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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 한 달 만에 당명을 잃었다. 2012년 4.11 총선 전국득표율이 2%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정당등록이 취소된 것. 1년 8개월간의 헌법소송 끝에 다시 당명을 찾았다. 이 당의 이름은 녹색당이다.

녹색당이 여러 우여곡절을 딛고 지난 4일 창당 3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아직 국회의원 한 명 없는 원외정당인 데다가,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도 완패했다. 그렇다보니 대중적인 인지도도 낮은 편이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위원장
 하승수 녹색당 공동위원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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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녹색당사에서 만난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은 "법무부마저도 녹색당을 '환경보호단체'라고 부른다"라며 "'시민단체', '환경 문제를 다루는 정당'이라는 오해를 마주할 때마다 잠이 안 온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녹색의 가치를 토대로 사회문제 해결과 문명의 전환을 추구하는 정당"이라고 부연했다.

하 위원장은 지난 3년을 '최소한의 정당 기반이 마련된 시간'으로 정의했다. 그는 "그동안 선거를 두 차례 치르면서 당원을 늘렸고, 녹색당이 표방하는 정책도 만들어 공론화했다"라며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에 이제는 도약할 때가 됐다"라고 말했다.

녹색당의 다음 목표는 2016년 총선을 통해 원내에 진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정당과의 세력 재편은 거부한다. 오로지 '마이웨이'로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방침이다. 하 위원장은 "선거 때마다 권력 재편이 이뤄지는 정치 지형 속에서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가는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라며 "현실의 벽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우직하게 가다 보면 길이 열리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다음은 하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홍준표, 자기는 공짜로 밥 먹으면서 학생들은 돈 내라?"

- 녹색당이 우여곡절을 딛고 창당 3주년을 맞았다. 최근에는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한 홍준표 경남지사를 두고 쓴 논평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소회가 어떤가.
"우리 논평(도지사의 간담회 식비부터 공금이 아닌 개인 돈으로 해결하라는 취지의 논평 - 기자 주)이 그렇게 회자될 줄은 몰랐다. 우리나라에서 이미 무상급식은 하나의 권리로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홍 지사가 이에 역행하는 발언을 해 세게 비판한 것이다. 사실 무상급식이 아니라 기본급식이라는 표현이 맞다. 학교 급식은 교육의 일환이므로 하나의 권리로 보장받아야 한다. 학생이 식당 손님은 아니지 않나. 도지사가 시혜 베풀 듯이 마음대로 정할 일이 아니다. 자기는 간담회 식비로 한 끼에 평균 2만8000원을 공짜로 쓰고 있으면서 학생들은 돈 내고 먹으라는 게 말이 되나.

녹색당은 아주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최소한의 정당 기반을 마련해왔다. 우리 당원들이 정치적으로 단련되는 과정이었다. 선거도 두 차례 치렀고 당원도 늘려왔다. 녹색당이 표방하는 정책도 만들고 다듬어 공론화했다.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에 이제는 도약할 때가 됐다. 그래서 올해의 목표는 도약으로 정했다."

- 원외 진보정당인 녹색당이 지난 3년간 한국정치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녹색당이 창당 전부터 추진해온 의제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우리가 창당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니 다들 원전 정책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탈핵·탈원전 의제는 다른 정당들을 일정 정도 견인하는 역할을 해낸 셈이다. 동물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원외정당이라 법안 발의는 직접 하지 못했지만, 다른 당 소속 원내 국회의원들과 함께 공동 법안 발의를 추진했다.

우리나라 정당 역사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해냈다. 녹색당은 전국득표율이 2%에 못 미치면 정당 등록이 취소되는 정당법 조항을 소송을 통해 없앴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가로막는 악법을 고친 것이다. 이를 두고 다른 정당에서도 '녹색당이 큰 일 했다'고 칭찬했다."

- 탈핵·탈원전, 동물권 등의 의제는 다른 정당에서도 독자적으로 다루고 있다. 녹색당의 필요성과 역할이 모호해지는 것 아닌가.
"탈핵이나 동물권 등은 개별 국회의원이 혼자 말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유명 정치인이 지나가면서 한 마디 하는 건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 당론으로 정해서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어야 그 정당이 문제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그게 녹색당과 다른 정당들의 차이다. 우리는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정의당 등이 쉽게 당론으로 채택하지 못하는 의제들을 당 차원에서 추진한다.

더 나아가 녹색당은 사회 문제를 야기하는 시스템을 바꾸자는 입장이다. 다른 정당처럼 단순히 이슈별로 접근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고리 원전 1호기 폐쇄는 개별적으로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원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전기소비 구조를 바꿔야 탈핵으로 나아갈 수 있다. 노후 원전 가동 중단과 더불어, 산업용 전기요금을 최소 50% 이상 올려 전기소비를 잡아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화석원료에 의존하는 에너지소비 구조를 전환하는 식으로 문명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당정치는 정당이 주체다. 정당의 공식 의견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우리나라 정당들은 당론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얘기하는 측면이 있다. 새정치연합만 해도 원전에 대한 당론이 없다. 당 내부적으로 원전 재검토 수준의 공감대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그렇다면 한국 정치지형 안에서 녹색당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녹색당은 근본적인 사회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정당이다. 기존 체제 안에서의 개선 정도가 아니다. 장기적인 문명의 전환을 목표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한국에서 가장 급진적인 정당이라 볼 수도 있겠다.

또한 한국 정당사에서 녹색당처럼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창당된 진보정당이 있을까 싶다. 기존의 민주노동당만 해도 과거 노동·사회운동 세력들이 조직적으로 결의해 만든 정당이다. 우리 당은 소위 '운동권'이라는 조직이 만든 게 아니라, 녹색이라는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창당했다. 이런 정당이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다는 건 새로운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법무부마저 '환경단체'라고... 원외정당이라 인지도 올릴 기회 없어"

하승수 녹색당 공동위원장
 하승수 녹색당 공동위원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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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월에 당명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최근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세월호 참사 관련 정보공개소송을 진행 중인데, 법무부가 준비서면에서 녹색당을 '환경보호단체'라고 표기했다. 정치하려고 정당을 만든 우리를 시민단체로 오해할 때마다 정말 잠이 안 온다.

한 정당이 유권자에게 정당 자체로 인식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린다. 정의당 당원들도 자기 정당을 설명할 때 '노회찬·심상정이 있는 당'이라 설명한다고 들었다. 게다가 녹색당은 스타 정치인도 없고, 원외정당이다 보니 인지도를 올릴 기회가 별로 없다. 정당 여론조사에서도 '기타정당'으로 분류된다. 언론 노출 기회 역시 적다보니 당원들이 발로 뛰며 홍보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녹색당의 운영 방식이 기존 정당과 다르다 보니 '저게 무슨 정당이냐'는 시선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당원들이 모여 선거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동네에 모여서 맥주를 만들거나 텃밭을 가꾼다. 일종의 '생활 나눔'을 위주로 정당 활동을 이어간다."

- 하지만 시민운동 방식으로는 선거에서 유권자의 표를 얻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지난 6.4 지방선거에서는 그나마 있던 의석수가 0석으로 줄었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평가하면서 정리한 게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책이 아무리 좋다 해도 유권자들에게 득표로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녹색당도 선거를 염두에 두고 권력의지를 바탕으로 활동해야 한다. 물론 당내 일각에서는 굳이 '권력의지'라는 표현을 써야 하나라는 의견이 있지만, '정당인 이상 표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에는 다들 동의한다.

지난 지방선거를 계기로 기존 정치에서 받아들일 것과 받아들이지 말 것을 구분하게 되기도 했다. 녹색당이 정치 선거에 참여하는 이상 전략을 세워야 한다. 선거 전략은 기존 정당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러나 기존 정당들과 다른 문화와 정체성은 포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추점대의원제 등 녹색당만의 민주주의는 지켜야 한다. 반면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에서 주장하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는 정당정치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 환경 이슈를 주로 다루는 정당이 한국사회에서 등장한 게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아직 노동 분야도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수준 아닌가.
"녹색당을 둘러싼 대표적 편견이 '시민단체', 그 다음이 '환경정당'이다. 우리는 환경 이슈를 다루려고 만든 정당이 아니다. 녹색의 관점에서 노동 등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다. 유럽 녹색당도 창당할 때는 핵발전소 문제에 집중했지만, 점차 정치·경제 영역으로 확장해 정책을 개발하며 선거를 치렀다. 일자리 확대와 생활임금 보장 등을 골자로 한 '녹색뉴딜' 정책이 대표적이다. 재상가능에너지를 개발해 일자리를 늘린다는 식으로 사회문제에 접근한다.

한국 녹색당도 마찬가지다. 원전 심야노동, 피폭노동 등은 녹색당의 관점으로 제시한 노동 문제다. 우리만의 시각으로 새로운 의제를 던지기도 한다. 당론 채택을 추진 중인 '기본소득'이 대표적 예다. 대기업 세금 특혜 철회, 생태부담금 신설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1인당 월 40만 원의 기본 소득을 보장한다는 개념이다. '모두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든다'는 녹색당의 가치를 기반으로 내놓은 해법인 것이다."

"'마이웨이'로 성공하는 진보정당, 하나쯤은 있어야"

- 창당 3주년 보도자료를 통해 '2016년 원내 진입' 목표를 드러냈다. 특별한 전략이 있나.
"비례대표 당선에 집중해 원내에 진입하는 게 목표다. 서울을 포함한 대도시와 거점 지역에도 지역구 후보를 낼 예정이다. 지역구 당선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일단 후보는 내야 한다는 방침이다. 비례대표는 선거 승리를 위해 인지도가 높은 인물로 당 내외에서 발굴하려 한다. 물론 녹색당의 가치와 정책을 상징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비례대표 선출은 연말까지 끝내는 게 목표다. 연내에 후보군을 확정해 선거운동에 일찍 들어갈 것이다."

- 녹색당은 진보세력 재편 논의에 불참한다는 방침이다. 진보정당간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독자노선만으로 내년 총선 원내 진입이 가능할까.
"녹색당은 선거 때마다 권력 재편이 이뤄지는 정치 지형 속에서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가는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현실의 벽이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열정과 지혜로 넘어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한국정치에는 변수가 많지 않나. '우공이산'이라는 말처럼, 우직하게 가다보면 길이 열리지 않을까. '마이웨이'로 성공하는 진보정당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우리는 초창기에 '반정당의 정당'이랑 말을 썼다. 그걸 풀어서 '다른 정당'이라고 설명한다. 정당인 것은 분명하지만, 기존 정당들과 똑같이 정치하려고 정당을 만든 게 아니다. 이 점을 앞으로도 지켜가려 한다."

- 최근 정치권에서 선거제도 개혁 움직임이 일고 있다. 녹색당의 입장은 무엇인가.
"최소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개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독일에서는 녹색당 같은 소수정당이 지지율 8%만 얻어도 40석 이상을 확보한다. 우리나라도 다양한 소수정당의 정치 진입을 허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특히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가 정치에 잘 반영되게끔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신자유주의 경제 흐름 속에서도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한 나라들의 선거제도를 보면 대부분 독일과 같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있다. 녹색당은 원외정당이지만 올해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개입하려 한다. 시민사회와도 협력할 계획이다."

- 녹색당의 장기적인 목표와 계획은 무엇인가.
"녹색당은 창당하면서 '이름 바꾸지 않고 100년 가는 정당이 되자'고 목표를 세웠다. 정당이 100년을 이어가려면 정치적 시민권을 얻어야 한다. 2016년 총선에서 녹색당 국회의원을 배출하려는 이유다. 지금까지 정당 취소 등의 우여곡절을 겪고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 더욱 좌절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시민권이 반드시 필요하다.

원내정당이 되면 장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연구소도 설립해 한국사회를 변화시킬 정책을 만들어낼 것이다. 단순히 문제만 제기하는 소수정당에 그치지 않고, 대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정당이 되고자 한다. 그러려면 정치적 시민권을 얻어 원내에 진입해야 한다. 녹색당에게 다음 총선은 절박한 숙제다."


태그:#녹색당, #하승수, #탈핵, #홍준표, #무상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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