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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일, 새해를 맞기 위해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 해맞이 명소와 인파가 부쩍 되는 곳은 아직 찾기 어렵다. 가족 모두 함께 해맞이하고 싶었으나 아직 3살짜리 어린 딸 때문에 결국 무산되었다. 결국, 올해 큰 변화를 겪게 될 나와 큰딸 근영이만 해맞이를 가기로 했다.

나는 올해로 '4'짜를 달게 된다. 사실, 급격히 우울해지거나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일 줄 알았는데 괜찮다. 그냥 '40'이 되는구나~라는 정도이며 '이제 좀 더 시간이 빠르게 흐르겠지?'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그래도 40이라는 숫자는 결코 익숙한 숫자가 아님은 분명하다.

나의 딸 근영이는 '학생'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출산 직후부터 '호호' 불며 전전긍긍하며 키웠던 아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초등학생이 된단다. 지금과 다른 사회 속에 발을 담그게 된다. 나 또한 학부모가 된다. 학부모로 사는 삶은 조금의 기대와 함께 엄청난 걱정스러움으로 다가온다.

어쨌든 우리는 지난밤에 계획한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집을 나섰다. 늦은 출발에 뛰듯이 발걸음을 옮겼으나 생각보다 늦게 출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긴, 오늘 우리가 해맞이할 곳은 우리 동네 뒷산인 갈뫼산이다. 정상이라고 해봐야 40분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는 곳이다.

해 맞이 산행 시작
 해 맞이 산행 시작
ⓒ 조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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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뫼산 약수터 입구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해마다 동네 자생 단체들이 떡국 나누기 행사와 새해 소망 풍선을 나눠주고 있는데, 올해 또한 많은 분들이 나왔다. 늦은 출발로 우리는 떡국은 포기하고 풍선이라도 받을 생각으로 행사장으로 가니, 이미 풍선도 동이 나고 없었다. 딸이 크게 아쉬워했지만, 이내 '어쩔 수 없지 뭐~ '하며 쿨 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새벽 시간이라 그런지, 딸은 평소 잘 오르던 산을 넘는데 힘들어했다. '지리산도 갔는데 이 정도 쯤이야...'라며 용기도 북돋아 주었지만, '목이 마르다', '다리가 아프다', '배가 고프다'며 투정을 부린다. 그래서 결국 정상은 포기하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중턱에서 새해를 맞이하기로 했다.

해를 기다리는 동안 딸에게 어떤 소원을 빌겠느냐고 물었다. 딸애는 한참 생각하더니 5가지를 말한다.

1. 엄마아빠 오래 살게 해주세요.
2. 채린이 오래 살게 해주세요.
3. 나도 오래 살게 해주세요.
4. 할머니 할아버지 오래 살게 해주세요.
5. 학교 수업 시간에 화장실 안 가게 해주세요.

해님을 기다리며
 해님을 기다리며
ⓒ 조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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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소원을 듣게 된 주위 사람들도 '빵' 터져버렸다. 내가 왜 그게 걱정되느냐고 물었더니 "언니들이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가면 선생님에게 혼난다고 했어"라며 "난 정말 혼나는 게 싫어"라고 말한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선생님에 대해 좋지 않는 인상으로 시작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해서 "급하면 화장실에 가도 돼. 그리고 쉬는 시간도 있잖아"라고 하니 "쉬는 시간이 정말 정말 짧데"라고 말한다. 이런 말을 주고받으니, 학생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딸의 무게가 제대로 느껴졌다. 

이제 앞으로 고등학교까지 12년을 학생으로서 가방과 친구처럼 살아야 한다. 우리 딸에게 올 학교생활이 어떨지 궁금하면서도 학교라는 경쟁 구도 속에 허우적되지 말고 지혜롭게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분위기 휩싸이지 말고 지혜로운 학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으니, 갑자기 곳곳에서 탄성이 나온다. 오늘은 운 좋게 하늘이 맑아서 해님이 올라오는 게 선명하게 보인다. 해가 떠오르자, 딸은 자기가 준비한 소원들을 중얼거리며 합장하고, 나 또한 올해 다짐한 것들을 마음속으로 이야기했다.

해 돋이
 해 돋이
ⓒ 조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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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를 준비하는 시간까지는 1시간 정도였는데.... 해가 떠오르는 시간은 금새였다. 조금은 허무했지만, 온전히 딸과 보낸 한 시간이라 생각하니 멋진 새해를 맞은 것 같아서 뿌듯하다.

소원을 빌고 있는 근영
 소원을 빌고 있는 근영
ⓒ 조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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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내려오는 동안 근영이에게 8살 기념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특별히 없다고 한다. 평소 노래를 좋아하는 모습이 떠올라 '노래방'을 언급했더니 "지나가다가 간판은 봤는데, 한번 가보고 싶어"라며 반색한다.

집에서 반겨주는 작은 딸 채린이와 신랑을 보니 갑자기 따뜻함이 느껴졌다. 2015년 나에게 많은 일들이 맡겨지고 또한 만들기도 해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 것 같다. 하지만 가족들 속에서 나의 역할도 늘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결심도 절로 떠올랐다.

평소 약속했던 오므라이스로 아침을 먹고 가족들과 덕담을 나눴다. 덕담을 나누는 중에 근영이가 울어버려 분위기가 묘했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 모두 사랑해'로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또, 한가지... 우리 가족의 첫 노래방 나들이도 성공적이었다. 처음에는 둘째 딸이 무섭다고 아빠 품에서 내려오지 않더니, 이내 아는 노래가 나오자 마이크를 잡고 흥얼거렸고, 흥이 많은 큰딸은 1시간 내내 자리에 앉지 않고 탬버린을 한 손에 쥐고 공연을 펼쳤다. 오랜만에 온전히 우리 가족이 함께한 시간이었다.


태그:#해돋이, #갈뫼산, #새해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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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에서 시민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소통을 위해 여러방면으로..노력할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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