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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이용구 총장님께 올림.

안녕하세요? 저는 우리 대학의 '학문단위 구조조정' 소식을 연일 접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언론에 알려졌듯, 우리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정부정책과 (이후 재정지원 사업에 연계되는) 평가에 대비하고 대학의 미래를 준비한다며, 지난 2월 26일 60여 명의 기자들에게 '학문 단위 구조조정 계획안'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이에 대한 언론보도가 꾸준히 나오고, 갈등도 대학사회 전반으로 확대돼 큰 논란이 있습니다(관련 기사: 중앙대 내년 학과 폐지...'기업식 구조조정' 또 논란). 이를 통해 이번 구조조정이 중앙대뿐만 아니라 국내 대학교육 전체에 끼치는 파급력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총장님께서도 확인하시듯, 저는 학교 측이 줄곧 사용해온 '구조개편', '학사 구조 선진화' 등의 말을 쓰지 않고 '구조조정'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총장님께서 하시는 일을 결코 개편이나 선진화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총장님의 교육철학에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왜 반대하는지, 그 이유를 조목조목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대학의 존재의의가 왜 '경쟁형' 인간 육성에 달려 있나요?

지난 2일 중앙대학교 본부 측은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구조조정 설명회를 열고, 이어 3일에 안성캠퍼스에서도 설명회를 열었다.
 지난 2일 중앙대학교 본부 측은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구조조정 설명회를 열고, 이어 3일에 안성캠퍼스에서도 설명회를 열었다.
ⓒ 독립언론 제목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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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본부 측은 "과정이나 결과 모두에 있어 대학 구성원들과의 원활한 소통구조를 견지"할 것이라고 밝혀 왔으면서도, 꾸준히 '경쟁력'이라는 가치를 강조해 구성원들을 설득했습니다.

연례로 각종 기성언론 등에서 평가한 대학순위를 학교 커뮤니티 '상단고정게시물'로 게시해 시각적인 자극을 줍니다. 또한, 지난 1월에는 '신자유주의 이념 전파'와 '재벌양성의 산실'인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측정한 대학 '경쟁사회 부합도' 순위를 거론하며, 대학의 존재 의의와 생존까지 언급했지요.

저는 대학의 존재 의의가 '경쟁형' 인간 양성 사회에 부합하는 데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대학을 저의 실존에서 행복을 얻고, 나아가 공동체와 더불어 살 수 있는 '조화형' 인간이 되기 위해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능력을 기르고, 인간과 사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히려 총장님과 대학 본부 측에 여쭙고 싶습니다.

대학의 존재의의는 왜 '경쟁'에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은 누구로부터 비롯된 인간관입니까?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전제" 자체는 건드릴 수 없게 고정해 놓고, 거기에 다른 세부적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서만 소통하는 것도 문제적입니다. 전제 자체에 대해서는 구성원들이 합리적 검토에 참여할 수 없고, 맞지 않을 경우 원점 재검토까지 시킬 권력이 없는 대학은 철학이 없는 대학이며, '학생 중심'도 '교수 중심'도 아닌 '본부 이데올로기 중심' 대학입니다.

'강제된' 시대상황 속에서의 전공 선택권? 진정한 자유가 아닙니다

중앙대학교 본부 측에서 배부한 <중앙대학교 학생중심의 교육혁신 계획> 자료. 이 자료에서 학교 측은 수요자 친화적인 교육을 도입하겠다며, 도입과 학과단위로 운영되던 정원을 계열별 정원으로 운영하고 단과대학 단위로 모집단위를 광역화해 ‘유연한 학문단위 구조를 구축’하고 ‘학생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육 시스템 구성’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자유 교양 교육(Liberal Arts Education) 과정을 도입해, 1학년부터 2학년 1학기까지는 교양 및 대학별 공통교육을 이수한 후 주전공을 선택하는 ‘전공선택제’ 등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중앙대학교 본부 측에서 배부한 <중앙대학교 학생중심의 교육혁신 계획> 자료. 이 자료에서 학교 측은 수요자 친화적인 교육을 도입하겠다며, 도입과 학과단위로 운영되던 정원을 계열별 정원으로 운영하고 단과대학 단위로 모집단위를 광역화해 ‘유연한 학문단위 구조를 구축’하고 ‘학생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육 시스템 구성’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자유 교양 교육(Liberal Arts Education) 과정을 도입해, 1학년부터 2학년 1학기까지는 교양 및 대학별 공통교육을 이수한 후 주전공을 선택하는 ‘전공선택제’ 등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 독립언론 제목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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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총장님께서 학교 구성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포함된 자료에서(관련 자료: 중앙대학교 학생 중심 교육혁신 계획), 총장님은 학생들이 전공 없이 단과대 소속 1학년으로 입학해 (교양 등 공통교육 이수 후) 2학년 1학기부터 주전공을 선택하도록 '학생중심 교육'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달콤한 언어 속에 얼마나 무서운 교육철학이 포함돼 있는지, 그리고 총장님께서 이를 '진심으로' 신념으로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저는 등줄기가 오싹했습니다.

총장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취업난과 과열된 경쟁사회라는 이미 '강제된' 상황 속에서, 학생들이 취업에 유리한 전공을 선택할 여지가 생기는 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생중심 교육'이라 할 수 있습니까? 진정한 자유는 수요공급 논리로, 시대에 순응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노동력 상품처럼 취급하는 시대와 대결해 그런 부조리한 상황 자체를 바꾸는 학문 정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이 완전히 시대의 요구를 외면할 수는 없지만, 시대와 대결할 것이 어느 때보다도 요청되는 시대에 이에 역행하는 것은 '산업자본주의 중심교육'을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산업수요'에 발 맞춰가겠다며, '학사구조 유연화'를 도모한다는 것이 수백만 비정규직을 양산한 '노동 유연화'의 시장질서 패러다임을 떠올리는 것은 순전히 제 기분 탓이길 바랍니다. 어쨌든, 이제 취업에 유리한, 경영경제계열이나 공학계열 등이 아니고서야 기초학문들이 학생 선호가 낮을 것은 예고된 수순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암울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가진 인식이란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부추기는 대학 정책에 저는 어떠한 진정한 자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인문학 전공자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고, 융·복합 전공을 늘리고, 현실적으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정원 재조정도 필요하다는 데 이견은 없습니다. 하지만 융·복합으로 특정된 연구분야가 제 기능을 하려면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기초학문이 탄탄해야 합니다. 가령, 인지과학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언어학·생물학·철학 등이 있어야 합니다. 즉 융·복합 전공은 자신의 성과에 도달하기 위해 독립적인 기초학문의 성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력'에 초점을 맞춰 기초학문을 융·복합 전공으로 변모시킨다는 사고 방식은, 결국 그것이 기댈 기초학문의 멸종을 낳게 될 것입니다. 혹여 다른 대학들이 너도나도 '경쟁력'을 강화한다며 중앙대의 구조조정을 모델 삼기라도 한다면, 기존의 비교우위 착시효과도 금세 사라지고 결국 남는 것은 고사된 기초학문의 황량한 빈자리뿐일 것 입니다. 즉, 학문은 조화가 아닌 경쟁 때문에 자멸하게 될 것 입니다.

기초학문에 대해 모호하지 않은 입장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이용구 총장은 자신의 교육철학에 대해,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 설명회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간식을 배부하는 이용구 총장 이용구 총장은 자신의 교육철학에 대해,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 독립언론 제목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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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께서는 학생들의 전공선택이 낮은 전공에 대해서,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거나 융·복합 학문단위로 변모할 수 있게끔 하도록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언론들이 기초학문 고사(枯死)에 대한 전망을 내놓자, 구성원들에게 전체 이메일을 보내 "전공별 모집인원과 기초학문 여부 등의 학문특성을 고려"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뒤에 총장님께서 "한 전공에만 학생들이 지원하지 않는 사태가 수년 지속되더라도 그 전공이 타 전공과 융합하거나 새로운 전공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간을 충분히 제공"할 것이라고 하신 부분은 앞뒤가 맞지 않게 느껴집니다. 결국 기간을 얼마를 주든 '융합'되거나 '새로운 전공'이 된다면, 결국 해당 기초학문 자체는 사라지는 것인데 기초학문의 토대를 굳건히 하신다는 것은 무슨 논리적 흐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대학이 줄곧 기초학문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며,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다빈치형 인재' 역시 인문학적 '소양'을 일부 갖춘 다재다능한 창의적 전문인이지, 기초학문 학자로서의 인재상은 아닙니다. 이제 구조조정에 대한 그릇된 기본방향을 전면 재검토하시고, 모호하지 않은 입장을 밝혀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대학이 다빈치형 인재뿐 아니라, 하버마스나 하이젠베르크같은 인재도 나올 수 있도록 '기초학문'을 융복합 학문 양성과 상관 없이 그대로 지키겠다고 말입니다.

우리 대학 구성원들뿐 아니라, 국민들이 중앙대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책임감이 무겁습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생존을 위협 하는 것은 세상을 시장 지배 이데올로기 질서를 통해서만 바라보는 우리 스스로의 사고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은 나아갈 때가 아닌, 멈춰서서 반성할 때입니다.

"우리의 실천에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사고도식 또한 사회적 사실에 대한 선택적 해석을 초래함으로써 상황 속의 중요한 요소들에 대해 주의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 악셀 호네트, <물화>


태그:#중앙대학교, #중앙대, #이용구 총장, #구조조정, #대학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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