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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실종된 김군의 트위터 계정. 그는 작년 10월, 'ISIS(IS의 전 명칭, 이라크와 시리아 등 이슬람 국가)에 합류하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터키에서 실종된 김군의 트위터 계정. 그는 작년 10월, 'ISIS(IS의 전 명칭, 이라크와 시리아 등 이슬람 국가)에 합류하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 김군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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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류를 원한다(I want join)."

터키에서 실종된 김군이 지난해 10월 트위터 계정에 남긴 글이다. 영어로 작성된 트윗은 대부분 "IS(Islamic state, '이슬람 국가'의 약자)에 합류하고 싶다"는 내용과 질문으로 이루어진 글이었다. 그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IS와 관련된 정보를 요청했으며, 그러던 중 누군가로부터 "터키로 가면 쉽게 합류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결국 지난 8일, 터키로 7박 8일의 일정으로 출국한 이후에 김군은 실종됐다. 이튿날인 9일, 시리아와 접경지인 킬리스로 이동한 직후였다. 아직 IS로의 합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정황상 김군이 IS 대원과 만나고자 시리아로 밀입국을 시도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싫다" 증오감 드러내고 IS 합류 원해

21일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정재일 국제범죄수사1대장이 '터키 실종 한국인 10대' 사건과 관련 경찰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터키 실종 관련 경찰 수사 결과 발표 21일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정재일 국제범죄수사1대장이 '터키 실종 한국인 10대' 사건과 관련 경찰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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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트위터에서는 "지금의 시대는 남자가 차별을 받는 시대다(However, the current era is era that male are being discriminated against)"라고 주장하는 글이 발견된 바 있다. 또한 그는 이어서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래서 IS가 좋다(i hate feminist So I like the isis)"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현재 해당 트윗은 삭제된 상태다.

김군이 10대의 남성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는 학교를 중퇴한 뒤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었다. 이러한 상태로 인해 어떤 차별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마저도 추측일 뿐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테러 단체에 직접 가담하기를 원하는 이유로 '여성 혐오'를 언급했다는 점이다.

이는 IS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계획된 행동을 실행할 만큼 그 동기가 뚜렷했다는 뜻이다. 그는 부모에게 "여행으로 다녀와서 마음잡고 공부하겠다"고 밝히며 터키로 떠났지만, IS합류는 쉽게 돌아오지 못할 상황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런 점은 김군 본인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사실상 한국에서의 일상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한국에서 남성이 차별받는다는 그의 주장은, 한국 남녀를 비교한 각종 사회경제적 지표를 들여다 보면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런 사실과는 별개로, 그런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테러 집단'에 소속되기를 원했다는 점은 논리가 어긋난다. 그렇기에 김군의 선택은 개인적인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이해하기 힘들고, 사회적으로 용납될 행동으로도 볼 수 없다. 안타깝게도 그의 생각은 이런 상식적인 결론과 꽤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토크콘서트 인화물질 테러 A군, 김군과 닮았다

지난해 12월 10일, 전북 익산 신동성당에서 열린 신은미씨의 통일 토크콘서트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을 돌이켜보자. 현장에서 붙잡힌 A군은 폭발성 인화물질을 넣은 냄비에 불을 붙여 던졌고, 이로 인해 2명이 화상을 입었다. 다른 관객들에 의해 제지당해 사용하지 못했지만, 이 날 A군은 1ℓ에 달하는 양의 황산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 전날인 9일, 인터넷 커뮤니티 <네오아니메>에 범행을 예고하는 글을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A군은 당시 "집 근처에 신은미 종북 콘서트 여는데 신은미 폭사 당했다고 들리면 난 줄 알아라"는 내용의 게시물을 작성했고, 이 글은 사건 발생 이후에 운영자에 의해 삭제됐다.

10대 청소년이 연관된 두 사건은 몇 가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먼저 특정집단에 대한 혐오를 물리적인 '폭력'으로 표출했거나, 혹은 '폭력' 행사를 위한 목적으로 무장 단체 가입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A군은 '종북 논란'에 휘말린 미국 시민권자를 목표로 삼아 폭발성 인화물질로 테러를 시도했고, 터키에서 실종된 김군은 '여성에 대한 혐오감'을 테러집단 합류의 이유로 삼았다.

A군은 고교 3학년, 김군은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시기에 이런 선택을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청소년기에 인생의 큰 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삶의 이유를 찾다가 외부의 자극적인 요소로 시선이 향한 것은 아닐까?

김군이 학교를 중퇴하면서 겪었을 상황은, 학벌이 중시되는 한국 사회에서 그로 하여금 박탈감과 허망함을 느끼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에서 IS가담을 위해 시리아로 출국하려다 저지당한 청년도 "다른 허구의 세상에 몸을 던지고 싶"은 심정을 이유로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24일 발행된 <시사IN>의 기사 '소년은 왜 폭탄을 던졌나'에서는 A군이 은둔형 외톨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집에서는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며 지속적인 갈등이 있었고, 초라한 현실세계보다 온라인 생활에 치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게시글이 차단되거나 댓글이 거의 없는 등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던 중 테러 계획을 하며 "드디어 인생의 목표를 발견했다"는 글을 쓰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요약하자면 두 청년은 삶이 의미를 잃어가는 와중에, 절망적인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일탈'을 계획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일상의 탈출구로 선택한 것이, 각각 '악'으로 규정된 타인을 상대로 한 폭력 행위와 IS가담으로 이어진 것이다. 슬프게도, 자신의 정체성을 '정당한 존재'로 규정하기 위해 치른 대가로는 너무 극단적인 결과들이다.

바야흐로 야만과 혐오의 시대, 침묵을 깨자

지난 2014년 12월 10일 오후 전북 익산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통일 토크콘서트의 진행요원으로 참석했다 폭발물 테러로 화상을 입은 곽성준씨가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지난 2014년 12월 10일 오후 전북 익산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통일 토크콘서트의 진행요원으로 참석했다 폭발물 테러로 화상을 입은 곽성준씨가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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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야만과 혐오의 시대가 다시 열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접을 수 없다. <일베>에서 범람하는 각종 혐오발언은 이제 사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김치녀'로 대표되는 여성 비하, 전라도를 향한 지역차별, 외국인을 향한 노골적인 멸시까지…. 사회에서 쌓인 열등감과 무력함을 타자화된 집단을 향한 조롱과 공격성으로 치환하며 희희낙락하는 모습은 소름끼칠 정도다.

온라인에서 점차 커져가던 이런 흐름이 현실로 터져 나온 사례로 'A군 테러사건'을 지목할 수 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머물던 수준의 폭력성이 실제 타인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이고, 이런 점들이 소년부에 송치된 A군의 처벌수위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누군가를 '폭사'시킬 목적으로 한 테러가 솜방망이 처벌로 그친다면, 더욱 화력이 센 폭발물이 어디선가 다시 날아들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종북콘서트' 논란만 가열하며 '테러에 대한 유감'은 표시하지 않았던 대통령의 발언도 아쉽다. 테러를 저지른 가해자를 강하게 비판해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몫이었다. '안전한 사회'와 '국민 대통합'을 약속한 대통령의 말을 되짚어보면, 학살의 역사를 지닌 '서북청년단' 부활과 각종 혐오발언의 온상인 <일베>에도 자제를 촉구해야 옳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우려에도 대통령은 세월호 정국과 지지율 급락에 자기방어에 치중하며 침묵만 지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오히려 여당에선 일부 의원들이 이런 <일베>를 '청년보수'로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2일 'IS 가입 권유 게시글'을 차단하는 방안을 검토할 뜻을 내비쳤다. 김군이 트위터에서 IS관련 정보를 주고받은 것에 대한, 그야말로 표면적인 차원의 대응이다. <일베> 게시판을 폐쇄하거나, IS를 언급하는 글을 차단하는 것이 과연 궁극적인 해결법일까? 갈등을 만드는 편견과 혐오적인 시각, 고개를 드는 폭력을 '평등하고 구체적인 원칙' 아래에서 퇴출시키는 것이 더욱 시급해 보인다.

그리고 '도구'에 불과한 인터넷을 제어하려는 시도보다는, 이에 앞서 사회적인 토론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재정비하는 과정도 필요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의도적인 방관과 침묵을 깨고, 정치권에서도 폭력과 혐오는 안 된다고 외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서로를 겨냥한 방아쇠가 가득한 늪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불안을 폭력으로 드러내고, 삶에 대한 불만에 테러집단 가담을 시도하는 청년이 다시 나와서는 안 될 일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을 추스르기 위해 사회를 복원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태그:#IS, #일베,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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