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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이주노동자 23만명 시대. 한국인들이 더럽고, 힘들고, 위험하다고(3D) 피하는 일자리에서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내는 이주노동자들. 그들을 빼고 한국의 산업을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의 노동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많았지만 정작 속내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이번 기획에서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주노동자의 모습을 담아본다. [편집자말]
지난 13일 젊은 베트남인 부부 M(31), J(28)과 함께 경기도의 한 병원을 찾았다. J는 며칠 전 이 병원에서 출산했다. 임신 34주 만의 조산이었다. 아기 엄마 J는 아기가 보고 싶어 집에서도 내내 울고 있었단다. 아기 울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고 한 번씩 젖이 돌 때면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는 J.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아기를 사흘 만에 만나는 이날. 2.2kg의 작고 여윈 몸에는 각종 튜브와 주사 바늘이 안쓰럽게 꽂혀 있었다. 아기는 울기도 힘든지 눈도 뜨지 못하고 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미숙아 아기 만나는 일도 조심스러운 산모

2.2kg 작은 몸으로 태어난 아기.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을 이어받았다.
 2.2kg 작은 몸으로 태어난 아기.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을 이어받았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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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가지고 간 모유를 조심스럽게 간호사에게 건넸다. 유축기로 짜 냉동실에 얼려 두었던 귀한 초유. 지금 J가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짜낸 모유를 사나흘에 한 번씩 건네는 게 전부다. 안아 주고 싶어도 젖을 물리고 싶어도 지금은 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당분간은 아기를 만나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 M과 J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녀야 할 불법체류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집에 있다가 갑자기 양수가 터졌어요. 다니던 병원에 가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이 병원을 알려줬어요. 아기 낳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기를 만나지 못하는 게 더 힘들어요. 매일 매일 와서 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요. 신고하면 바로 잡혀가서 출국 당하니까 마음대로 아기를 보러 갈 수가 없어요. 아기가 건강해질 때까지는 출국 당하면 안 되잖아요. 아직 입으로 젖을 넘기지 못한대요. 숨도 혼자서는 쉬지 못해서 기계가 있어야 하구요.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지만 아기 걱정에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아기 아빠 M은 한국에 온 지 5년차가 되어 가는 이주 노동자다. 베트남의 북부 도시 하노이 출신인 그는 외롭고 고단한 한국 생활 중 J를 만나 사랑을 키웠다. 그러다 J가 임신을 하게 됐고, 주변의 도움으로 조촐한 결혼식도 했다.        

"2년 전에 시장 가는 버스 안에서 J를 처음 봤어요. 친구랑 베트남 말로 이야기를 하는 J를 보고 한 눈에 반했어요. 웃는 모습도 예쁘고 눈도 예뻤어요. 그날은 아무 말도 못했는데 얼마 뒤에 우연히 또 버스에서 만났어요. 제 마음을 알았는지 J가 저에게 먼저 웃어줬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만나자고 이야기했지요."

M은 밝고 긍적적인 성격의 베트남 청년이다. 농촌 출신인 그는 육남매 중 다섯째로 부모에게 물려받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쌀 농사를 지어 살았지만 워낙 가족이 많다 보니 늘 가난했어요. 명절에도 고기 같은 건 잘 먹지 못해요. 돈을 벌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청년들도 집에서 놀아요. 청년들이 한국에 일하러 가고 싶어 해요. 한국은 베트남보다 돈을 더 많이 주니까요. 집에 돈이 없으니까 돈 빌려서 왔는데 그동안 돈 벌어서 빌린 돈 갚고 부모님께 보내고 그랬지요."

자신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먼 이국땅까지 와서 고생을 하고 있지만, 이제 태어난 아들에게는 자신이 겪은 가난과 설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M.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고, 그 아내의 몸에서 또 다른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더욱 더 열심히 일해야 겠다는 결심을 하고 또 했다. 

"J가 배가 불러오니까 힘든 일을 할 수 없어서 일을 그만뒀어요. 저는 비자 기간이 끝나서 베트남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한국에서 조금 더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J와 아기를 위해서는 돈을 더 벌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J 회사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밤낮 없이 열심히 일했어요. 야근을 하면 더 좋아요.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으니까요."

우리 아기가 불법이래요

한국에 더 남고 싶은 건 J도 마찬가지였다. 배는 불러오는데 아무 대책 없이 베트남에 돌아간다면 태어날 아기 역시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 것 같아 두려웠다. 그 마음이 엄마인 J를 불법 체류자로 만들었다. M과 함께 1년만 더 열심히 일해서 작은 가게라도 할 밑천을 만들어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던 것이다.

"저도 돈을 많이 모으지 못했어요. M하고 똑같아요. 여기 올 때 돈 빌려서 왔고 월급 받아서 빌린 돈 갚고 부모님에게 보내느라 힘들었거든요. 임신한 후에는 병원 다니면서 돈 많이 썼어요. 비자 기간이 끝나서 보험이 안 되니까 병원비도 비쌌어요."

엄마는 매일 아기 곁에 있고 싶지만 불법체류 사실이 밝혀질것이 두려워 자주 가지 못한다
 엄마는 매일 아기 곁에 있고 싶지만 불법체류 사실이 밝혀질것이 두려워 자주 가지 못한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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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는 J의 입술이 바짝 타들어간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고마운 한국인 부부가 기꺼이 자신들의 집에 데려가 산후조리를 시켜주고 있다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에 아이조차 인큐베이터에 떼어 놓은 엄마의 몸과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문득문득 베트남에 있는 친정엄마 생각이 나서 남몰래 흐느끼기도 한다.

"엄마한테는 전화로 말했어요. 엄마도 걱정을 많이 하지요. 하지만 저를 도와줄 수 없어요. 엄마도 많이 아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거든요. 그래도 아기를 낳고 나니까 엄마 생각이 많이 나요."

J의 고향은 베트남의 남부 도시인 호찌민. 좋지 않은 교통 상황에 워낙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임을 감안하면 하노이 남자와 호찌민 여자가 만나는 건 베트남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이들은 마치 독일에 돈 벌러 가서 만나 사랑을 하게 된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함경남도 흥남)와 영자(경상남도) 커플처럼 예쁜 사랑을 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징표로 아기를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불법 체류자라는 부모의 신분 때문에 태어난 아기 역시 불법 체류자라는 신분을 대물림 받았다. 한국은 부모의 국적에 따라 아기의 국적을 결정하는 '속인주의' 국가이기 때문. 따라서 부모가 불법 체류자이거나 난민 혹은 아빠가 한국인이라고 해도 연락이 두절된 경우라면 한국 국적을 받을 수 없다.    

가혹한 병원비... 인큐베이터 2주 동안 2천여만 원

게다가 불법 체류자에게 병원비는 지독하게 가혹하다. 더구나 M과 J의 아기는 인큐베이터가 아니면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아이를 살리는 게 먼저였다. 그러나 한숨을 돌리고 나니 걱정이 태산이다.

"병원에서 들었는데 2주일 동안 인큐베이터에 있으면 병원비가 2천만 원 정도 나온대요. 저희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어림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만 하고 있어요. 고마우신 한국 분들이 조금씩 도와주고 계시는데 너무나 감사해요. 제가 열심히 일해서 갚을 거예요. 우리 아기 잘 키워서 보답할 거예요."

M은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그의 어깨 위에 올려진 짐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아기를 보고 오는 M에게 특별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했다. 내 나라든 남의 나라든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출산을 했다면 산모와 아이는 누구보다 먼저 보호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아이들이라면 그 어느 상황에서도 보호, 양육, 교육 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지난 1월 서울시는 '불법체류자 자녀에 대한 보육료와 양육비 지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미등록 이주민(불법체류자)' 자녀에 대해서도 차별없이 보육료와 양육비를 지원하라는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시민인권보호관은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보육료, 양육비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가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규정을 위반하는 것으로 국적을 이용한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결정을 환영하며 빠른 시일 내에 또다른 지자체에서도 불법체류자 자녀를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길 바란다. 내 나라 아이들에게도, 또 다른 나라 아이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태그:#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 #베트남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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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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