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근혜 대통령이 3일 67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불참했습니다. 4·3 희생자 위령제를 지난해 3월 대통령령으로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 '추념식'으로 바꾸고도 2년 연속 불참한 것입니다.

다른 일정이 미리 예정됐던 것은 아닙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통상 일정', 즉 평범한 집무를 수행합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는 지적에 "지난해에도 같은 질문이 있었는데 논평하지 않겠다"고만 답했습니다.

오히려 지난해 불참 사유보다 답변이 더 단출해진 격입니다. 지난해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네덜란드·독일 순방 중 걸린 감기 몸살이 다 낫지 않은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박 대통령 대신 추념식에 참석했던 정홍원 전 국무총리는 "여러 사정이 있지만 공개적으로 밝히기 어렵다, 건강 사정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죠.

이렇게 답변은 단출해졌지만, 사실 박 대통령의 불참 사유는 더 명확해진 편입니다. 지난해엔 보수 단체의 반발을 의식한 것이란 '해석'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다릅니다. 제주 4·3 관련 단체뿐 아니라 제주도민 전체의 반발을 불러왔던 보수단체의 '4·3 희생자 재심의' 요구에 정부가 사실상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지난달 19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도 재향경우회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대통령에 올해 제67주년 4·3희생자추념식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 "대통령님, 4·3추념식에 참석해주세요" 지난달 19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도 재향경우회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대통령에 올해 제67주년 4·3희생자추념식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지난달 25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추념식 주관 부처인 행정자치부의 고위 관계자는 "(재심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라 대통령에게 참석을 건의할 수가 없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보다 앞서 정종섭 행자부 장관은 지난 1월 "희생자로 지정된 일부 인사가 무장대 수괴급이라는 논란이 해소되지 않고서는 대통령 위패 참배가 어렵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즉, 주관 부처에서 4·3 희생자 추념식을 대통령 참석 불가 행사로 결론 내린 꼴입니다. 이로써 국가 기념일 지정으로 일보 전진했던 '제주 4·3 사건의 완전한 해결'은 2년 만에 크게 후퇴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민 아픔 모두 해소될 때까지 노력하겠다"더니...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11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서귀포1호광장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박근혜, 제주 지지 호소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11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서귀포1호광장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제주 4·3 사건의 완전한 해결'은 사실 박 대통령의 약속입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 12월 11일 제주 서귀포 광장 대선 유세 당시 "제주 4·3 사건은 제주도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가슴 아픈 역사"라며 "4·3 사건 추모 기념일 지정을 포함해 제주도민의 아픔이 모두 해소될 때까지 계속 노력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같은 해 10월 제주도당 대선 선대위 출범식 땐 "100%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길에 저와 함께 해달라,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일"이라며 "4·3 희생자와 가족들이 겪은 아픔을 치유하는 일에 저와 새누리당 앞장서서 노력하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희생자가 아닌 '무장대 수괴급' 인사가 있다는 제주 4·3 평화 공원 역시 그 해 8월 참배했습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위패봉안소 방명록에 "4·3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글을 남겼습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친정'인 새누리당의 지역 인사들도 추념식 참석을 수차례 요청해왔습니다. 정종학 새누리당 제주도당 위원장은 지난달 23일 기자 회견 당시 "박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하는 의미는 보수와 진보를 아울러 진정한 의미의 국민 대통합 시대를 여는 역사적 단초"라고 강조했습니다. 새누리당 출신 원희룡 제주지사 역시 지난 1월 "대통령이 참석한다면 국민적 대통합의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부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부가 앞장서 4·3 희생자 추념일을 '대통령이 참석할 수 없는 국가기념일'로 낙인 찍으면서 불필요한 논란마저 불거지는 상황입니다. 이대로라면 박 대통령이 약속한 '제주 4·3 사건의 완전한 해결'은 선거용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점점 희미해지는 국민 대통합... '약속 대통령' 다시 보고 싶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추념식 연속 불참은 박근혜 정부의 주요 국정 철학인 '국민 대통합'을 의심케 만듭니다.

당장, 야권에서 지적이 쏟아집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날 추념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4·3 희생자에 대한 추모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박 대통령이 참석했더라면 화해와 상생, 국민통합이 더 살아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4·3 희생자 재심사 논란에 대해서도 "4·3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다시 훼손하려는 움직임이자, 모처럼 이뤄진 화해와 상생을 깨트리는 잘못된 문제 제기"라며 "단호히 반대하며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같은 당 김성수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아직도 4·3사건을 왜곡하고 국론을 분열하려는 사람들로 인해서 제주의 아픔이 온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이 올해도 국가 추념 행사인 위령제에 불참하며 불필요한 논쟁을 유발한 점에 대해서 유감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라고 꼬집었습니다.

반면, 여권의 변명은 궁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추념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의 불참에 대해 "대통령께서도 굉장히 오시고 싶어 하셨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만 말했습니다. 김 대표는 지난 1월 제주 4·3 평화 공원을 찾아, "갈등을 없애고 박 대통령이 추념일에 참석하도록 건의하겠다"면서 "지난해에 국가 추념일로 지정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논란과 의심을 한 번에 해결하는 것은 대통령의 행동 뿐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3년 10월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4·3 사건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첫 공식 사과를 했습니다. 이후 2006년 위령식에 참석해 또 한 번 사과하면서 4·3 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재확인했습니다.

이처럼 '마침표'가 필요합니다. 박 대통령이 4·3 희생자 추념일을 온전한 국가 기념일로 만들려면 대통령으로서 추념식에 참석해 지금의 논란을 잠재워야 합니다. 박 대통령이 4·3 사건 국가기념일 지정을 약속했던 지난 2012년 12월 11일 서귀포 광장 대선 유세 때 한 말입니다.

"제가 드린 약속 100% 지켜지는 것 아시죠?"


태그:#박근혜, #제주 4.3 사건, #4.3 희생자 추념일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