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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인 수원 화성은 평지와 동쪽 언덕, 팔달산에 세워졌기 때문에 꼼꼼하게 보려면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눠 답사를 하는 게 좋다. 팔달문에서 답사를 시작한다고 할 때 팔달산으로 올라가 화양루와 화성 장대를 보는 산행 코스가 있고, 팔달산을 내려가 화서문을 경유해 장안문, 화홍문까지 공원으로 조성된 평지를 걷는 코스가 있다. 방화 수류정에서 창룡문을 거쳐 봉돈, 동남각루를 보고 남수문으로 내려오는 언덕길 코스가 있다. 답사객의 관심사에 따라 어디를 가든 기점이나 방향은 상관 없다.

수원화성 서북각루
▲ 수원화성 서북각루 수원화성 서북각루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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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서문에서 출발해 서북각루를 지나 팔달산으로 올라가 화성장대를 보고 화양루까지 답사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수원화성을 답사할 때 항상 출발하는 기점이 화서문이기도 하다. 화서문 옹성의 역할은 화서문의 대문을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있는 것이다. 적이 대문을 공격하려면 옹성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옹성 안으로 들어오기도 어렵지만 옹성으로 들어와도 독 안에 든 쥐 신세나 다름 없다.

매일 보는 화서문이지만 옹성 옆 출입문으로 들어가 옹성 안에서 옹성과 화서문을 바라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일단 옹성 안으로 들어와 보니 옹성 안의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시설이 없는 것이 아닌가. 옹성으로 올라가 확인해보니 옹성 밖의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시설은 되어 있었지만 옹성 안의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시설은 없었다.

화서문에서도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할 수 있을 뿐 눈 앞에 있는 적을 공격할 수는 없어 보였다. 옹성 안으로 적이 들어온다면 옹성과 성에서 협공을 해야 적을 몰살할 수 있을 것이다. 확인해보니 수원화성의 네 대문의 옹성이 모두 이와 같은 구조였다. 옹성으로 대문 방어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거나, 다산 정약용 선생이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 서북각루, 서포루를 지나 팔달산 화성장대에 오르니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화성장대에서는 성안이 한눈에 들어오고 성 밖의 먼 곳까지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다.

정조는 이곳에서 을묘년(1795)에 장대한 군사 사열식인 성조식(城操式)을 치루며 노론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는 자신감으로 '화성장대(華城將臺)'라는 현판을 힘찬 글씨로 썼다. 글씨 획 하나 하나에 개혁 군주로서의 자신감과 혼이 들어가 있는 명작 중 명작이다. 고개가 아플 때까지 현판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린다.

오솔길을 걷듯 가벼운 마음으로 걷다 보면 서암문(西暗門)을 만나게 되는데 서암문이 자리잡은 위치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적이 전혀 눈치채지 못할 곳에 자리 잡은 것이다. 효원의 종을 지나 서남암문에 이르니 수원화성에 하나밖에 없는 성곽 시설물 두 곳을 만난다. 그 하나가 서남암문에 적을 감시하는 서남포사(西南鋪舍)를 설치한 시설물이고, 두번째가 화양루로 가는 용도(甬道) 이다.

팔달산 서남쪽에 있는 서남포사는 높은 곳에서 멀리까지 볼 수 있어 군사들이 성 밖의 급박한 상황을 알리기에 제격이다. 서남포사 사면에 판문을 설치했는데 판문에 구멍이 뚫려있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당연히 포사 안에서 성밖을 감시해야 하는데, 포사 안에서 밖을 볼 수 없는 구조다.

'화성성역의궤'에도 이렇게 나와 있는데 뭔가가 잘못된건지 잘못 알고있는 것인지. 서남암문으로 나가 용도에서 서남포사를 바라보다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바로 오성지(五星池)처럼 생긴 구멍이 이곳에도 있었다. 오성지란 팔달문과 장안문 옹성 출입문 위에 구멍 다섯 개를 만들어 적이 성문을 화공으로 공격하는 것에 대비해 이 구멍으로 물을 부어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시설이다. 용도로 통하는 암문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시설물로 보이는데 그만큼 용도의 중요성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용도는 200여m 이어져 있고 그 끝에는 화양루가 있는데, 성을 더 넓게 쌓지 않고도 팔달산 남쪽을 지킬 수 있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용도 밖으로는 잘생긴 소나무 숲이 울창해 솔향을 맡으며 용도를 걷고 있으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수원화성 성곽길 중 가장 오붓한 길인 용도에 이름을 붙이자면 '힐링의 길'이 어울릴 것 같다.

화양루에서는 팔달산의 남쪽을 조망할 수 있는데, 숲이 울창해 시야가 트이지는 않았다. 전에 '관현악을 위한 화양루'란 교향시가 작곡되고 연주됐는데, 화성 건축물 하나 하나에 이런 의미있는 교향시가 만들어진다면 수원화성이 건축 예술에서 음악 예술까지 아우르는 계기가 되리라 본다. 화양루에 올라 마루에 앉아보니 바닥에는 빈 물병이 나뒹굴고 벽에는 낙서 투성이다. 남이 보지 않더라도 문화재를 보호하고 지키려는 각별한 애정이 필요해 보인다. 박윤묵(1771-1849)의 문집에서 '화양루에 올라'라는 한시를 찾아 천뢰님이 번역한 것을 소개한다.

수원화성 화성장대
▲ 수원화성 화성장대 수원화성 화성장대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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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루(華陽樓)에 올라

아름다워라, 화성의 성(城) 남쪽 모퉁이에
우뚝 솟은 백 척 화양루여!
지세(地勢)가 솟구치고 문 밖이 어두우니
대붕(大鵬)이 고개를 높이 쳐든 것 같구나.
좌우 성가퀴가 서로 겨루듯 솟아있어
그곳에는 어떤 방법과 길도 용납치 않네.
동서(東西)가 벼랑처럼 험준하여 무얼 잡고 오르지 못하고
전에는 백 리를 둘러갔지만 이제는 지척일세.
만약 이곳에 망대(望臺)를 세우게 한다면
가깝건 멀건 다가오는 적을 앉아서 다 볼 수 있겠네.
멀리까지 생각한 당시의 조(趙)장군은
이 성터에 대해 얼마나 한결같이 힘썼을까?
옥 책상 앞에 걸린 지도 위의 형편을
지시하여 가르친 성스런 명군(明君)이 위에 있었네.
웅장한 이 성(城)과 이 구멍을 쌓기 위해
구중궁궐의 조화공(造化工)을 묵묵히 옮겨왔네.
뒤에 올 누가 만일 감히 살펴보려 한다면
높은 곳에 올라 조망하면 훤히 보이리라 말해줄 뿐이네.
남쪽을 바라보면 화산(花山)이 천 리에서 다가오고
보배구슬 완연히 굴리며 밝은 빛이 열리네.
난간머리 곱절이나 끊겨 활과 검(劒)이 구슬피 우니
동풍에 눈물 뿌리며 돌아갈 줄 모르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e-수원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수원화성, #화서문, #화성장대, #화양루, #서북각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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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가슴에 안고 살면서 고전과 서예에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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