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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손님은 아내"라고 말하는 정현씨가 하루 중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아내 정미진씨와 함께 조용히 앉아 모닝커피를 마시는 10여 분의 시간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이 부부는  커피만큼 진한 사연을 하나 품고 있다.

3년 전만 해도 남편은 독수공방 하며 조각에만 몰두했고, 아내는 미술교습소하는 것에 몰두하며 삶을 이어왔다. 자녀들은 커가고, 생활고에 부딪힌 이 부부가 선택한 이 카페에서 이들은 희망을 조금씩 저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정현 정미진 부부 3년 전만 해도 남편은 독수공방 하며 조각에만 몰두했고, 아내는 미술교습소하는 것에 몰두하며 삶을 이어왔다. 자녀들은 커가고, 생활고에 부딪힌 이 부부가 선택한 이 카페에서 이들은 희망을 조금씩 저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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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 산다는 배고픈 현실이 카페를 열다

지난 13일, 경기도 안성 대림동산의 M카페를 찾았다. 이집 인테리어가 특이하다. 아니 기이하다고 해야 할까. 카페의 외벽도 내벽도 모두 투박한 콘크리트 벽으로 되어 있다. 마치 공사하다 만 벽처럼 보인다. 의자도 탁자도 한 세트가 아니다. 웬만하면 제각기다. 걸려 있는 조각품도 일반인들이 보기엔 좀 난해하다.

"이건 순전히 경제적 사정 때문이에요. 호호호"라 말하는 아내 미진씨. 하지만, 세트로 맞추는 것이 맞다 생각했으면 돈이 들더라도 했을 터. 뭔가 특별한 냄새(?)가 이 부부에게서 난다.

그랬다. 이 부부는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그동안 아내는 조그만 미술교습소를, 남편은 조각을 하며 살아왔다. 걸려 있는 조각품도 남편 정현씨의 작품이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남편이 20년을 조각가에 '올인'하면 시원한 결과를 볼 거라 믿고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자녀들은 점점 커가고 허덕이는 생활고가 이들을 옥죄었다. 대한민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건 역시 배고픈 현실이었다. 현실에 몰려 이 부부가 선택한 것이 바로 3년 전 이 카페였다.

"카페는 '로망'이 아니라 '현실'입디다."

"'예술가들이 나이 들면 카페나 하며 예술 하겠다'는 로망이 있죠. 하지만 해보니까 알겠던데요. 이건 로망이 아니라 현실입디다."

정현씨는 예술 하는 후배들에게도 "너희가 예술 하는 거 힘들다 하지마라. 현실이 더 힘들다"며 조언했다고 한다.

전에 자신도 조각만 하다가 현실에 무관심하고 무감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예컨대 '세월호사고'만 해도 조각하는 시절이었다면 남의 자식 일처럼 여겼겠지만, 지금은 자신의 자식 일처럼 책임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런 부부를 향해 예술 하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엇갈린다. "현실과 타협했다"는 부정적 시선과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는 긍정적 시선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부부는 잘 안다. 남의 시선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삶이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을.

이 부부는 이제 서로 "우리는 호흡 하나는 잘 맞는 거 같다"고 했다. 손님이 오자 부부는 자신의 분야를 찾아서 척척 해내어 손님의 상을 준비해냈다. 두 사람은 이제 하모니를 이루어 삶을 조각하고 있었다.
▲ 하모니 이 부부는 이제 서로 "우리는 호흡 하나는 잘 맞는 거 같다"고 했다. 손님이 오자 부부는 자신의 분야를 찾아서 척척 해내어 손님의 상을 준비해냈다. 두 사람은 이제 하모니를 이루어 삶을 조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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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티끌만한 희망을 저축합니다"

생전 남의 비위를 맞춰가며 살지 않았던 정현씨는 "이젠 마음에 들지 않은 손님에게도 침묵하는 법을 익히고 있다"면서, "이렇게 삶을 배워가는 것 같다"고 웃는다.

아내는 "손님의 빈 그릇을 쳐다보는 게 습관"이라며 "깨끗하게 비웠으면 기분이 좋지만, 덜 비웠으면 괜히 신경 쓰인다"고 했다. 손님의 그릇을 보며 일희일비하는 이 부부는 진정한 '생활의 달인'이 되어가는 듯 보인다.

"지금은 전에 보다 희망이 티끌만큼이라도 눈에 보입니다. 사실 조각만 할 땐 희망조차 보이지 않았죠. 막연한 희망을 부여잡고 살았죠. 지금은 뭔가를 하면, 적은 거라도 바로바로 경제적 피드백이 돌아오니 살겠더라고요."

정현씨는 "지금은 우리가 작은 거라도 희망을 저축하는 것 같다"며 미소를 보였다. 가끔씩 조각하는 걸 쉬고 있어서 아쉬움이 남지만, 이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지금은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에 '올인'한다"며 한꺼번에 두 가지를 못하는 자신의 성격을 넌지시 귀띔해주었다.

이집엔 커피 등 각종 차와 경양식 음식이 나온다. 처음에 커피로 시작했다가 하면서 커피도, 각종 차도, 음식도 새롭게 창작되어 이 집만의 작품이 되어가고 있다.
▲ 스파게티 이집엔 커피 등 각종 차와 경양식 음식이 나온다. 처음에 커피로 시작했다가 하면서 커피도, 각종 차도, 음식도 새롭게 창작되어 이 집만의 작품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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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카페에서 '희망의 하모니'를 조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부는 여기서 그들만의 창작을 해나가고 있다. 이 집은 원래 커피숍으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양식 음식도 취급한다. 커피도, 양식 음식도, 각종 차도, 팥빙수도 모두 처음엔 레시피대로 했다가 모두 이 집만의 수제품으로 거듭났다. 이 부부의 손에 들어가기만 하면 신선한 작품이 나온다.

"새로 만드는 재미가 있다"고 아내 미진씨가 말한다. 어련하실까. 예술 하던 사람들이 남이 하던 대로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것은 그들의 핏속에 이미 충분할 테니까. 이젠 손님들도 이집만의 음식과 커피 매력을 잘 안다.

손님이 오면 남편 정현씨는 정성을 다해 커피를 내리고, 아내 미진씨는 음식을 요리한다. 실제로 손님이 오니 이 부부는 좁은 주방에서 전혀 부딪힘도 없이 척척 자신의 일을 해내며 손님이 주문한 상을 단박에 내온다. "첨엔 삐걱댔지만, 이젠 우리 부부는 호흡 하나는 잘 맞는 것 같다"며 미진씨가 웃는다.

아하! 아무런 미사여구가 필요 없다. 그냥 이 부부는 전엔 예술작품을 조각했다면, 이젠 삶을 조각하고 있다. 그것도 그전엔 각자 따로 했다면, 이젠 하모니를 이루어 함께 조각하고 있다.

이집의 특징은 카페 내벽과 외벽 모두가 투박한 콘크리트 라는 것. 의자와 테이블도 제각기 라는 것, 벽면에 남편 정현씨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다는 것 등이다. 모두 이 부부의 예술적 감각이라고나 할까. 사실은 경제적이유라며 아내 정미진씨가 웃는다.
▲ 카페 내부 이집의 특징은 카페 내벽과 외벽 모두가 투박한 콘크리트 라는 것. 의자와 테이블도 제각기 라는 것, 벽면에 남편 정현씨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다는 것 등이다. 모두 이 부부의 예술적 감각이라고나 할까. 사실은 경제적이유라며 아내 정미진씨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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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남편이 만든 커피를 부부가 같이 마시며, "나의 첫손님은 아내"라고 말하던 정현씨의 말이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이 부부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태그:#카페, #조각가, #예술가, #부부,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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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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