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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당시 전두환, 이순자의 구속 처벌을 요구하며 서울 시내로 나아가던 중앙대학교 학생들의 모습.
 1988년 당시 전두환, 이순자의 구속 처벌을 요구하며 서울 시내로 나아가던 중앙대학교 학생들의 모습.
ⓒ 중앙대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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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혈이 한강 다리를 건너면 역사를 바꾼다"라는 말이 있다. 의혈(義血)은 '정의를 위하여 흘린 피'라는 의미로, 과거 민주화 운동 당시 독재정권에 치열하게 맞서 싸웠던 중앙대 학생들과 교수들을 기리는 별호(別號)다. 중앙대가 의혈의 이름을 얻게 된 이유는, 역사의 변혁 순간들마다 그 흐름을 바꾸는 데 용기있고 정의롭게 선두에 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중앙대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의에 죽고 참에 살자(義生義死)"

그렇게 중앙대는 역사 현실이 단순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일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했으며, 대학이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의혈의 정신은 마치 영원할 것만 같았다.

오늘날 대학의 자화상, 대학에서 취업학원으로?

지난해 8월 25일,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중앙대를 방문해 ‘중앙대학교 제도개혁 우수사례 발표 및 고등교육 정책’에 관한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황 장관 및 교육부 관계자 4명, 박용성 이사장, 이용구 총장 및 부총장단, 그리고 각 행정부서장과 총학생회장 등 학생 10명이 참석했다.
 지난해 8월 25일,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중앙대를 방문해 ‘중앙대학교 제도개혁 우수사례 발표 및 고등교육 정책’에 관한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황 장관 및 교육부 관계자 4명, 박용성 이사장, 이용구 총장 및 부총장단, 그리고 각 행정부서장과 총학생회장 등 학생 10명이 참석했다.
ⓒ 중앙대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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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사람들은 자신들이 현실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잊기 시작했다. 예전의 혈기 넘치던 대학생들은 이리저리 치이는 중년 아저씨가 된 지 오래고, 그 중 꽤 많은 이들이 기득권과 타협한 것도 사실이다.

또 한 편으로, 교육부 장관이 "우리도 이제 취업을 중심으로 교육제도를 재조정해야 한다"며 '산업수요 중심 정원조정'을 대학에 요구하기 시작했다.(관련 기사: 기초학문 대학생들 "누가 우릴 '문송'하게 만드나요?")

시류를 만들어 나갈 것 같던 중앙대는 이제 시류에 편승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런 시류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하기 시작했다. 대학 본부는 '경쟁력'을 이유로, 학과 별 입학정원을 할당해 신입생을 선발하던 방식을, 단과대를 통한 광역단위모집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제 학생들은 입학 때가 아닌 재학 중 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이에 대해 취업 잘되는 전공의 '쏠림 현상'이 불가피하며, 기초학문 존속의 안전장치가 사라진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애초부터 전공 적성에 맞는 학생을 뽑아야 할 입시제도의 실패를 왜 학생과 교수에게 전가하냐는 것이다. 교수들은 일찌감치 찬반투표 참여자 92.4%가 반대임을 밝혔다.

학생들도 '학생자치활동 운영 어려움', '재학 연한 내 커리큘럼 이수 불가능', '일방적 구조조정 통보의 부당함', '강의 여건 악화' 등의 우려 목소리가 내고 있다.

이미 수차례 구조조정 광풍... 지칠 대로 지쳤지만 결국 일어섰다

13일 중앙대 학생 구조조정공동대책위원회는 대학 본부 측에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3000여명의 학생들의 연서명 전달식을 가졌다. 그러나 대학 본부 측의 접수 거부로 전달되지 못했다. 본부 관계자는 "총학생회를 통해서만 받겠다"며, 공대위를 학생들의 공식적 대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 편, 총학생회는 공대위 측의 동행요구를 거절했지만 연서명지는 회의 때 학교 측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13일 중앙대 학생 구조조정공동대책위원회는 대학 본부 측에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3000여명의 학생들의 연서명 전달식을 가졌다. 그러나 대학 본부 측의 접수 거부로 전달되지 못했다. 본부 관계자는 "총학생회를 통해서만 받겠다"며, 공대위를 학생들의 공식적 대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 편, 총학생회는 공대위 측의 동행요구를 거절했지만 연서명지는 회의 때 학교 측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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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앙대는 두산이 지난 2008년 인수한 이후부터 경쟁력을 이유로 수차례 구조조정을 해왔다. 2010년 18개 단과대·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46개 학과로 통폐합, 2013년 비교민속·아동복지·가족복지·청소년학과를 폐과 시킨 바 있다.

구조조정 때마다 반대하는 학생들의 적극적인 목소리는 번번이 묵살됐고, 대학 본부는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도저히 일어서기 힘들 것이라는 푸념도 학생들 사이에 없지 않았다. 그야말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결국 다시 일어섰다. 결과가 어찌되든,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소임을 다하고 결산하겠다는 결의로 뭉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18일, 학생 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해 각종 캠페인을 벌이며 자신들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이들은 마침내, 지난 2주간 3000여 명의 학생 연서명을 받아 13일 대학 본부 측에 전달했다.

공대위에 참여 중인 사회학과 학생회장 김재경씨는 "이번 구조조정은 전체 대상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언제까지나 기업이 바라는 대로 학생들을 양성해야 한다면 향후에도 그런 식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학이 기업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닌, 대학 주도적으로 사회에 인재상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두 번의 '학생총회', 그 중 한 번은 비 맞으며... 인간승리가 따로 없다

지난 9일, 중앙대 인문대 학생회는 1차 학생총회를 개회했다.
 지난 9일, 중앙대 인문대 학생회는 1차 학생총회를 개회했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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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게 된 인문대 학생회는 구조조정 찬반투표와 구조조정안 철회요구를 안건으로 지난 9일 학생총회를 진행했다. 이날 학생들은 압도적으로 구조조정 반대와 철회요구에 손을 들었다.

그러나 회의장 출입시 학생증 확인을 하지 않은 데 대한, 문제제기가 일각에서 있었다. 회칙 상 학생증 확인 규정은 따로 없고, 인문대 학생이 아닌 사람이 의결에 참여했을 것이라는 증명은 없었다. 있더라도 누가 봐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인문대 운영위원회는 대의민주주의에서 조금의 절차 상 의심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비판을 수용, 학생총회를 무효로 하고 13일 2차 학생총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학교의 구조조정 강행을 비민주적이고 일방적이라고 비판하려면, 학생들의 의결과정부터 민주적으로 해야 하고 조금의 의심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13일 중앙대 인문대 학생회는 우천을 무릅쓰고 학생총회를 강행했고, 이는 성사됐다. 이는 그들이 두 번째 연 학생총회였다.
 13일 중앙대 인문대 학생회는 우천을 무릅쓰고 학생총회를 강행했고, 이는 성사됐다. 이는 그들이 두 번째 연 학생총회였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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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 속에서도 학생총회에 참여해 즐거워하는 학생들.
 우천 속에서도 학생총회에 참여해 즐거워하는 학생들.
ⓒ 고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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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2차 학생총회는 성원을 충족하지 못해 성사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이날 비까지 내린 데다가 야외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총회 당일,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예정된 시간에 학생들이 점점 몰려들기 시작해 400여 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한 차례 무산을 겪은 운영위원회는 더 철저하게 구획을 나누고 인원을 통제했으며, 학생증을 하나씩 확인했다.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해 우비를 배부하고, 의결도 무사히 끝냈다. 이 극적인 상황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인간 승리였다. 그들은 현실이 결코 인간과 무관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짐을 실천적으로 증명했다.

이날 총회에 참석했던 철학과 A씨는 "그동안 인문대가 '의혈의 마지막 보루'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학우들이 아직 학내 사안에 대해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SNS 상에서도 이날 총회의 기쁨을 나누는 학생들의 후기들이 올라오며 훈훈함을 더하고 있다.

현실을 바꾸는 유일한 장애는 '교육당국'

대학 구조조정 때문에 놓고 논란을 이어가는 중앙대학교. "의에 죽고 참에 살자"라는 교훈 뒤로, '경영경제관'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이 보인다.
 대학 구조조정 때문에 놓고 논란을 이어가는 중앙대학교. "의에 죽고 참에 살자"라는 교훈 뒤로, '경영경제관'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이 보인다.
ⓒ 홍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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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앙대는 현재 학칙 개정안 공고를 종료했으며, 교무위원회·평의원회 심의와 이사회 의결을 앞두고 있다. 교무위원회는 구조조정을 추진한 본부 측 보직자들 위주로 채워져 있고, 이사회에는 중앙대를 "이름만 빼놓고 다 바꾸겠다"던 박용성 이사장 등이 포진하고 있어 구조조정 통과가 예상된다. 평의원회는 구조조정에 비판적 의견을 가진 위원들이 있으나, 심의권만 가졌을 뿐 의결권이 없다.

따라서 교육당국이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대학은 취업학원화 논란에 더욱 휩싸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교육당국이 구성원들의 비판을 진정성 있게 수용할 의지가 있느냐다. 여기서 현실은 한낱 자연현상의 흐름이나 일기예보가 아니라, 인간이 결단하는 방향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기자 역시 중앙대 학생이며, 구조조정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나는 그러한 저널리즘적 논조에서 전국적인 대학 구조조정에 대해 기사들을 써왔고, 이 기사 역시 특히 그런 논조에서 쓰여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논조의 기사를 쓸 것이다. 기자는 기계가 아니며, 자신의 영혼과 논조를 기사에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학우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제 할 일을 해내고 있다고 칭찬하고 싶다. 만약 구조조정안이 통과되더라도, 현실을 인간이 만들어가는 이상 그런 통과된 현실조차도 다시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의에 죽고 참에 사는" 학우들에게 이렇게 말해본다.

"고생 많았어, 얘들아! 앞으로도 힘내자^^"


태그:#중앙대학교, #중앙대, #박용성, #황우여, #이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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