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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르륵 잘도 섭니다.
▲ 한줄로 줄서기 쪼르륵 잘도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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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어린이날·어버이날을 앞두고 외가에 가족들이 뭉쳤습니다. 좋은 날씨에 집 안에만 있을 수는 없고 외가 근처 연천 적곡리 구석기 체험장을 찾았습니다. 국사책 속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지로 공주 석장리와 더불어 달달달 외우기만 했던 그 유명한 '연천 전곡리 유적'.

역사의 현장을 보자는 당초 의도와는 달리 솔직히 곳곳에 채워진 체험장을 보며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겠다는 아이들을 따라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던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이들보다도 더 신이 나신 한 분이 계셨습니다.

대부분 가족들의 체험 여행에서 메인은 어린이요, 어른들이 그 뒤를 따릅니다. 거기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 보다도 더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시는 게 일반적인 모양세지요. 그런데 우리집은 어째 그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우선, 아이들이 체험해보고 싶은 부스 앞에 가서 쪼르르 줄을 섭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희들끼리 정말 잘 섭니다. 그리고 체험을 시작하나 봤더니, 갑자기 한두 발자국 뒤에서 걸으시던 할아버지가 아이들 줄을 헤집고 재빨리 나가 맨앞에 서십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비켜! 내가 먼저다"... 저희 아버지입니다

맨앞으로가 서신 할아버지입니다.
▲ 내가 먼저다 맨앞으로가 서신 할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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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비켜. 내가 먼저다."

양보가 미덕이라고 일평생을 가르친 사람이 누구였더라? 그 가르침이 머릿속에 쏘옥 박혀 잊히지 않았는데 할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고 되레 당당하다는 듯 서서 체험을 즐기십니다.

그날따라 평소에 쓰시던 자기 선글라스를 잊었다 하시면서, 꽃무늬 줄무늬가 새겨진 딸의 선그라스까지 빌려 쓰시곤 말입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이게 뭐지?'라는 표정을 짓더니 다음 체험부터는 아예 줄을 서곤 할아버지를 불러 앞서게 합니다. 뒤에서 보던 자식들도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 그 모습이 재미있고 좋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속마음까지 헤아려 보십니다. 

"아이고, 저 양반이 왜 그러냐. 애들보다 더 극성이네. 니 아부지 젊어서는 돈 번다고 그런거 해볼 생각도 못해서 그런가 보다. 그러니 저렇게 애들보다 나서서 하려고 들지. 좋나 보다."

알찬 체험을 마치고 돌아오신 할아버지. 아, 글쎄 집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으십니다. 햇빛이 눈부신 밖에서 잠깐 쓰시라고 빌려드렸던 건데…. 차에서도 계속 쓰고 계시길래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집에 도착하고 옷까지 갈아입으셨지만 계속 쓰고 계십니다.

"이거 좋구나, 놓고 가라!"

집안에서도 벗질 않으십니다.
▲ 패션의 완성은 썬글라스 집안에서도 벗질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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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그 선글라스 얼마 전에 백화점 세일할 때 산 건데…. 벗으시라고 하기도 뭐하고….

"아부지, 그거 좋으세요?"

제가 잘못 물었습니다. 대답은 즉각 이어졌습니다.

"그래, 이거 좋다. 놓고 가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냥 놓고 왔습니다. 그날 여러 가지로 기분이 좋으셨는지 할아버지는 "패션의 완성은 꽃 선글라스"라는 농담을 하시고는 매일 저녁 '빽차'(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 투어에 나서셨습니다.

올해 어버이날엔 금일봉이나 큰 선물을 드리지는 않았지만, 온종일 아버지가 최고인 날로 만들어드렸습니다. 금쪽 같은 손주들 맨 앞에 서서 할아버지가 체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몸에 착 감기 듯 편안하고 예쁜 꽃 선글라스를 얻어 기분 좋았던 날. 아버지는 정말 행복해 보이셨습니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어버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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