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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콜트, 콜텍은 휀타(Fender), 아이바네즈(Ibanez)와 같은 세계 유명 브랜드 기타를 OEM 방식으로 수출하던 회사이다. 콜텍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에도 환율이 올라 돈을 긁었다는 얘기를 (공장에 있을 때) 듣곤 했다.

박영호는 2001년 즈음 (대전 콜텍) 공장에 와서 "이 공장에만 오면 기분이 좋다. 세계 속의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 명예를 갖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런 회사의 사장이 노동자들이 대화 좀 하자고 하면 "내가 왜 니들을 만나? 만날 필요 없어. 내 회사 내가 마음대로 한다는데 왜 말이 많아"라고 하며 피하기만 했다.

남녀 임금 차별에 관한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박영호에게 판사는 경영자로서 이 사태에 관하여 한마디 하라고 했다. 그러자 박영호는 "나는 우리나라 노조, ×× 같은 노동법 때문에 기업인으로서 경영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또 지인들이 자기를 악마로 취급하고 만나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말로는 경영상 위기 때문에 정리해고를 한 기업이지만 콜텍은 해고 당시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사업을 확대해 기타와 앰프를 생산하고 있었다. 현재는 서울 강서구 등촌동 콜텍 본사에서 관리를 하고 서울 강남에서는 '기타네트'라는 이름으로 A/S 영업을 한다.

대법원 판결 후 콜텍 회사는 대전 공장을 청소하고 잡쓰레기를 정리정돈 하였다. 최근 인천 청천동 공단에 공장도 새로 인수했다. 일각에서는 박영호가 다시 국내 공장을 가동하려고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한다. 정리해고 시점부터 지금까지 재무구조가 양호했던 회사를 보면, "미래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가 있을 수 있어 해고는 정당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은 점점 의심스러운 상황이 되고 있다.

공장에서 늙어간 노동자들은 해고된 후 비정규직, 일일노동으로 살아왔고 그동안 쌓인 가계부채 때문에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작년 11월 중순 해고자들에게 배달된 우편물 속엔 해고무효 소송 재판 비용 내용증명이 들어 있었다. 노조 지회장과 간부들에게 300(만)에서 500만 원씩, 일반 조합원 24명에게는 각각 155만 원씩 2015년 1월 31일까지 내라는 것과 기일 안에 내지 않으면 강제 집행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콜텍 조합원들에게 청구된 소송비용은 모두 합쳐서 5천만 원이다.

콜텍지회는 근심 걱정 가득한 조합원의 얼굴을 보면서 소송비용은 투쟁 과정 속에서 발생한 비용이기에 조합원들에게 전가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후 이인근 지회장이 금속노조 대전 충북지부 사무처 동지들에게 소송비용에 대해 얘기를 꺼냈고, 고민 좀 해달라고 하니 사무처 동지들은 운영위원회 회의 안건으로 올리고 그 속에서 논의해서 해결을 보자고 했다.

9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며 힘을 주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대전에서 주점을 하기로 했다. 막상 날이 잡히다 보니 (4월 9일 민주노총 대전본부 식당) 불안하다. 대전 지역의 사업장 방문, 사회단체 방문 등 할 일이 태산인데, 이제 조합원들도 생계(투쟁) 나가고 함께 준비할 사람이 적다. 주점을 준비하려면 역할을 맡아서 할 사람이 필요한데…. 고민 끝에 다시 민주노총의 대전본부의 사무처와 노동당 대전시당의 이점진 동지한테 경봉 형이 전화를 했다. 그러자 "그까이꺼 하면 되지 뭐 걱정이야?"라며 흔쾌히 도움 요청을 받아주었다.

그래도 인원이 한둘이 필요한 것이 아닌데 걱정이었다. 이점진 동지에게 경봉 형이 "조합원들은 (일일주점이) 주중이라 참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얘기하며 말끝을 흐리니 이점진 동지는 누구누구 이름을 대면서 함께 준비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경봉 형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고개를 떨궜다.

상경투쟁 한다고 5년째 인천에 올라와 농성하다보니 지역의 동지들과 함께 한 시간이 적었고 지역 일도 소홀했다. 어려울 때 의지할 곳이 대전의 동지들이지만 막상 주점한다고 연락을 한다는 게 염치없다는 생각이 든다. 발등에 불을 꺼야 되겠기에 염치불구하고 대전지역의 동지들이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이번 소송비용 마련 사업을 하면서 우리 주변엔 여전히 콜텍의 해고자들을 걱정해주고 마음 가져주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이래서 세상은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새겨본다.

2015년 3월 31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마지막이 돼야 할 일일주점... '9년 농성' 지켜봐준 사람들 모인다

일일주점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콜밴
 일일주점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콜밴
ⓒ 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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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후 농성이 9년째이니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간 또한 길다. 민주노총 대전본부나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의 여러 간부들, 그리고 대전의 사회단체의 활동가들은 콜텍에 관한 기억을 긴밀하게 나누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콜텍 해고자들, 특히 인천으로 농성 온 이인근, 임재춘, 김경봉 해고자들에게는 끝내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비빌 언덕이다.

참으로 9년 동안 염치없이 의지했다고 이인근 지회장은 말한다. 이번에도 일일주점 티켓을 팔러 대전의 사업장을 방문하면서 그는 제발 이번이 마지막 부탁이길 바랐다고 한다. 2009년 독일과 미국 등으로 부당해고를 알리러 원정투쟁을 나갈 때도 대전의 노조 상급단체와 시민단체들은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해고 후 대전 콜텍공장에서 일일주점만 세 번 했고, 민주노총 대전본부는 정리해고자들을 후원하는 CMS를 모으기도 했다. 대전의 어떤 사회단체의 활동가는 개인적인 책무감으로 등산복을 단체주문 해 팔고 그 수익금을 콜텍 해고자들의 생계비로 내놓기도 했다. 

후원은 금전적인 지원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마음을 담아 줄곧 농성장의 발길로 이어져왔다. 한 달에 한두 번 대전에서부터 인천 갈산동 농성장으로 대전의 노조간부들이나 시민단체 회원들이 찾아온다. 딱히 정해진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들은 '꿍쳐둔' 용돈으로 고기나 과일 같은 음식을 준비해와 천막 농성장에 머물다 간다.

나는 종종 목격하곤 한다. 전화상으로 대전의 그 사람들은 그저 안부 인사, 그저 아침인사를 던지고, 일상적인 농담에 힘 주는 말들을 보내준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또한 의아했다. 아무리 정당한 싸움이라 하더라도 9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시간이고, 장기농성자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그 마음 또한 식어버린들 이상하지 않는데. 대전의 그 사람들은 참으로 길고도 꾸준하게 농성자들을 지켜주고 있다. 또한 그 관계에선 마음이 실린 말과 행동, 눈빛 같은 것이 있다.

일일주점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콜밴
 일일주점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콜밴
ⓒ 최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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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콜텍의 조합원들과 인연을 쌓아온 민주노총 대전본부의 박모은 교육부장에게 나는 이 글을 준비하며 그 의아함을 질문으로 던졌다. 할 만큼 했다는 말이 나올 법한 그 시간, 대전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지금까지 콜텍 해고자들을 후원할 수 있었는지, 그 동인은 무엇인가에 대해. 그러자 박모은 교육부장은 자신뿐만 아니라 이번 일일주점도 대전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반감도 있고 힘든 일도 있지만 그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답해주었다. 또 이런 말을 해주었다.

"콜텍 해고자들의 입장에서 이 싸움은 할 만큼 했다고 접을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물론 대전지역에서 많은 후원들을 해왔지요. 하지만 그분들이 할 만큼 했다고 말할 수 없다면, 지원하고 연대하는 사람들 또한 '할 만큼'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오랫동안 콜텍 농성자들이 지역을 떠나 있으면서 잊히진 않을까 걱정이지요. 나는 아직도 2006년 콜텍의 언니, 오빠들이 대전 공장에서 농성하고 싸우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렇게 쌓인 믿음과 정이 있어서인지, 후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은 애정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열악한 노동환경, 외진 공장, 나이 많은 노동자들, 그렇기에 오히려 노조를 만들고 회사의 부당함에 저항하는 것이 더욱 힘든 세상. 그런 세상에서 콜텍의 노동자들은 회사 측의 여성노동자 임금차별에 대한 형사처벌과 차별임금에 대한 청구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이끌어낸 장본인이었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생긴 이래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의미 있는 행동으로 기억되었고, 콜텍의 정리해고에 대한 콜텍지회의 싸움에도 대전지역의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 연대했다.

정리해고 무효소송에서 콜텍 해고자들은 패소했다. 해고 당시에나 지금이나 콜텍의 경영상 위기는 확인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소송비용 5천만 원이 콜텍의 해고자들에게 떠넘겨졌다. '대전'이란 시민사회는 콜텍 해고자들의 소송비용을 함께 부담하고자 일일주점을 준비한다. 4월 9일(목), 민주노총 대전본부 식당에서는 콜텍 해고자들의 9년 농성을 지켜봐준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흐른다. 대전의 노조 상근자들이나 단체 활동가들의 임기는 채워지고, 세대는 교체된다. 그리고 콜텍에 대한 기억은 어쩔 수 없이 퇴색한다. 해고자들이 일일주점 티켓을 건네며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말하는 이 순간에도 콜텍 회사는 영업을 하여 이익을 남기고, 문화재단이란 걸 통해 기부를 한다. 그리고 이미지는 세탁이 된다. 정말 염치없는 존재들은 위기 없이 해고한 사람들이고, 그 부당함에 정당성을 부여한 법원의 판사들인데…. 염치없음에 해고자들의 몸이 자꾸만 움츠러든다.

금속노조 콜텍지회 일일주점 포스터
 금속노조 콜텍지회 일일주점 포스터
ⓒ 콜텍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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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콜트콜텍, #위장폐업, #정리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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