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그 이야기가 다시 돌아왔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를 타고 당당히 다시 역사교과서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그것이 무엇이냐? 임나일본부설이다.

철지난 유행가 같은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이 다시 현안으로 떠오른 건, 4월 6일 일본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 때문이었다. 검정을 통과한 역사교과서 8종 중 4종에서 임나일본부에 대해서 기술됐고, 이에 우리 정부는 총리까지 나서 해당 교과서의 주장을 반박하기에 이르렀다.

독도나 위안부, 혹은 난징대학살 같은 문제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일본 교과서들이 검정을 통과하고, 이에 한국이나 주변국들이 반발하는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임나일본부 문제는 우리의 고대사를 왜곡할 뿐더러, 일본제국주의의 한반도 '진출'의 역사적 근거로 악용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경각심을 갖고 주시를 해야 한다.  

남선경영론이라고 불린 임나일본부설

그럼 일단 임나일본부설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남선경영론(南鮮經營說)이라고도 불리는 임나일본부설은 고대시기인 4세기 중반부터 6세기 중반까지, 일본이 한반도 남부에 통치기관을 두고 직접 지배를 했다는 설이다.

그 설의 중추적인 근거로 제시되는 <일본서기>에 의하면, 신공왕후가 몸소 군대를 이끌고 삼한지역을 정벌했는데 그 원년이 369년이라고 한다. 정벌이 끝난 후에는 임나 지역에 일본부를 설치하니 그것이 바로 '임나일본부'가 됐고, 562년 신라에 의해 망할 때까지 200년간 존속되었다는 것이다.

임나일본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일본은 광개토대왕릉비도 이론적 근거로 끌어 쓴다. 이런 내용들을 일본 우익들이 주장했고, 이번 역사교과서에 실리게 된 것이다.

여기서 '임나'는 가야지역을 말하는데 우리도 임나라는 지역명칭을 사용했다. 일본만 독점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의 영역은 가야지역의 세력권을 넘어 전라도 남부지역과 경상도 서부권까지 포괄한다. 사실상 한반도 남부에서 삼국과 동일한 지위를 누리며, 삼국과 경쟁체제에 있었다는 것이다.

임나일본부를 표시한 일본의 역사교과서. 가야국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 일본 역사교과서 임나일본부를 표시한 일본의 역사교과서. 가야국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 일본역사교과서

관련사진보기


임나일본부는 무역대표부?

욱하지 않는가? 하지만 감정보다는 논리와 객관성을 앞세우자. 일본 우익들의 역사왜곡을 합리적인 시각으로 격파해보자. 그들의 말대로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가 한반도 남부의 통치기관이었다면 조세징수, 군사징발, 노역동원, 구휼활동 같은 기록이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전혀 없다.

<일본서기>에는 임나일본부의 외교적 활동만 언급이 되어 있을 뿐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혼신을 기울일 때, 임나일본부는 군사도 징발하지 않고, 조세징수도 하지 않는 등 느긋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독자들 중에는 의문점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 굳이 가야지역일까'라는 의문이다. 차라리 전라도와 충청도의 곡창지대에다 설치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덧붙여질 수도 있다. 당시 왜(倭)는 철 생산지인 가야지역과의 통상에 큰 주안점을 두었다. 철의 매입과 수입에 사활을 걸었던 것이다. 변변한 제철 기술이 없었던 왜국이 철기무기 획득을 위해 가야국과 외교·통상을 중시했다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럼 이렇게 정리가 될 수 있다. 고대국가로 발전하기 위해 제철 무기의 획득을 국정 목표로 삼았던 당시의 왜는 가야지역에 사신들을 파견, 주재시킨다. 그런 사신들의 수도 늘어나고 주재하는 기간도 늘어나니, 그들만의 자치규약이 필요했고 나름대로 교통정리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자리 잡은 것이 임나일본부가 된 것이다. 즉 임나일본부는 가야 지역 백성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권력기관이 아닌 그저 무역대표부였을 뿐이다. 무역대표부 혹은 외교공관이 들어섰다고 그 곳을 지배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따지면 미국 워싱턴에 주미대사관이 있는데 우리가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거야? 정말 그런 거야?"

KBS의 <역사저널 그날>에서 방송한 '일본,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임나일본부'편. 가야사 전공자인 인제대학교 이영식 교수가 패널로 나와 임나일본부의 허구성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시청을 하시는 것도 좋을 듯싶다. 2015년 4월 19일 방송분임.
▲ 역사저널 그날 KBS의 <역사저널 그날>에서 방송한 '일본,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임나일본부'편. 가야사 전공자인 인제대학교 이영식 교수가 패널로 나와 임나일본부의 허구성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시청을 하시는 것도 좋을 듯싶다. 2015년 4월 19일 방송분임.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가야사가 빠진 자리를 치고 들어온 임나일본부설

4세기에 쓰인 일본부(日本府)라는 명칭도 역사적인 객관성이 떨어지는 대목이다. 일본(日本)이라는 국호가 7세기 이후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객관성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첨언해본다. 앞서 신공왕후가 몸소 선봉장이 되어 한반도를 침공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그때 신공왕후는 만삭의 몸이었다. 뱃멀미는 그렇다 치고 말을 타기도 어려웠을 텐데... 혹시 신공왕후는 슈퍼우먼이 아니었을까?

가야사가 빠진 삼국사는 임나일본부설이 똬리를 틀기에 좋은 토양을 제공한다. 실제로 가야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이 됐다면 지금과 같은 논란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로 현재의 임나일본부설 논란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반성을 촉구하기도 한다. 활발한 연구로 가야사에 '빗장'을 걸어 두었다면 일본의 역사가들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하나의 '설'이 외교적 현안으로까지 부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임나일본부설은 과거의 문제가 아닌 현재적인 문제라고 판단한다. 일제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시키는 데 동원된 임나일본부설이 이제는 집단자위권 문제에 동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때 그 대상영역이 어디가 될 것 같은가? 한반도다.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필자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일본의 우익화를 염려한다면 뜨거운 가슴과 함께 차가운 머리도 필요하다. 차근차근 반박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글을 마치며 하는데 뒤가 자꾸 켕긴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일본의 역사교과서에 대해서 뭐라고 그럴 수 있겠어? 친일매국을 한 사람을 이달의 스승으로 지정하고 아이들에게 널리 알린 게 누군데!'

덧붙이는 글 |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blog.daum.net/artpunk



태그:#일본역사교과서, #임나일본부설, #가야, #사국시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