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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의 문화를 좋아하고 느끼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발리에서 놓치면 안 되는 중요한 사원이 있다. 발리 동북부의 발리 최고봉 아궁산(Gunung Agung, 3142m) 중턱에 위치한 브사키 사원(Pura Besakih). 2만 개가 넘게 있다는 발리의 힌두교 사원 중에서 총본산인 곳이다. 발리 사람들은 이 사원을 '발리 힌두사원의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신성시 하며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브사키 사원은 우붓(Ubud)에서 그리 멀지는 않지만 아궁산이 높은 산악지대여서 산 아래 쪽까지 도로는 외길로만 이어져 있다. 우리가 출발한 우붓에서 브사키 사원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탄 차가 아궁산이 가까워지자 상가와 집들이 가득한 도로가 사라지고 한적한 산골의 숲 속 길이 나타났다. 

전통 힌두교 복장을 입은 발리인들이 브사키 사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 참배행렬 전통 힌두교 복장을 입은 발리인들이 브사키 사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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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으로 참배하러 가는 힌두교도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브사키 사원이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다. 우등(udeng)을 머리에 쓰고 사롱(sarong)을 입은 힌두교도들이 이동하고 있는 모습은 경건하게 느껴진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힌두교에 대한 그들의 강한 믿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전통의상을 일상복처럼 자주 입는 그들을 보면 자신들의 문화에 강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원 입구에는 사원을 찾는 참배객과 관광객들에게 과일을 파는 노점들이 많다.
▲ 노점상 사원 입구에는 사원을 찾는 참배객과 관광객들에게 과일을 파는 노점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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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원 아래쪽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 시키고 브사키 사원을 만나러 걸어갔다. 참배로 양편에는 우리나라의 불교사원 아래의 사하촌(寺下村) 같이 힌두교도들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길 양쪽으로는 허리에 두르는 옷, 사롱을 파는 가게들과 과일을 파는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다.

사원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긴 바지를 입거나 사롱을 사서 입어야 한다.
▲ 사롱 가게 사원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긴 바지를 입거나 사롱을 사서 입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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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롱 가게가 많은 것은 신성한 브사키 사원에 반바지나 짧은 치마를 입고 입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브사키 사원과 관련된 사전 정보 중에는 모든 사람이 사롱을 입어야 출입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긴바지를 입고 아내도 긴 치마를 입고 갔는데 다행히 사원 입장료를 받는 곳에서 우리에게 사롱을 꼭 입어야 한다고 제지를 하지는 않는다. 그동안 관광객들에게 사롱을 사 입게 만들어서 사롱 가게들 수입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은데, 이제는 강제적으로 사롱을 사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브사키 사원 안에는 사원만 담당하는 안내 가이드가 있고 꼭 이 가이드의 안내만 받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직접 와서 보니 이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여행정보는 항상 현지에서 확인해 보면 조금씩 다른 내용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발리 친구 아롬의 설명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브사키 사원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발리의 알라스 크다톤(Alas Kedaton)에서는 그 마을 가이드의 안내에 따를 수 밖에 없었는데, 아롬에게 물어 보니 발리 각 지역의 지역공동체에서 일괄적으로 정하는 현지 가이드 정책을 따른다고 한다.

아롬이 오늘 아침에 사롱을 허리에 두르고 힌두교도들이 머리에 감는 우등이라는 천을 착용하고 와서 약간 의아했는데 브사키 사원에 도착해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힌두교인들의 성전인 브사키 사원에서는 가이드가 힌두교도 전통의상을 입고 안내를 하는 것이었다. 힌두교인들이 사원 곳곳에서 참배를 하는데, 힌두교도 가이드들은 외국 관광객들이 이들을 방해하지 않는 조정자 역할도 하는 것이다. 이 가이드들은 사원의 어디까지 접근 가능하고 어떤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관광객들에게 알려준다.

브사키 사원 쪽으로 걸어가니 사원 뒤쪽에 버티고 서 있는 아궁산이 웅장하게 다가온다. 내가 서 있는 곳만 해도 아궁산의 1000m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사원이 높은 지대 위에 있어서 날씨가 덥지 않고 시원하여 쾌적하다. 워낙 높은 아궁산은 구름에 가려 전체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구름이 흘러갈 때마다 일부 모습들만 드문드문 보여준다.

사원 제례에 사용할 제물을 들고 이동하는 행렬을 자주 만난다.
▲ 제물 행렬 사원 제례에 사용할 제물을 들고 이동하는 행렬을 자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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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산이 사원의 탑들과 어우러지니 사원이 더욱 신비롭게 보인다. 이 아궁산은 발리에 힌두교가 전해지기 전에도 신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아궁산이 백두산보다도 높은 산이니 산의 위용에 경외감을 느낀 힌두교 신자들이 이곳에 최고의 힌두교 사원을 지었을 것이다. 현재 이 '성스러운 산', 아궁산에는 힌두교의 신들이 머물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생명의 근원에 자리한 브사키 사원은 옛날 옛적부터 발리 사람들의 생활을 지켜오고 있다. 발리 사람들은 이 사원에 제례를 올리기 위해 정성스럽게 제물을 준비하여 브사키 사원을 오른다.

1350년에 대분화가 일어났던 아궁산은 1963년 3월에 갑자기 폭발하면서 발리 인구 2천 명 이상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아궁산이 불 뿜는 모습을 본 발리 사람들은 아궁산을 보며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이 대분화는 아궁산을 발리 사람들에게 경외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 외경의 존재, 아궁산에 기도를 하기 위해 힌두교도들이 사원에 모여든다.

발리의 중심 사원에 접근해 갈수록 순례를 온 힌두교도들의 행렬을 만날 수 있다. 정갈한 흰색의 의식복장을 입고 여인네들은 제단에 바칠 제물을 잔뜩 머리에 이고 언덕을 올라오고 있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성스러운 사원에 함께 참배를 온 힌두교인 가족들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띈다. 이 가족들에게 브사키 사원은 성지순례의 대상인 것이다. 그리고 이 순례객들 뒤로는 음료수와 과자 등 간식을 파는 행상들이 따르고 있다.

아궁산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브사키 사원이 장중하고 아름답다.
▲ 브사키 사원 아궁산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브사키 사원이 장중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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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사키 사원의 중심 신전으로 올라가려고 보니 경사 높은 계단이 시야를 막아설 듯이 높게 버티고 있다. 신을 만나러 가는 계단은 마치 하늘에 가서 닿을 듯한 피라미드 같다. 갑자기 솟아오른 계단의 장엄함을 보며, 아궁산을 닮아 사원이 정말 웅장하게 잘 지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장엄함 앞에서 모든 힌두교도 가족들은 사진기를 빼어들고 가족사진을 남기고 있다. 이들에게는 이 사원의 계단이 성지순례를 다녀왔다는 인증 사진의 배경이 된다. 

브사키 사원을 오르는 계단 앞은 힌두교인들이 꼭 사진을 남기는 성소이다.
▲ 기념촬영 브사키 사원을 오르는 계단 앞은 힌두교인들이 꼭 사진을 남기는 성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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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없이 높은 이 계단 위로 올라가서 뒤를 돌아보았다. 계단만 올라왔을 뿐인데도 계단 아래 세상이 아주 멀리 보였다. 계단 양쪽으로는 브사키 사원을 지키는 석상들이 마치 태권도의 주먹 지르기를 하려는 듯한 자세로 서 있다. 나는 올라가는 방향에서 봤을 때 왼쪽은 선의 신이고, 오른쪽은 악의 신이라고 생각했다. 석상을 보고 어느 쪽이 선의 신이고 어느 쪽이 악의 신인지 한 눈에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힌두교에서는 사람이 선과 악의 2가지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선과 악이 조화를 이뤄야 평화를 이룬다고 보는데, 이러한 사상이 석상에도 담겨 있다.

우리는 계단 위쪽으로 연결되는 시바(Siva) 신의 사원은 나중에 다시 들어와 보기로 했다. 나는 시바 사원 오른편의 사원들을 올라가면서 둘러본 후 다시 내려오면서 브사키 사원의 핵심 구역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시바의 사원 옆에는 왕가의 사원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원들의 탑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크고 작은 탑들은 마치 빌딩들이 밀집하여 들어서 있듯이 아궁산 기슭의 넓은 구역에 걸쳐서 장쾌한 스카이라인을 만들고 있다.

어린 아이가 관광객들을 상대로 야무지게 엽서를 팔고 있다.
▲ 엽서를 파는 어린 소녀 어린 아이가 관광객들을 상대로 야무지게 엽서를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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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사원을 둘러보고 있는 나에게 어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마 아가씨가 다가왔다. 손에는 브사키 사원을 담은 사진엽서가 들려있다. 그 엽서를 사서 사용할 곳이 마땅치가 않다고 생각한 나는 이 어린 소녀의 엽서를 지나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인정 많고 마음이 아주 따뜻한 아내는 그냥 지나가지를 못한다. 어린 녀석이 똘랑똘랑하게 말도 잘하고 여러 개를 사면 싸게도 판다고 하니 귀엽기도 한 모양이다. 이럴 때 지갑을 열지 않으면 아내는 나에게 항상 마음을 따뜻하게 가지라고 한 마디를 할 것이다. 나는 이 어린 소녀를 위해 맑은 날 아궁산을 배경으로 찍은 브사키 사원의 엽서를 몇 개 샀다.  

엽서를 판 소녀가 마을 언니들에게 엽서를 팔았다고 자랑하고 있다.
▲ 사원의 어린 소녀들 엽서를 판 소녀가 마을 언니들에게 엽서를 팔았다고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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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이 아이가 귀여운지 계속 이 아이를 보면서 웃고 있다. 이 작은 소녀는 엽서와 음료수를 팔고 있는 언니들에게 의기양양하게 돌아가고 있다. 언니들도 이 아이를 보고 밝게 웃고 있다. 내가 인도네시아어를 할지 몰라도 이 녀석이 동네 언니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 같다. 나도 이제 이렇게 장사를 할 줄 알고 엽서도 팔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소녀들이 학교에서 공부할 시간에 이렇게 나와서 엽서를 파는 게 가슴 아프기는 하지만 표정들이 워낙 밝아서 마음이 놓인다.

사원 경내에는 30개에 이르는 사원을 연결해주는 길이 있다.
▲ 브사키 사원 길 사원 경내에는 30개에 이르는 사원을 연결해주는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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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도 없이 위로 뻗어 있는 계단을 계속 올랐다. 아궁산 분화 당시 뿜어져 나온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사원의 석재들은 짙은 잿빛을 띠고 있다. 이 진하고 육중한 느낌의 힌두교 사원이 수십 개나 모여 있다. 브사키 사원은 힌두교 사원이 1곳이 아니라 크고 작은 30여 개 사원군을 부르는 이름이다.

이 거대한 브사키 사원의 건축물들은 최근에 보수한 흔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아궁산이 폭발했을 당시에도 브사키 사원만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아서, 발리 사람들은 브사키 사원을 더욱 신성하게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사원과 탑이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아름답다.
▲ 힌두교 사원과 탑 사원과 탑이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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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개의 힌두교 사원은 산기슭에 층층이 연결된 계단을 올라가면 하나씩, 둘씩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수많은 사원들은 경내의 작고 아기자기한 길들로 연결되어 있다. 산기슭에 자리한 사원 중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위에서 보니, 사원의 탑들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힌두교 사원의 탑들이 마치 미인송들이 경쟁을 하듯이 도열하여 있는 모습이 일대 장관이다. 사원을 둘러싼 경관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사원을 찾는 발리인들도 정겨우며, 사원에도 품격이 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브사키 사원 경내를 느릿하게 걸었다. 나는 비로소 발리가 어떤 곳인가 하는 진실을 만나게 되었다. 발리는 해변의 아름다움으로만 먹고 사는 섬이 아니었다. 발리는 수많은 신들을 성심을 다해 모시는, 신들의 섬이었다. 발 밑으로 펼쳐진 수많은 사원과 탑들은 신들을 부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14년 6.19일~6.24일의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 기록입니다.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400 여 편이 있습니다.



태그:#인도네시아 여행, #발리, #브사키 사원, #아궁산, #힌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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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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