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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나무 잘라내고... 모든 게 눈 때문이다

기계톱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창가에서 보니 뜰에 심어진 오래된 나무를 관리실 직원들이 잘라내고 있습니다. 가지만 칠 줄 알았는데 그루터기만 남기고 동강동강 모두 잘라냅니다. 나무가 없어지니 무성했던 가지와 잎들로 가려져 있던 뒤편의 목장이 훤히 보입니다. 시야가 트이니 시원해서 좋습니다. 그런데 멀쩡한 나무를 왜 자른 것일까요.

때마침 관리실에 갈 일이 있어 이유를 물어 보니 곧 다가올 눈보라 때문이랍니다. 유독 그 나무가 빌리지의 건물과 가까워서, 눈보라가 강하게 칠 경우 나무가 쓰러지면서 건물을 덮칠 것을 대비해 자른 것이라고요. 그렇다고 멀쩡한 나무를 자르다니.

그만큼 이번 겨울에 내린 눈보라와 폭설에 미국 북동부 지역이 민감해진 것입니다. 미국은 집 주변의 잔디를 관리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할 만큼 조경을 중요시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안전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듯 합니다. (관련 기사: 사우디에 있던 미 국무장관... 왜 벌금을 냈을까)

요즘 미국 북동부 지역은 이렇게 멀쩡한 나무를 베어 버릴 만큼 눈에 민감해져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몇주간 내린 눈으로 피해를 많이 입었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인 피해 외에도, 폭설로 학교를 가지 못한 학생이 5만7천 명이 넘고 휴교를 한 기간만 해도 1월에만 8일이니 눈 소식에 예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휴교 기간이 늘어날수록 집에서 아이들과 보내야 하는 부모들도 막막해집니다.

지난주, 보스턴에 살고 있는 친구가 전화를 해왔습니다. 그는 폭설로 아이도 학교를 못 가고 자신도 출근을 못해 같이 집에 묶여 있는 게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했습니다. 부모와 자녀들이 '방학 아닌, 방학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이 갑작스런 시간을 아이와 어떻게 보낼지 친구는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컴퓨터 게임이나 하라며 마냥 풀어두기에는 뭔가 불안하니까요.

겨울철 아이들과 노는 법, 이런 게 뉴스가 되네요

이런 고민이 친구만의 것이 아님을 저녁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네 명을 둔 어머니의 인터뷰였는데, 그녀는 이 휴교 기간을 현명하게 보내는 조언을 했습니다.

그녀는 이런 기간이 온다는 가정 하에 미리 계획을 세워두라고 합니다. 컴퓨터 게임이나 보드 게임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있으니, 밖에 쌓인 눈을 활용할 수 있는 야외 놀이가 좋을 거라고 했습니다. 눈썰매같은 겨울철 놀이도구도 추천했습니다.

실제로 그녀의 인터뷰 중간에는 그녀의 아이들이 눈으로 터널을 만들어 그 속을 기어 다니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바깥에서 놀고 오면 배가 고픈 아이들과 함께 간식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합니다. 팬케이크처럼 만드는 과정이 단순하면서도 재미있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덧붙입니다. 이런 것도 뉴스가 될 만큼 많은 학부모들이 휴교 때문에 생긴 아이와의 시간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폭설이 내린 직후, 동네 아이들이 영화 <겨울왕국>의 울라프를 만들어 놓았다.
 폭설이 내린 직후, 동네 아이들이 영화 <겨울왕국>의 울라프를 만들어 놓았다.
ⓒ 김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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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로 인한 휴교로 학생들의 출석일수가 부족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시장과 교육감의 인터뷰도 이어졌습니다. 휴교 일수만큼 여름 방학 시기를 뒤로 미루는 것과 3월과 6월의 공휴일에 등교하는 것 등이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겨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아 쉽게 결정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또 다시 폭설로 휴교를 해야 한다면 보충해야 할 날짜가 늘어나겠지요. 그렇게 되면 '어린이들의 악몽'이라는 '토요일 등교'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기자가 전합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아이들에게 학교가 마냥 즐거운 곳은 아니라는 생각에 웃음이 났습니다.

미국에 왔을 때 가장 생소했던 게 뭔지 아세요? 오후 3시에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집 앞 뜰에서 뛰어노는 소리였습니다. 자전거도 타고 탐정 놀이도 하면서 사력을 다해 노는 그 모습은 '평화'라는 단어와 잘 어울렸습니다. 겨울에도 볕이 따뜻한 날에는 어김없이 나와 놀고, 함께 놀기 위해 친구의 집 앞에서 이름을 불렀습니다. 몇십 년 전 내 기억 깊은 곳에 있는 장면과도 비슷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했지만요.

물론 미국의 아이들도 겨울에는 집에 있는 날이 많습니다. 심각한 폭설이 예보된 지난 1월, 보스턴 시장은 언론을 통해 '제발 집에 있어 달라'며 신신당부했습니다. 학교를 가지 않으니 밖에서 뛰어 놀고 싶은 아이들도 이때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전 귀가길에는 눈 속에 묻혀 있는 아이들의 자전거가 눈에 띄었습니다. 더불어 아이가 집에 머물러야 했던 그 시간은 오롯이 부모의 몫이었을 겁니다.

눈 속에 묻힌 아이들의 자전거
 눈 속에 묻힌 아이들의 자전거
ⓒ 김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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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통화 말미에 친구는 주말에 놀라오라며 우리 가족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하지만 일기예보를 보니 이번 주말에도 꽤 많은 양의 눈 소식이 있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오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는 봄이 돼야 만날 수 있겠다고 농담 섞인 말을 해야겠습니다. 부디, 그 봄이 멀리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태그:#미국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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