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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도 노동시장 개혁을 꾸준히 추진했던 독일과 네덜란드, 덴마크 같은 선진 국가들은 그렇지 못한 국가들에 비해 성장과 분배 모든 측면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한다."

노동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진원지는 청와대와 정부다.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독일과 네덜란드를 예로 들며 노동시장 개혁은 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임을 강조했고 노사정의 대타협을 주문했다. 박 대통령의 이 발언은 비정규직 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는 일명 '장그래법'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앞서 지난 7월 경제수장이 된 최경환 경제 부총리는 자리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정규직 과보호'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정규직이 과보호되는 구조이다 보니, 비정규직이 상대적으로 차별받고 기업 경쟁력도 약화된다는 논리였다.

특히 최 부총리는 11월 한 정책세미나에 참석해 "정규직 과보호하고 비정규직은 보호가 부족해 기업이 겁이 나서 정규직을 못 뽑고 비정규직이 양산돼 이 부분을 개혁을 하겠다"고 말한 뒤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중규직' 논란이 일파만파 일자, 기획재정부는 중규직 도입은 오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정규직이 과보호 되고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기업에 주는 연말 보너스, 비정규직 종합대책

최경환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답변하고 있다.
▲ 예결위 전체회의 참석한 최경환 최경환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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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노동시장이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2014년을 고작 이틀 남긴 29일, 정부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살펴보면 그동안 최경환 경제팀과 대통령 발언의 연장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우선 기업의 비정규직 선호 현상을 억제하고 고용 안정을 추구하며 비정규직과 정규직간 차별을 해소하겠다는 것이 대책의 큰 줄기다. 얼핏 보면, 일면 그럴 듯하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대기업 신입사원의 연봉과 비정규직의 급여가 비교될 때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삶이 하늘과 땅처럼 느껴지고, '비정규직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고 비유해도 될 만한 상황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진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방향과 29일 발표된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틀렸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부총리의 '노동 시장 이중구조 해소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위화감을 부추겨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얄팍한 셈법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비정규직 종합대책도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위한 대책이라지만, 중심은 기업의 비용절감과 인력운용의 유연성에 있다. 여전히 저렴하게 쓰고 쉽게 버릴 수 있는 노동정책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또 경기침체를 이유로 정규직의 처우와 임금을 낮춰,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간극을 줄이려는 하향평준화 의도를 거침없이 내보이고 있다.

독일과 우리나라는 근본적으로 출발점이 다르다

물론 대통령의 말처럼 독일을 위시한 많은 나라들에서 비정규직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정규직, 시간제 일자리가 활성화되어 있으니까 우리도 그렇게 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예로 든 독일 등 비정규직, 시간제 일자리가 활성화된 나라는 노동자의 삶의 질과 국민의 여가 활동을 우선하여 그런 형태의 일자리를 도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손쉬운 해고와 저임금으로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도입한 우리나라와는 근본적으로 출발점이 다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박근혜 정권의 노동 개혁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노동 정책이 잘된 나라들의 겉모습만 빌려와 '비정규직과 시간제 일자리는 선진국 유형이며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강요하는 건, 탱자가 자랄 수밖에 없는 토양에 귤나무를 심어 놓고 귤의 달콤함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IMF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제도의 무분별한 확장은 비정규직 노동 인구 600만 시대를 만들어 놓았다. 숱한 사람들이 죽어 나갔고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거덜이 났다. 거리로, 광고탑으로, 공장 굴뚝 위로 오른 비정규직의 피맺힌 외침은 해를 넘길 상황이다.

최근 독일 의회에서 확정한 2015년 최저 시급은 8.50유로(1만1000원)이다. 우리나라 최저 시급 5580원에 2배 수준이다. 네덜란드는 9.27유로(1만4060원) 정도, 덴마크의 경우 시간당 20달러(약 2만 원)를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른 나라와 최저임금을 비교할 때면 부끄럽다. 일본의 절반 수준인데다,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보다도 낮아 OECD 최저 수준이란다. 정부가 정한 2014년 2인 가구 최저 생계비는 102만 7414원이지만, 하루 8시간을 일하는 노동자 중엔 그에 턱없이 모자란 월급을 받는 이들도 적지 않다.

비정규직 저임금으로 묶어두려는 속셈, 보인다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과 연대 단체 참석자들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옛 기륭전자 본사 앞에서 그 동안 지켜왔던 농성장을 정리한 뒤 비정규직 법·제도 철폐를 호소하며 오체투지 행진을 벌이고 있다.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과 연대 단체 참석자들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옛 기륭전자 본사 앞에서 그 동안 지켜왔던 농성장을 정리한 뒤 비정규직 법·제도 철폐를 호소하며 오체투지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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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정부가 국민을 생각했다면, 선진국과 같은 길을 가고 싶었다면, 비정규직이나 시간제일자리를 택한 이들의 삶이 온전히 유지될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하는 게 기본이다. 노동의 토양은 이렇게 간극이 심한데 다른 나라들의 "노동시장 개혁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정작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은 다른 나라의 최저임금이고 노동자의 대한 배려이다.

정규직의 과보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4년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에 육박한단다. 4인 가족이 평균 1억 이상의 소득을 올려야 하고, 한 달 수입이 830여만 원이어야 한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대기업과 공기업 등 소위 신의 직장을 제외하고 나면, 다른 정규직들은 이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국민소득 3만 달러 혜택은 불과 10%도 되지 않는 일부 정규직과 기업만이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 이중구조 해소와 하향평준화 아닌 상향평준화가 답이다.

비정규직 고용 기간 4년 연장, 55세 이상 고령자 파견 전면 허용 등 29일 발표된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서민들의 삶을 질을 높이는 방안이라면 반발할 근거도 비난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몇몇 처우개선을 내세워 비정규직을 저임금으로 묶어두려는 속셈이 너무 훤히 보인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아니라 비정규직 기만대책이고 얄팍한 희망 고문인 셈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제도는 출발부터 잘못되었다. 특히 비정규직과 정규직 차별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값싼 노동력을 유지하려는 정부의 노동시장 개편은 우려스럽다. 시쳇말로 땅 파먹고 살라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는 것이 노동자의 현실이다. 물러설 곳도 없는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지 말라. 지금도 숱하게 죽어나가는 이들의 모습, 보이지 않은가? 그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


태그:#비정규직 종합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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