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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도착하고 몇 주가 지나 나는 휴대폰을 사기로 했다. 당시 중국 친구들이 많이 쓰던 제품은 모토로라나 삼성 혹은 노키아였다. 가격은 크게 비싸지는 않았지만 일 년여를 머물 내게 새 휴대폰은 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일단 귀국하는 한국 유학생이나 아는 친구를 통해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기로 했다.

"얼쇼우지라는 게 있어. 그건 좀 싸."

얼쇼우지(二手机)는 한자를 그대로 해석하면 두 번째로 사용하는 휴대폰이라는 뜻이었다. 근처 마트에 매장이 있다기에 우선 룸메이트가 먼저 사보기로 했다. 사용 흔적이 많지 않고 비교적 깨끗한 데다가 한국에서 쓰던 휴대폰에 비해 그렇게까지 구식 제품이 아니라서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장이 났고 새것이 아니라서 고치기 어렵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었다.

'돈 아까운데 그냥 새 거 사야 하나?'

그러던 와중에 중국 친구가 자기가 쓰던 휴대폰이 있는데 필요하면 그냥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얼쇼우지를 사지 않아도 되었다.

잃어버리면 찾기는 힘들어도 쓰고 싶은 금액만큼 충전할 수 있는 중국휴대폰의 장점. 나는 한 번에 10위안에서 30위안 정도를 넣어 사용하고는 했다.
 잃어버리면 찾기는 힘들어도 쓰고 싶은 금액만큼 충전할 수 있는 중국휴대폰의 장점. 나는 한 번에 10위안에서 30위안 정도를 넣어 사용하고는 했다.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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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국에서는 휴대폰을 개통하기 위한 특별한 절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근처 가게를 찾아 통신사와 번호를 고르고 유심칩을 사서 충전을 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선불폰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유심칩을 제거하고 자신의 것을 끼워 넣으면 누구나 그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유난히 휴대폰을 훔치는 소매치기와 도둑이 많다고 했다.

"나도 이거 세 번째 휴대폰이야. 웬만하면 바지 주머니에 항상 넣고 점퍼 주머니처럼 헐렁한 곳에는 넣지 마. 그리고 뒤로 매는 가방에 두면 안 된다. 탁자 같은 데에도 올려두지 말고. 집어간다고."

나와 후샹(언어교환)을 하던 친구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충고했다. 그래서 나는 휴대폰을 끈에 매어 목에 걸고 다녔다. 한동안은 절대 잃어 버리거나 누구도 훔쳐갈 수 없다는 생각에 든든했다. 그러던 어느 날 쇼핑몰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기 위해 휴대폰을 벗어 놓고는 그냥 나와 버렸다. 돌아가 구석구석 확인했지만 내 휴대폰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배터리가 한 칸도 닳지 않았지만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이런 장물은 얼쇼우지로 판매가 된다고 했다. 

한 번은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계산을 하고 나왔는데 친구가 휴대폰을 두고 온 것 같다고 했다. 최신기종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모토로라 제품이었다. 짧게는 30초 아무리 길게 잡아도 우리가 가게를 떠나 온 건 채 1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종업원 중 그 누구도 휴대폰을 본 사람이 없단다. 그리고 이미 친구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얼쇼우지를 산다는 건 누군가가 도둑맞은 휴대폰을 쓰는 것 같아 꺼림칙한 마음에 새 제품을 사기로 했다. 나의 두 번째 휴대폰은 노키아 제품으로 200위안이 살짝 넘는 저렴한 기종이었다. 전화와 문자는 잘되지만 완전 컬러가 아니었고 4색 정도를 구현하는 제품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한 번도 고장이 나지 않고 끝까지 잘 사용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내가 쓰던 최신형 휴대폰을 보니 그제야 중국을 떠나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태그:#중국, #휴대폰, #얼쇼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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