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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하다"

"유별나다"
"신비롭다"

최근에 본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영화 첫 부분에 나오는 대사다.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미스터리 사진작가 이야기다. 이 자막을 보며 도예가 윤주동을 떠올렸다.

윤주동 작가도 도예계에 알려져 있지 않은 은둔형 작가다. 그의 유별난 점과 그가 만들어 내는 작품은 그만의 감성과 함께 도자기가 지닌, 자연과 우연이 만들어 내는 신비함도 있다. 특히, 개인전을 앞두고 출간한 '한국현대미술선 026' <윤주동>(헥사곤 발행)에 표지 그림을 보는 순간, '앗!' 소리가 났다. 달항아리를 두 동강 냈다.

<반달항아리>는 시대 현실과 갈등을 상징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남북분단과 남남갈등으로 나뉘어진 틈을 보여 주려고 한다. 정치·사회적 갈등을 역설과 반어로 달항아리에 최초로 담은 작품이다. 각각의 <반달항아리>를 엎고, 덮쳐 놓으면서 빗겨놓은 간격은 갈등과, 봉합의지 정도를 내려다보며 성찰하게 한다. 그리고 하나가 됐을 때 그 아름다움을 상상하게 한다.

윤주동 작가는 <반달항아리>를 두고 "하나 되어 큰 달"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릇에 우리의 삶과 희망을 스며들게 하고 담는 일은 당연하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간명한 달항아리가 주는 단아하고 충만한 아름다움을 누가 모르나. 윤주동은 <반달항아리>를 통해 이 통념을 대담하게 깨고, 단호히 보여 줌으로써 작가의 역사인식에 대한 예술적 통찰로 감탄과 감동을 준다.

"재현만 하면 재미 없잖아요"

윤주동 작. (37.5*34.6*32.3 cm) 백자 2015
▲ 한국현대미술선026 <윤주동> 표지작품 반달항아리 윤주동 작. (37.5*34.6*32.3 cm) 백자 2015
ⓒ 윤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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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 이 표지 작품을 보고, 바로 양평군 대흥리에 있는 작가의 작업장을 찾았다.

- 지금까지 보도 듣도 못한 <반달항아리>예요. 대담하네요.
"안 그래도 전시를 앞 두고 그릇들을 책으로 엮고 반응이 궁금했어요. 좋은 평을 들으니 반갑습니다."

- (그 항아리가 작업대 위에 있었다) 아! 이거네요, 붙어 있는 거예요?
"(덥썩 들어 떼어 보이며) 독립된 거예요." 

- 위 아래가 같은 형태인가요?
"얼핏 보면 같아 보여도 달라요. 위 주둥이는 넓고 얕은 반면, 아래 굽은 높고 좁죠. 이렇게 만들면 떠 있어 보이게 됩니다."

- 두 개의 반달항아리를 업고, 엎어 하나의 달항아리로 만들었어요.
"원래 달항아리를 만들 때 위아래를 나누어 만들어요. 나중에 엎어 붙이는 거죠. 그래서 달항아리 만드는 기법을 엎다지라 해요. 이름이 예쁘죠. 엎어서 다진다. 마치 불교에서 업을 닦는다는 어감과 비슷하죠."

- 어떻게 두 동강 낼 생각을 했어요?
"이제 기술들이 좋아져서 웬만한 달항아리는 붙이지 않고도 한 번에 크게 만들어 낼 수 있죠. 그런데 재현만 하면 재미 없잖아요. 물론 재현도 쉽지 않아요.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저만의 새로운 달항아리를 갖고 싶은 거죠."

- 힘들었겠어요.
"심중팔구 깨져요. <반달항아리>는 흘러 내리는 둥근면이 바닥에서 수평으로 급변하기 때문에 이 경계에서 터지는 경우가 많아요"

윤주동은 이러한 비효율적 형태를 포기 않지 않고 <반달항아리>를 이끌어 냈다. 윤주동의 <반달항아리>는 설치(installation)와 변형(Transform)이라는 개념을 달항아리에 반영한 방식이다.

이런 예가 없어 더욱 빛을 발한다. 아이디어만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백자 특유의 아름다운 선, 빛, 감을 온전히 되살려, 전통과 현대를 생생하게 결합시킨 예술 개념이어서 더욱 거룩해 보인다.

"몸을 태우면 사리가, 땅을 태우면 도자기가 됩니다"

윤주동 작. 달접시 (35*35*4.3)cm.백자.2012
▲ 달접시 윤주동 작. 달접시 (35*35*4.3)cm.백자.2012
ⓒ 윤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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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접시>는 언제, 어떻게 만들게 되었어요?
"창 밖에 뜬 달을 보고, 달항아리는 만들었는데, 무겁고 바닥에 놓여 있는 게 아쉬운 거예요. 어떻게 달항아리를 띄울 수 없을까 해서 고안한 거예요. 접시에다 새기고, 벽에 붙이면 달이 뜬 게 되잖아요. 2012년에 <달접시>를 만들고 이어 다음해에 <반달항아리>를 만들었어요."

달항아리를 접시로 만들고 벽에 걸었다. 이런 <달접시>도 처음 본다. 달항아리는 예술가들에게 사랑 받는 주제다. 화가, 시인, 사진가들의 작품 소재로도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접시에 달항아리를 새기고 벽에 붙인 작품은 윤주동 작품이 처음이다.

접시가 회화처럼 벽에 걸리고 백자 특유의 부드러운 빛을 발하는 모습이 적요하다. 도자기가 실용성을 넘어 표현의 한 매체로 예술성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윤주동의 달항아리는 접시뿐 아니라 그릇에도 새겨 놓고 물을 부어 넣으면 그릇에 담긴 물에 달이 들어 앉은 모습이 된다. 윤주동은 이를 <달그릇>이라 불렀다.

- 전통 백자에 파격과 혁신을 보탠 셈이네요.
"문헌에 충실한 거예요. <조선왕조실록>이나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온대로 흙을 구해 쓰는 거죠. 백토를 양구와 진주에서 구해 일정 비율 섞어 반죽해 쓰는 거죠. 퇴촌 금산리에 달항아리 가마터가 있어요. 상상만으로는 안 돼요. 그곳에 25년을 오가면서 비교 실험하며 감각을 쌓을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추사(秋史)가 말한 입고출신(入古出新, 옛 것으로 들어가서 새 것으로 나온다)을 실현해 보려는 거지요."

- (동문서답 혹은 우문현답) 선생에게 도자기란 뭐죠?

"그릇됨 없는 그릇. 그릇되지 않은 그릇. 그리고 그릇되지 않을 그릇을 만드는 거죠. 도자기는 땅의 사리예요. 몸을 태우면 사리가 나오고, 땅을 태우면 도자기가 되는 거죠."

26년 세월... 새로운 작업은 계속 '실험중'

윤주동 1999년 작.크기(17*17*10)cm
▲ 굽높은 완 윤주동 1999년 작.크기(17*17*10)cm
ⓒ 윤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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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은 잘 나가나요?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작품을 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쓸 데가 없는 작품들이거든요. 쓸 데 없는 것이니까 팔리지도 않고, 갖고 있는 거예요. 개인전을 했지만 파는 것에 그닥 관심이 없어요. 생활비가 그리 많이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웬만한 것은 스스로 해요. 시골에서 살면 돈보다 자연으로 부터 얻고, 몸을 놀려 풀어야 할 일이 많죠. 필요한 생활비는 다기와 같은 생활도자를 빚어 팔아 보태면 그만이고요."

- '고윤' 이라는 호를 쓰고 있군요.
"고상할 고란 뜻도 있고요, 높을 윤이에요.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받은 영감을 호로 담았어요. 도자기 하는 사람으로서 예술계에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지만 자조와 자존이 섞여 있기도 해요.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지만, 고상하고 높은 마음으로 작업하려고요. 하하하."

그는 정규 도예 과정을 거치지 않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자신만의 도자정신과 기술을 일구어 냈다. 20세 무렵, 가족들이 도자기 공장이 많은 이천으로 이사를 왔다. 이때 몸을 움직여 사는 정직한 일 가운데 필요한 기술이 뭘까 고민하다 도자기를 생각해 낸 것이다. 세상에 대단한 것들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고, 밑바닥 같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라 여겨 선택하고 도전한 길이 도자기였다.

흙과 불로 만들어 내는 자연적 재료와 우연적 효과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매혹적이었다. 어려운 것에 대한 도전 정신과 자기주도적 학구심은 거의 침묵과 은둔으로 이어졌다. 정규교육과정과 도제식 도자기 공부도 호기심을 채우지 못했다.

대안으로, 가마터와 박물관이 있는 곳이라면 전국을 마다 않고 훑었다. 독학과 실험에 몰입하여 조선백자와 인화문병, 전통 그릇과 다기 등을 재현하는 기법을 터득했다. 거기에 머믈지 않고 윤주동만의 새로운 도자기 정신을 불어 넣는 작업을 실험해오고 있다. 그리고 도자예술에 입문한 지 26년 세월이 흘렀다.

정갈하고 담백한 작품들

윤주동 작. 사진. 2014
▲ 종이문 윤주동 작. 사진. 2014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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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동은 이번 개인전에 사진 작품도 선보인다. 전통 한옥의 창호와 종이문을 담았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 참선방 같기도 하다. 정갈하고 담백하다. 나무와 종이 재료가 주는 부드럽고 따뜻함, 간명한 문틀의 단아함이 돋보인다.

특히, 창호와 종이문으로 들어오는 빛과 한지로 도배된 유백색 공간은 오래된 시간을 머금고 있다. 아늑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충만하다. 이 빛은 조선백자의 유백색 빛과 닮았다. 그리고 윤주동의 <반달항아리>나 <달접시>는 바로 이 공간과 놓일 때 절묘하게 어울릴것 같다.

도예가
▲ 윤주동 도예가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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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움은 신만이 알 수 있는 비밀 같은 것이기도 하다. 말로 할 수 없고 이성을 넘어 감성과 직감으로 느끼는 떨림이다.

윤주동이 우리 그릇에 띄운 달항아리와 사진에 담은 종이문의 부드럽고 충만한 빛은 인위를 넘어선 기운이 감싸고 있다. 자연과 시간, 우주가 만들어 내는 알 수 없는 무위의 기운이다. 흙과 빗물로 빚고, 불로 구워내는 과정에서 인간이 도저히 주무를 수 없는 자연과 우연, 시간의 힘이 신비로 작용한다.

비어 있는 것만이 담을 수 있다. 방도 그릇이다. 항아리던, 그릇이던, 방이던, 윤주동표 도자기와 사진의 공통 점은 비움이요, 빔이다. 대신 채워지는 것은 자연, 우주와 시간, 오래 된 빛의 신비로움 <고색창연>이다.

덧붙이는 글 | 윤주동전
5.20-26 인사동 그림손 갤러리
2015년 5월20일(수)~26일(화)/갤러리 그림손
오프닝 연주: 5.20(수)5시- <현성가인>수석연주자:거문고(윤해린), 대금(염명희)연주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2(경운동64-17)02-733-1045

윤주동 尹柱東
1989 도자기 입문.
개인전
2015 그림손갤러리, 서울
2012 공아트스페이스, 서울
2004 유아트스페이스, 서울
2004 Joachim Gallery, Berlin, Germany
2000 Gallery Etienne de Causans, Paris, France
그룹전
2015 G-SEOUL 2015 국제아트페어, DDP, 서울
2005 ‘로맨틱 상차림과 전통예단’. 유아트스페이스. 서울
2001 ‘한국다기명품특별전’. 국립민속박물관. 서울.
2000 ‘한국다기명품 100인전’. 국립민속박물관. 서울.
1999 ‘도자기 대 박람회’. 롯데백화점 본점. 서울.
수상
2001 세계도자기엑스포 입선. 주최
World Ceramic Exposition 2001 Korea.
1999 세계도자기엑스포 특선. 주최
World Ceramic Exposition 2001 Korea.
작품소장
국립민속박물관 2점.
세계도자기엑스포2001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 3점.



태그:#윤주동, #고색창연, #그림손갤러리, #반달항아리, #달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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