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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당시 학살된 시신들을 그린 그림. 제주 4.3평화공원 전시실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제주 4.3사건 당시 학살된 시신들을 그린 그림. 제주 4.3평화공원 전시실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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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2014년) 여수지역에 여수현대사평화공원 추진위원회가 발족됐다. 추진위원회가 가장 먼저 한 사업은 제주4·3유적지 답사(2014. 12.5~7)다. 4·3유적지를 답사한 것은 제주4·3평화공원을 만들기까지의 추진과정과 어려움을 청취해 향후계획에 반영하기 위함이다.

제주4·3연구소가 제공한 자료와 전임 4·3연구소장 김창후씨의 설명, 유적지 현장을 둘러본 소감은 당시 제주는 한국판 킬링필드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수많은 양민이 총살당하고, 죽창에 찔려죽고, 굶어죽고, 얼어 죽고, 고문당하며 맞아죽었다.

4·3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3만여 명의 피해자 중 10세 이하 어린이(5.8% 814명)와 61세 이상 노인(6.1% 860명)이 전체 희생자의 11.9%를 차지하고, 여성의 희생(21.3% 2985명)이 됐다는 점에서 과도한 진압작전이 전개됐다는 걸 보여준다. 저항능력이 없는 양민을 잔학하게 죽인 폭력이 난무했던 곳이 어찌 제주뿐인가? 

제주4·3사건이후 진압군을 지휘하던 제11연대장 암살사건을 계기로 미군정은 숙군을 시작했다. 이러한 영향은 여수에 주둔 중인 제14연대에도 불어 닥쳐 제14연대의 좌익들은 동요하고 있었다. 1948년 10월 15~16일경 여수우편국 전보로 '제14연대는 10월 19일 20시에 제주도로 출동하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갑작스런 제주 출동 명령은 14연대 좌익들에게 '동족상잔'과 '반란' 중 양자 택일을 강요했다. 제주도 출동직전인 10월 19일 밤 한방의 총성으로 시작된 반란은 여수와 순천 및 전남동부권과 지리산 일대 주민 1만여 명의 희생자를 낸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2014년 4월 2일 도법스님이 이끄는 화쟁코리아 100일 순례단을 위해 여수 만성리에 있는 형제묘에 대해 설명하는 여수지역사회 연구소장 이영일씨. 여순사건 당시 125명의 희생자가 한 곳에 묻혀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지내라는 의미로 형제묘라 이름을 지었다
 2014년 4월 2일 도법스님이 이끄는 화쟁코리아 100일 순례단을 위해 여수 만성리에 있는 형제묘에 대해 설명하는 여수지역사회 연구소장 이영일씨. 여순사건 당시 125명의 희생자가 한 곳에 묻혀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지내라는 의미로 형제묘라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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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현장은 세계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일본의 난징대학살, 크메르 루즈,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의 보코하람, IS학살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인간의 폭력성은 어디에서 연유한 걸까?

인간 내면에 내재된 폭력성을 보여주는 <루시퍼 이펙트>

중국의 사상가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성악설을 주장했고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했다.  인간의 본성이 원래 잔학한 것일까? 아니면 맹자의 말처럼  선할까? 정확한 진단을 못 내렸지만 이에 대한  해답이 될 수도 있는 책이 있다.

스탠포드대학교의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인간의 내면에 숨어있는 본성을 파악하기 위해 '스탠퍼드 모의 교도소 실험'을 실시했다. 그는 선량하고 평범했던 시민이 악마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실험을 마친 후 인간본성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루시퍼 이펙트>를 발간했다. 다음은 <루시퍼 이펙트>에서 일부 인용한 내용이다.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평범하고 신체 건강한 대학생들을 무작위로 '수감자'와 '교도관'으로 나눈 후 모의 감옥 실험을 시작했다. 일주일도 안 되어 평범한 학생들은 각각 가학적인 교도관 혹은 정신 쇠약 증세를 보이는 죄수로 변해갔고 급기야 실험은 중단되었다.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부 교도소에서 자행된 포로학대는 전 세계를 경악케 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들이 고향에서는 더없이 평범한 이웃, 선량한 가족이었다는 사실이다. 미군 병사들은 이라크인 수감자들에게 극도의 모욕과 고통을 주는 고문을 저지르면서 웃고 즐기며 기념촬영을 해 전 세계가 분노했다.

여수현대사 평화공원 추진위원단 일행에게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비에 관해 설명하는 전 4.3연구소장 김창후씨.
 여수현대사 평화공원 추진위원단 일행에게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비에 관해 설명하는 전 4.3연구소장 김창후씨.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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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 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한국교민청년 조승희. 착하기만 했던 그는 2007년 4월 19일 버지니아 주 블랙스버그의 버지니아텍 대학교에서 학생과 교수들에게 총을 난사해 32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했다.

조승희가 자살하기 직전 NBC텔레비전 뉴스에 보낸 비디오 테이프에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거부당한 것에 대한 분노로 혼란에 빠져 절망적인 상태인 것을 알 수 있다.  

존 밀턴은 <실낙원>에서 "마음은 자리나 때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자체가 곧 그 자리이니, 그 속에서 지옥이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천국이 지옥이 될 수도 있으리라"고 말했다. 스탠포드 감옥 실험은 수감자나 교도관의 마음속에서 처음에는 상징적 의미의 감옥으로 출발했으나 결국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감옥이 되었다.

선과 악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기질? 상황?

세상 사람들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히틀러, 폴 포트, 이디 아민, 사담 후세인 등은 악한 사람이고 슈바이처나 테레사 수녀 등은 선한 사람이라고. 일부에서는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기질적으로 선인과 악인으로 분류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악인은 유전적으로 악인 기질을 가지고만 태어날까?

'빛을 가져오는 자(light bearer)'라는 의미의 루시퍼는 하느님의 권위에 도전해 그를 따르는 타락한 천사들과 함께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하느님이 가장 사랑하던 천사였다. 다음에 보여주는 에셔(M.C. Escher)의 그림이 시사하는 바를 보자.

'에셔'가 그린  '루시퍼' 그림. 상층부에는 천사가 하층부에는 뿔난 악마천사의 그림이 보인다. 천사가 악마가 되기도 하고 악마가 천사도 될 수있다는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에셔'가 그린 '루시퍼' 그림. 상층부에는 천사가 하층부에는 뿔난 악마천사의 그림이 보인다. 천사가 악마가 되기도 하고 악마가 천사도 될 수있다는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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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상층부에는 어두운 천국에서 춤추고 있는 수많은 하얀 천사들이 있고, 아래층에는 뿔난 검은 악마들이 있다. 에셔의 그림이 주는 의미는 선과 악이 맞물려 돌아가고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선이 악이 되기도 하고, 악이 선이 되기도 한다. <루시퍼 이펙트>의 저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얘기다.   

"에셔의 그림은 세 가지의 심리학적 진심을 담고 있다. 첫째, 세계는 선과 악으로 가득하며, 이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둘째,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하고 불완전하다. 셋째, 천사가 악마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악마가 천사가 될 수도 있다."

사회심리학이 보여주는 수많은 증거들은 주어진 맥락에서 상황의 힘이 개인 힘을 압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사과 상자 속에 썩은 사과가 있으면 근방의 사과도 썩는다. 수많은 권력엘리트들이 선량한 사람과 군인들을 '썩은 사과상자' 속에 집어넣어 썩게 만든다.

제주 4.3사건 당시 무참히 학살됐던 영혼들을 발굴한 현장 모습. 뼈와 뼈들이 엉켜 유전자 감식을 통해서만 식별이 가능했다. .
 제주 4.3사건 당시 무참히 학살됐던 영혼들을 발굴한 현장 모습. 뼈와 뼈들이 엉켜 유전자 감식을 통해서만 식별이 가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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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강력한 권력을 가진 집단뿐일까? 공무원 집단, 기업집단, 사회단체, 학교에도 상자 전체가 썩도록 상황을 끌고 가는 악마가 존재한다. 우리는 이들을 예의주시하고 감시해 건강한 사과상자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썩은 사과상자를 만드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야 싱싱한 사과를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시스템을 위해서는 적당한 온도와 관리, 썩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지켜보고 관리해야 한다.

개인의 힘, 상황의 힘, 시스템의 힘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루시퍼 이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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