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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나 훈련보다는 '놀이'에 가까웠다. 좁은 체육관에는 2시간 내내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수다를 그치지 않았고, 힘들다 투정하면서도 얼굴엔 미소를 가득 담고 있다. 경남 양산시 원동초등학교가 방과후학교 수업의 하나로 운영하는 레슬링 수업 모습이다.

지난달 23일부터 29일까지 7일간 열린 '제33회 회장기 전국레슬링대회'에서 원동초등학교 어린 친구들이 '큰일'을 냈다. 이수현(9, 여)ㆍ소현(9, 여) 쌍둥이 자매가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땄고 박성현(9, 남) 군도 4학년 형과의 경기에서 분투하며 은메달을 수확했다.

이들의 메달이 더 값진 이유는 레슬링을 체계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 방과후학교 수업에서 배운 게 전부라는 점 때문이다.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각각 두 시간씩 배우는 게 전부이지만 레슬링 대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대회에서 이처럼 좋은 성적을 거뒀다.

아이들에게 레슬링을 가르치고 있는 이준(22) 코치는 "쌍둥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집중력이 좋고 성현이는 힘이 타고난 것 같다"며 "특히 수현이는 오기가 있어 남자애랑 붙어도 잘 밀리지 않고 소현이는 체력과 근력이 강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원동초등학교 방과후학교 레슬링 수업에는 모두 7명의 아이가 참여하고 있다. 수현ㆍ소현 자매와 성현이를 비롯해 최승준(9, 남), 최정하(9, 남), 유하영(9, 남), 박정현(8, 여)이 그 주인공이다. 2학년들은 대부분 1학년 때부터 레슬링 수업을 들어왔고, 정현양은 지난 3월 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 레슬링을 배우게 됐다.

7명의 꼬마 레슬러들이 모두 레슬링 선수를 꿈꾸는 건 아니다. 정현이는 의사가 꿈이고 승준이는 수영선수가 꿈이다. 정하 역시 복싱선수가 되고 싶다. 이번에 메달을 딴 수현ㆍ소현 자매 역시 요리사와 화가를 꿈꾼다. 성현이와 하영이만 레슬링 선수가 꿈인데, 솔직히 아이들의 이 꿈이 언제 달라질지는 아무도 모를 일.

수현ㆍ소현 자매가 레슬링 연습을 하고 있다.
 수현ㆍ소현 자매가 레슬링 연습을 하고 있다.
ⓒ 장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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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환경, 아이들에 많은 경험 못 줘 미안"

그래도 이들은 매주 작은 체육관에서 거친 숨을 몰아쉰다. 시골 학교에서 달리 경험할 수 있는 운동이 없다. 그래서 스무 평(66㎡) 남짓한 작은 체육관 안에서 친구들과 구르고 뒤엉키는 그 시간이 더 소중하다. 자기들도 훈련으로 나름 '불타는' 금요일을 보낸다는 아이들의 말이 우스우면서도 안타까웠다.

김동립 체육교사는 "우리 아이들이 아무래도 시내와 많이 떨어진 곳에 살다 보니 많은 부분에서 열악한 게 사실이고 학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안타깝다"며 "시설이 없고 지원이 열악하다 보니 단체 운동이나 육상은 꿈꾸기 힘들고 이런 틈새 종목이라도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특히 쌍둥이(수현ㆍ소현 자매) 같은 경우는 전국에서도 뛰어난 수준의 기량인데 제대로 된 특기적성 교육만 받는다면 체육 쪽으로 진로를 결정해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학교. 시설도 학생 수도 부족해 경험할 것조차 많지 않은 이곳의 아이들. 원동초 교사들의 바람처럼 수현ㆍ소현 자매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가 각자의 꿈을 향해 땀 흘릴 수 있도록 더 많은 기회와 여건을 제공받을 수는 없을까? 어른들의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아이들은 그렇게 '불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준 코치와 최승준, 유하영, 박성현, 최정하, 박정현, 이수현, 이소현 학생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준 코치와 최승준, 유하영, 박성현, 최정하, 박정현, 이수현, 이소현 학생
ⓒ 장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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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양산시민신문>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양산시, #원동초등학교, #레슬링, #쌍둥이, #방과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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