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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이듬해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에 입학한 32살 늦깎이 유학생입니다. 올해 7월 졸업을 앞두고,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기자말

야경이 돋보이는 선양역
 야경이 돋보이는 선양역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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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영토를 소유하고 있다. 약 960만㎢로 한반도의 44배다. 같은 반 친구는 기차를 타고 30시간을 가야 고향인 칭하이(青海)성에 도착한다. 어마어마한 거리다. 다른 친구는 저녁 초청을 받아 세 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로 넘어간다. 내가 경악하자 오히려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중국의 시간 개념은 우리와 많이 달랐다.

중국의 명절이나 국경절, 방학 전후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중국인은 기차를 애용한다. 그래서 엄청난 인구가 일주일 전부터 기차표 쟁탈전을 시작한다. 입석조차 아쉬운 사람이 수두룩하다. 굳이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역마다 인산인해를 이룬다. 어디를 가도 사람에 치인다.

게다가 타기 전에는 반드시 짐을 검사해야 한다. 역 입구에 커다란 기계가 떡하니 있다. 일일이 가방을 내려놓고 통과시켜야 한다. 짐이 많고 바쁠 경우 상당히 귀찮다. 우리나라의 기차가 그리워진다.

인고의 24시간 상하이행 열차... 자도 자도 끝이 없다

중국 기차표와 베이징시 교통카드
 중국 기차표와 베이징시 교통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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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땅이 넓은 만큼 기차종류도 다양하다. 까오티에(高铁), 둥처(动车), 훠처(火车) 등이 있다. 순서대로 속도가 빠르고 쾌적하다. 훠처는 가장 싸지만 혼잡하고 위생적이지 않다. 첫 베이징 여행 때 멋도 모르고 훠처를 탔다. 공간이 협소하고 사람이 많아 공기가 좋지 않았다. 불편한 의자에 앉아 6시간 반을 이동하니 죽을 맛이었다. 내리자마자 모두 매표소로 발길을 향했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돌아가는 표를 쾌적한 둥처로 교환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계획을 잡기도 한다. 진저우(锦州)에서 제일 가까운 대도시는 선양(沈阳)이다. 한인타운이 있어 고향음식을 즐기고 지하상가도 구경하러 갈 수 있다. 가난한 유학생의 선택은 언제나 가장 싼 것이다. 돈이 덜 들면 수고와 시간이 더 든다. 제일 저렴한 기차를 타면 서너 시간이 소요된다. 기분전환을 위해 왕복 여덟 시간을 인내해야 한다. 어떨 땐 자리가 없어 서서 간 적도 있다. 중소도시를 벗어나고픈 눈물 나는 열정이다.

침대기차 내부. 삼층으로 되어 있다.
 침대기차 내부. 삼층으로 되어 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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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누워가고 싶을 때는 침대기차를 타면 된다. 침대기차도 가격에 따라 두 종류가 있다. 저렴한 침대칸이 진저우에서 상하이까지 편도 350위안(약 6만 원)이었다. 비싸지 않았지만 장장 24시간이 걸렸다. 한참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시간은 깨지 않은 악몽처럼 매우 더디게 흘러갔다.

하도 자다보니 결국 잠도 오지 않아 멀뚱히 시간을 보냈다. 누워있다 지겨우면 침대 반대편 창가 테이블에 앉아 경치를 감상했다. 나중에는 풍경까지 똑같이 보여 내가 같은 곳을 뱅뱅 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미치도록 지루한 것을 빼면 깨끗하고 시설도 좋아 만족도가 높았다. 다만 짜증났던 것은 지갑 속에 있는 왕복으로 끊은 표였다. 돌아 갈 길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역시 먹을 게 최고, 기차 안 이색풍경

베이징 전문에 관광용 전차.
 베이징 전문에 관광용 전차.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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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탈 때 항상 간식을 한아름 안고 탄다. 생수, 소시지, 빵, 과일은 기본 아이템이다. 기차 안에서 먹는 간식은 유난히 맛있다. 이제는 나도 꽤 익숙해져 혼자 음식을 펼쳐놓고 먹는다. 가끔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나눠 준다. 엄마는 '고맙다고 해야지'라며 아이를 토닥인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다르지 않다.

중국인이 특히 좋아하는 주전부리는 해바라기씨다. 중국 해바라기씨는 껍질 채로 양념을 가미해 판다. 그래서 '톡톡' 소리를 내며 이로 까먹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햄스터같이 까는 모습이 능수능란하다. 따라해 봤지만 껍질이 앞니 사이에 껴 우스운 몰골이 되기 일쑤였다. 다년간 수련이 필요한 기술이다. 가끔 앞니가 벌어진 중국노인을 보곤 하는데 해바라기씨를 즐겨 먹어 그런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기차에는 뜨거운 물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컵라면을 들고 타기도 한다. 물론 간식차도 있다. 컵라면, 과자, 음료 등을 팔지만 비싸고 종류가 얼마 없다. 소시지와 맥주를 구입해서 먹은 적이 있는데 시중가의 딱 두 배였다. 배는 채웠지만 지갑이 배고파졌다.

여름이 오면 아이스크림을 판다. 하지만 기차에 따라 차별을 둔다. 서민이 이용하는 훠처에서는 2위안(약 350원)짜리 하드를 팔지만, 가장 빠르고 고급스러운 까오티에(高铁)에서는 수입한 고급 아이스크림을 판다. 고객층에 따른 맞춤형 판매 전략이다. 찌는 날씨, 기차에서 사먹는 하드는 꿀맛이다.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 물론 비싼 아이스크림은 먹어보지 못했다.

기차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중국인, '진상 질량 보존의 법칙'

다롄역에 붐비는 인파
 다롄역에 붐비는 인파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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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의 또 다른 묘미는 인연이다. 진저우로 돌아가는 까오티에(高铁) 안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옆자리 인상 좋은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너 한국인이니? 핸드폰 화면이 온통 한국어네."

직업이 동양화 화가라고 소개한 그는 자신의 그림사진을 보여주었다. 오직 상상만으로 풍경을 그린다고 했다. 대단한 실력이었다. 헤어질 때 화가는 수려한 그림이 그려진 엽서 여러 장을 선물로 챙겨주었다.

마음씨 좋은 노부부는 타지에서 고생이 많다며 과일이며 빵이며 쉴 새 없이 건네고, 어떤 여자 아이는 외국인을 처음 본다며 신기해했다. 훠처에서 만난 이들은 마치 동향사람 같은 푸근함으로 다가왔다. 처음 본 사이에도 옆집사람처럼 자연스레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릴 적 아련한 고향의 향수를 이곳에서 느낀다.

하지만 이른바 '진상'은 질량 보존의 법칙을 증명하듯 어디든 포진하고 있다. 큰소리로 떠드는 정도야 눈살 찌푸리며 이해할 수 있다. 그중 가장 경악할 일은 기차 안에서 버젓이 담배 피우는 사람이 꽤 있다는 것이다. 흡연자들의 천국 중국답다.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 않는 이도 있다. 언젠가 여섯 살 정도의 꼬마가 칭얼대자 엄마가 생수병을 대고 오줌을 받았다. 생수병에는 이미 상당량의 노란 액체가 채워져 있었다.

가끔 같은 중국인조차 참지 못해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조용히 눈빛으로 응원을 보내곤 한다. 특이한 사람도 있다. 어떤 여자가 잠옷 차림으로 옆구리에 베개를 끼고 열차에 올랐다. 그녀의 안방에 내가 침입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런 해프닝은 대개 싼 기차에서 목격된다. 가격이 높은 둥처나 까오티에의 승객들은 비교적 점잖고 행동에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간간히 책을 읽는 사람도 있고 옷차림도 고급스럽다. 사람이 다르니 분위기도 확연히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다. 물론 기차에서 본 일부분의 모습일 뿐이다. 경제력에서 오는 교육 혹은 에티켓 숙지 차이가 아닐까 추정해본다. 

기차에서 느끼는 중국, 종류별로 다른 느낌

차도를 달리는 당나귀수레.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차도를 달리는 당나귀수레.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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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시속 250㎞로 달리는 시안(西安)행 까오티에(高铁) 창밖에는 2시간 내내 금빛으로 일렁이는 옥수수 밭이 펼쳐졌다. 기차는 끝이 보이지 않는 대륙을 시원하게 내달린다. 넓은 땅만큼 다른 개념을 가진 그들이지만 살아가는 모습은 어느 곳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기차는 그 나라를 가까이 느끼고 재미있는 추억이 된다. 훠처에서는 고달픈 삶을 이어가지만 정이 담뿍 느껴졌던 서민을, 둥처나 까오티에에서는 발전하는 중국의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기차에서 만난 인연은 그들에게도 외국인과의 에피소드로 남았을 것이다. 내가 그들의 추억의 일부로 남았듯이 나도 이미 여기에 조금씩 녹아들고 있다. 그래도 명절이면 어디선가 고향의 냄새가 불어오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오랜만에 설을 한국에서 보낼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태그:#중국, #중국유학, #진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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