 

언뜻 '김앤장'을 떠올릴 만한 한국 최대 법무법인 한송의 대표 변호사인 그는 정재계를 좌지우지하며 총리를 만들어 내는 권력의 중심축이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는 품격 있는 1% 고위층이자, 해외계좌로 빼돌린 수천억을 아들의 명의로 남겨 둔 힘 있는 가장인 동시에 노심초사 탈모를 걱정하며 소싯적 연정을 품었던 지영라(백지연 분)에게 추파를 던지는 47세 남자다.

그러나 결국, 그는 "손수 지은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됐다. 아들, 딸도, 손자와 며느리도 떠나고, 수족 같던 고용인들도 등을 돌렸다. "당신은 이 집안의 모후, 나의 중전이야"던 아내마저도. 남은 것은 덩그러니 휑한 궁궐 같은 한옥 뿐. 2일 종영된 SBS 30부작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아래 <풍문>) 마지막회의 세계관은 명료했다. '어찌하여 '귀족' 한정호(유준상 분)의 세계는 분열 혹은 붕괴되어 갔는가.' 그 결말 아래로 '인간'과 '사랑', 그리고 '연대'란 주제도 선명하게 아로 새겼다.

대한민국 1% 상류층에 대한 철저한 풍자

<풍문으로 들었소>를 연출한 안판석 PD.
 <풍문으로 들었소>를 연출한 안판석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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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계몽주의로 비쳐지며 열린 해피엔딩이란 볼멘소리도 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판석 감독과 정성주 작가 콤비는 한정호에게서 주변인 모두를 빼앗았다. 불과 한 회 전만해도 호기롭게도 총리 인선에 관해 이런 말을 뱉었던 그다.

"한때는 후보자 위장전입만으로 온 나라가 공분에 들끓었지. 헌데 이젠 그쯤은 당연한지 알아. 부동산 문제, 군대 문제도 그냥 넘어가 줘요. 다 이 나라 1%들이 하는 짓이라 분노하기 보다는 선망하지. 들어봤나? '계몽하라, 더 깊은 잠에 빠지게 하라.' 한때 얄팍한 교양과 지식에 빠졌던 애들이 다 자고 있어요."

정성주 작가가 박근혜 정부 들어 각인된 (법조계 출신이 다수인)'총리 잔혹사'를 반영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총리 관련 에피소드들은 현실 풍자의 리얼하고도 '고급진' 버전이었다. 그 중심엔 물론, 까고 보니 '비리종합선물세트'와 같은 후보자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쓰레기 같은 인간이지만 통과시켜야 돼"라며 '공부'를 시켜주며 빠져나갈 논리를 만들고 야당 의원들까지 회유하라 지시하던 한정호가 자리했다.

그렇게 한정호의 상반된 일과 가족사는 부와 권력은 유지했으되 견고했던 자신만의 성채가 붕괴되는 과정이었다. 한정호 부류를 혐오스러운 듯 연민을 담아 딱하게 바라보는 작가와 연출자의 세계관이 담겨있다 랄까. 그 대척점엔 물론 '새로운 세대' 서봄(고아성 분)과 한인상(이준 분)이 서 있다.

'괴물'과 같은 시아버지에게 도망친 서봄(고아성 분)과 장고 끝에 수천억 유산(인 동시에 비리 자금)을 마다하고 아내와 아이, 그리고 또 다른 (처가)가족과 공동체에 안착한 한정호의 스무 살 아들 한인상(이준 분). '한정호 월드'의 붕괴가 <풍문>의 거시적인 스토리의 궤적이자 재미 요소였다면, 서봄과 한인상의 선택과 성장은 체제의 균열과 어렴풋한 희망이란 주제를 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해 보였다. 공동체 완성과 연대라는 이름의 희망 말이다.

현실적인 블랙코미디와 멜로드라마의 황금률

'하룻밤 풋사랑에 아이를 출산하게 된 고등학생 서봄과 한인상, 그 둘을 둘러싸고 전혀 상반된 계급의 두 집안이 겪게 되는 소동과 갈등.'

<풍문>의 초반부를 거칠게 요약하면 이쯤 될 것 같다. JTBC에서 만든 <밀회>로 시청률과 비평 모두를 잡은 안판석·정성주 콤비가 대중성을 목표로 삼았나 싶었다. 아이 아빠인 한인상이 자신의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시작한 <풍문>은 인사를 하러 간 시댁에서 서봄이 아이를 낳는 대소동극으로 출발하면서 여느 지상파 드라마 못지않은, 중장년층까지 끌어들일 흥미로운 소재를 자랑하며 시작했었다.

그러던 드라마가 회를 거듭할수록, 대한민국 1%로 법조계 귀족 집안과 중산층에서 더 몰락한 평범한 집안의 대립이나 스무 살 커플의 닭살 돋는 연애나 예상 가능한 고부갈등, 이 모든 것과 결별하는 스토리와 구성으로 탈주해 버렸다. 

안·정 콤비가 누구던가. 이미 희대의 '찌질남' 캐릭터 장진구를 낳은 <아줌마>를 필두로 강남 학원가와 상류층의 민낯을 폭로하는 <아내의 자격>과 예술대학의 부조리와 촘촘해서 더 역겨운 갑을관계의 비인간성을 조망한 <밀회>의 그들이 아니던가.

<풍문으로 들었소>의 한 장면. 드라마의 한 축을 이루는 고용인들의 모습.
 <풍문으로 들었소>의 한 장면. 드라마의 한 축을 이루는 고용인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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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의 기운을 머금은 <풍문>은 30회로 늘어났지만 집중력은 더 상승했다. <밀회>의 대중적(이면서 주제와 맞닿아 있는) 코드가 '불륜'이라면, <풍문>의 그것은 '십대의 출산'이었을 터. 그러나 정성주 작가는 작품 전반을 통해 그래야만 했다고 강변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더 순수하고 그래서 더 흡입력과 변인이 많은, 그리하여 '괴물'과도 같은 혹은 그 '괴물'에게 물들어 가는 어른들과 다른 선택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서봄과 한인상 세대일지 모른다고 말이다. <밀회>에서 그 자리는 천재예술가인 이선재(유아인 분)의 몫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인상과 아내 최연희(유호정 분), 그리고 그 주변인물이 '직유'하는 법조계와 상류층 군상들의 묘사는 여전히 탁월했다. 부를 상속받은 한인상이 "그 시절 가난과 지금 가난과는 달라"라며 서봄과 한인상에게 "명료한 세계관을 심어주세요"라고 말 할 때, 한인상은 작금의 보수층의 논리를 대변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그리고 논리는 그가 설계하는 총리 인선 과정처럼 한국 사회의 권력층과 정재계를 작동하는 과정과도 여과 없이 맞물렸다. 재벌가와 의학계를 대변하는 최연희의 투자클럽 친구들 역시 갑남을녀와도 같은 시청자들에게 그들의 시선과 현실을 엿보게 하면서 때로는 조소하고 때로는 한탄(?)할 수 있게 했다. 품위를 유지하는 선에서 손자를 예뻐하고, 부부관계를 유지하려는 한정호 부부가 대표적이다. 그렇다. <풍자>는 일견 블랙코미디 아니던가. 

그러나 여기에 그쳤다면 <밀회>의 답습이나 복습과 비슷했었을 터. <풍문>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갑을관계'가 화두로 떠오른 이 시대, 그러나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는 분석은 평범하다. 오히려 <밀회>는 한인상 일가와 그 주변 상류층을 통해 뿌리 깊은 부와 권력의 축적한 그들이야말로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갑'이라는 계급론을 공고히 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계급을 욕망하던 서봄의 아빠나 언니는 물론 양비서를 비롯한 고용인들의 복잡한 관계와 속내까지 묘파해냄으로써 복잡다단한 인간들의 욕망까지 자연스레 들춰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풍문> 마지막회가 낯설어 보였다면, 한정호를 버리고 서봄과 같이 "나 다운" 주체적인 삶을 선택한 고용인들과 서봄 가족의 공동체가 점점 TV 속에서, 매체 보도에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결국 <군주론>을 두고 논쟁하던 한정호와 서봄처럼, 무엇을 보느냐와 무엇을 선택하는 것은 각자의 몫 아니던가.

<밀회>를 뛰어 넘는 안판석-정성주의 걸작 

멜로드라마는 종종 계급 갈등을 재현하고, '성정치학'의 주요한 기제로 활용돼 왔다. 영화 <부르주아의 은밀한 유혹>으로 유명한 독일의 거장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가 대표적이다. 영국의 '좌파 대표선수' 켄로치 감독 역시 <다정한 입맞춤>을 통해 파키스탄 2세 남성과 영국인 여성의 사랑을 통해 인종과 계급 갈등 속 사랑을 문제적으로 그린 바 있다. 한국 방송가에서 이러한 멜로드라마의 전형을 구축해 가고 있는 안·정 콤비는 <아내의 자격>과 <밀회>를 넘어서 <풍문>으로 한 걸음 훌쩍 더 나아갔다.

심지어 한국영화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의 미장센에 오마주를 바치려는 듯, (한정호의 아래층과 자식 세대의 위층으로 나뉜)가옥 구조나 형태가 주는 은밀하고 이중적인 분위기를 한층 강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물과 관계 묘사는 한층 더 날카로워졌고, 현실 풍자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온리원'이며, 한정호의 계몽주의와는 격이 다르게도 꾸준하게 '세대론'에 천착해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발견해 나가려는 중이다.

그리고 하나 더, 서봄과 한인상이 한정호의 비리와 맞서게 되면서 고용인들의 파업에 연대하는 대목은 한국 드라마 역사에 있어 '전무후무한 장면'도 선보였다. 한정호가 관계한 기업 노조의 과거 파업과 붕괴, 그리고 현재의 법적 투쟁을 민주영 캐릭터와 결부시켜 부차 줄거리로 배치하기도 했던 정성주 작가.

정성주 작가는 이와 관련해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고용인들의 파업 과정과 심리적 연원을 세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왜 고용인들이, 노동자들이 일터와 생명을 걸고 투쟁할 수밖에 없는가를 유추할 수 있게 자연스레 녹여낸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고용인들의 변화상을 주목했다면, 마지막회의 (희망이 반영된)그 공동체와 연대가 그리 개연성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공감할 수 있으리라. 물론, 조연 캐릭터들이 '제2의 한송'이란 이름하에 뭉치며 개설한 변호사 사무실은 조금 많이 나아갔는지 모르겠지만.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마지막 화면은 이렇게 '끝'이란 글자로 맺음했다.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마지막 화면은 이렇게 '끝'이란 글자로 맺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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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무너져 내린 '한정호 월드'는 겉으론 그 성채와 권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최연희의 투자클럽 멤버들 역시 더 큰 비리에만 엮이지 않는다면 독야청청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씩 균열을 보이는 그 성 안에 자식들은 없다. 혹은 그 자식들이 자꾸만 품을 벗어나고자 한다. <풍문>은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한다. 드라마 속에서 독야청청한 그들까지 개과천선시킨다면 그야말로 판타지스럽지 않았겠는가. 

블랙코미디와 멜로드라마의 장점을 한국적으로 승화한 <풍문>은 한인상이 과연 서봄과 함께 어떻게 성장하게 될까를 궁금하게 만들며 마무리됐다. 그러한 궁금증을 품게 만드는 열린 드라마가 결국은 '좋은' 드라마다. 혹자들은 시즌2를 염원하지만, 아니다. 안판석 감독과 정성주 작가의 차기작으로 50부작 드라마가 제격이다. 

<유나의 거리> 김운경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좀 더 긴 호흡으로 큰 개별 사건보다 인물의 성정과 변화에 애정을 기울이는 그런 드라마 말이다. 자식들을 뺏긴(?) 한정호는 "너희는 (저들에게)세뇌 당한 거다"라며 침통해했다. 그 반대로 우리는 어느새 안판석, 정성주 콤비의 드라마에 세뇌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막과 광고까지 지나간 마지막 화면을 그 가옥의 미장센과 함께 '끝'이란 글자로 끝내버린 그 '쿨함'과 지적 허세(?)를 포함해.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풍문으로들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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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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