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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이다.

2월 4일 아침, 기온도 영상으로 따뜻해지며 그야말로 봄이 시작되는 날임을 알렸다. 24절기 상으로는 새해가 시작된 날이다. 예당평야를 적시는 무한천도 얼음이 풀려 이제 곧 푸른 빛이 짙어 올 것만 같다.

그러나 '입춘 추위에 김칫독 깨진다'는 속담이 있듯이 추위가 끝났다고 방심해선 안 된다. 입춘에는 예부터 봄이 온 것을 반갑게 맞이하는 뜻으로 대문이나 기둥에 '입춘첩(立春帖)'을 써붙였다. 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하고 춘축(春祝)이라고도 한다. 입춘첩의 글귀는 봄이 오면 크게 길하고 경사스런일이 많이 생기라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 많이 쓰인다.

이젠 주택이 현대화되고 풍속도 사라져 입춘첩을 써붙이는 풍경은 보기 어려워졌다. 마침 입춘첩을 써붙이는 집을 수소문해, 충남 예산군 봉산면 마교리 송재철(82) 어르신 댁을 찾았다.

송재철 어르신이 이웃주민의 도움을 받아 입춘첩을 붙이고 있다.
 송재철 어르신이 이웃주민의 도움을 받아 입춘첩을 붙이고 있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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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철 어르신이 대문에 입춘첩을 붙인 뒤, 바라보고 있다.
 송재철 어르신이 대문에 입춘첩을 붙인 뒤, 바라보고 있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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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시절엔 농협조합장으로 농업발전에 기여했고, 봉산면지 추진·편찬위원장으로 예산군 최초의 면지를 발행했으며, 지금은 예산문화원 고문으로 활동하는 분이다.우암 송시열선생 11대손으로 뼈대 있는 가문에 유교적 풍습이 익숙한 세대이기도 하다.

"3대째 살고 있는 집인데 내가 바로 '요자리'에서 태어났어."

어르신은 당신이 앉아 있는 아랫목 자리를 가리키며 환하게 웃는다. 고덕에서 면천에 이르기까지 기와집 딱 두 채가 있는데, 그중 한 채가 이 집이고, 면천 쪽에 조면장네 집이 있었다고 한다.

입춘을 맞아 좋은 말씀을 청하니 "우리 세대가 한학도 산학문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그야말로 비승비속(非僧非俗)으로 그저 토막글 정도 깨쳤을 뿐이다"고 겸양을 보인 뒤 "천시불여지리(天時不如地利)요, 지리불여인화(地利不如人和)"라는 맹자 말씀을 소개했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천시(天時)와 지리(地利), 인화(人和)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그중 인화가 가장 중요하다라는 뜻이다. 특히, 인화는 위정자가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지금의 정치 현실과 맞아 떨어지는 교훈으로 들린다.

또 요즘 세태를 가리켜 "정신문화가 상승하면 물질문화가 떨어지고, 물질문화가 상승하면 정신문화가 낮아지는 게 당연한데 누구탓을 할 필요가 없다"면서 입춘첩을 붙일 풀을 찾는다.

지금은 기와를 내리고 함석을 얹었지만 여전히 규모가 있어 보이는 한옥 대문에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란 춘첩이 붙었다.

"그저 모두 좋은 마음으로 시작하자는 거지."

송재철 어르신댁 대문 안팎이 훤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신문<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입춘대길, #입춘첩, #건양다경, #입춘,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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