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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동지사대학 교정의 매화는 이제 막 꽃망울을 피우고 있었다. 붉은 꽃, 흰 꽃송이가 긴긴 겨울을 이겨내고 곱게 피어났다. 매화꽃 교정을 거닐면서 나는 맑고 순수했던 윤동주 시인의 자취를 행여 느낄 수 있을까 싶어 정문에서 도서관과 예배당으로 이르는 붉은 벽돌의 건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동지사 교정에는 홍매화가 가득 피었다.
▲ 홍매화 동지사 교정에는 홍매화가 가득 피었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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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동지사대학 안의 예배당과 핼리스이화학관 사이에 있는 윤동주 시비는 이제 교토를 찾는 한국인들에게는 명소가 되었다. 내가 이곳을 처음 찾은 것은 1995년 2월 16일 윤동주시인 순국 50돌을 맞아 시비(詩碑)를 세운 몇 달 뒤의 일이었다. 그때는 시비가 들어선지 얼마 안 되어서 인지 학교 정문의 수위 아저씨에게 물어 보아도 시원하게 시비가 서 있는 위치를 잘 설명해주지 않아 여러 건물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헤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쯤 뒤부터였을까? 동지사 정문 수위실에 "윤" 자만 말해도 한글판 "윤동주" 안내문을 내줄 정도로 윤동주는 동지사대학의 유명인이 되었고 나는 해마다 윤 시인을 만나러 동지사를 찾았다. 그가 떠난 교정에 검은 빗돌만 서있는 외로운 모습이지만 그의 빗돌 주변의 홍매화는 언제나 나그네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곤 했다.

윤동쥬
▲ 윤동주 윤동쥬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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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윤동주 시인은 '한글로 시를 쓴다는 죄'로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되어 생의 최후를 맞이한다. 후쿠오카로 잡혀 가기 전 1944년 7월 14일 그해 여름방학도 윤동주는 부모님과 사랑하는 누이 혜원을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픈 마음에 고향 북간도에 여비를 보내달라는 전보를 쳤다.

"오빠는 우리에게만 잘하셨던 게 아니에요. 대학생 신분이면서도 방학 때 집에 오면 할아버지의 삼베옷을 척 걸쳐 입고는 할아버지를 도와 소먹이, 닭모이 등을 만들기도 하고 산으로 소에게 풀을 먹이러 가기도 했지요. 그런가 하면 할머니와 어머니가 두부를 만들려고 콩을 맷돌에 가는 걸 같이 도와드리기고 했지요. 힘든 일을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고 그냥 넘기지 못했지요."

윤동주 시인이 아끼던 여동생 혜원이는 훗날 오라버니를 그렇게 회상했다.  일본에서 북간도 용정까지 그 멀고도 먼 길을 단걸음에 달려오던 오빠 윤동주는 그러나 1944년 여름방학 이후 고향집을 찾지 못했다. 아니 그 길로 영영 고향과는 이별이었고 이승과도 슬픈 이별을 해야 했다.

엊그제 2월 16일 오후 3시에는 윤동주 시인 순국 70주년을 맞아 교토 동지사대학 윤동주 시비 앞에서 뜻깊은 추모제가 있었다. 재일한국시인과 일본시인들이 조촐히 모여 윤동주를 기리는 모임(재일한국인시인, 일본시인 공동 윤동주시인 추도회 공동대표 김리박 시인)을 가진 것이었다. 

동지사대학 교정에서 우에노미야코 시인과 함께
▲ 우에노미야코 동지사대학 교정에서 우에노미야코 시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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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비 앞에서 일본시인들과 함께 왼쪽 세 번째 한복차림이 글쓴이
▲ 일본시인들 윤동주 시비 앞에서 일본시인들과 함께 왼쪽 세 번째 한복차림이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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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는 우에노미야코, 후쿠다도모코, 모치츠키시코, 오오하시아유도 등이 참석했고 재일한국인 시인으로는 재일본문학회 회장인 김리박 시인과 한글학회간사이지회 고문인 한남수씨 등이 참여했다.

또한 노나카구미코씨의 일본피리 <노관>연주와 이영보 재일음악가의 영혼을 울리는 노래가 있었다. 윤 시인은 가고 없지만 그의 죽음이 헛되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윤 시인의 후배들은 다시 그의 시비 앞에 섰다. 그리고 그가 못 다한 노래를 부르고자 다짐했다. 어쩌면 그날, 윤 시인도 우리의 곁에 오래도록 함께 있어 주지 않았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한국문화신문과 대자보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윤동주, #동지사대, #재일한국인시인, #윤동주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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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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