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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누적된다. 쇼핑을 하면서 적립카드도 안 만드는 사람인데, 이런 것들은 내 의도와 다르게 하루하루 '적립'되기만 한다. 그것은 바로 내가 비정규직 감정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2년 계약으로 고용돼 금융업계에서 청원경찰로 일하면서 살아간다. 그 대가로 받는 돈은 한 달에 110만 원 안팎이다. 최저임금으로 산정되는 월급에 점심값과 교통비 명목으로 조금 더 지급되는 것이다. 여기서 4대보험과 국민연금 등에 10만 원이 자동으로 공제된다.

월급이 입금되자마자 여기저기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원룸텔 방값으로 23만 원, 휴대전화 요금으로 8만 원, 보험비로 5만8천 원…. 그 외에도 이어지는 출금 내역이 내 가슴을 송곳처럼 아프게 찌른다. 낙수효과도 아닌데, 높지도 않은 내 임금이 통장에 머물지 않고 곧장 사회의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현실. 이번 달에도 내 월급은 차마 쥐어보지도 못할 '사이버머니'로 전락한 셈이다.

대체 누구를 위한 '천국'인가

김밥으로 끼니를 때워도 돈은 모이지 않는다
 김밥으로 끼니를 때워도 돈은 모이지 않는다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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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지출을 줄여보려고 애를 썼다. 인터넷과 교통 관련 스마트폰 어플로 '최소한의 비용과 시간'의 황금비 구축을 위해 환승구간을 다양하게 조정하기도 했다. 의·식·주의 3요소 중에서 절감이 가능한 것이 무엇이지 살폈다. 그나마 월세가 적은 편인 원룸텔에서 한 달을 살고, 밥은 저렴하게 편의점 도시락이나 분식점 김밥 한 줄로 때우기 시작했다. 옷이야 그저 얼어죽지 않고 가릴 곳만 가리면 되지 않겠냐는 심정으로 패션 감각은 잠시 꺼두어도 좋을 테지, 싶었다.

돈이 드는 취미생활은 지양했고, 가끔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정도에서 그쳤다. 그마저도 읽고 싶은 책이나 보려던 영화를 놓치는 일이 잦아졌다. 아쉬움이 커졌지만 절약을 위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친구들과 만나서 소주 한 잔 기울이는 일도 부담스러웠다. 약속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살다 보니, 인간관계는 극도로 나빠졌다. 기대한 만큼 지갑도 두꺼워지지도 않았다. 내가 밥을 먹기 위해 앉은 김밥집의 풍경은 김밥에게도, 나에게도 '천국'이 아니었다. 허겁지겁 허기를 채우고 다시 발걸음을 거리로 내딛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나의 현실과 정확히 포개졌기 때문이다.

영양이 불균형한 식단으로 '배고픔'만 잠시 달래는 식사를 하다보니, 몸이 망가지는 게 어느 순간 느껴졌다. 50kg대의 몸무게가 6개월 만에 70kg대로 급격히 늘어난 탓에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진 것이다.

내 건강을 챙기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소비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회의감이 밀려왔다. 통장 잔고는 어김없이 매달 바닥을 드러냈고, 한 달에 5만 원에서 10만 원씩 힘겹게 모으던 적금은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신 뒤 병원비에 보태느라 해지할 수밖에 없었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는 손이 '덜덜'

지난 여름 오랜만에 친한 동생과 만나서 식사를 같이 했다. 종로에서 만난 우리는 "간만에 얼굴 보는 거니까 든든하게 먹자"며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삼겹살과 소주를 주문하고, 이내 술잔을 들이켜면서 구운 고기를 젓가락으로 연신 집어들었다. 저녁이 되면서 해가 기울었고, 밤이 깊어갈수록 대화도 무르익었다.

스포츠를 주로 다루는 인터넷 언론에 입사한 동생은, 요즘 '클릭 유도용' 기사만 하루에 수십 개 써내는 일에 지쳐간다고 하소연했다. 심층적인 기사를 쓰고 싶어서 기자의 꿈을 키웠지만, 그와 다르게 업계용어로 '우라까이(베끼기)' 기사를 기계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현실이 실망스러운 듯했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안부를 묻는 자리가 끝나고, 계산대로 향하면서 "내가 낼게, 오늘은" 하고 말을 내뱉었다. 그 짧은 순간에 '지금 통장에 얼마가 남았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났다. 난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는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애써 숨겼다.

영수증을 구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거리로 나와 청계천으로 향했고, 이제는 헤어질까 싶은 순간에 동생이 말했다. "후식은 뭘로 할까요?"라고. 내가 무어라고 답하기도 전에 편의점으로 들어간 그는 아이스크림을 집어들었고, 나는 지갑 안에서 홀로 외로이 떨고 있을 만 원권 지폐가 떠올랐다. 아, 이제는 너도 세상 밖으로 사라질 시간이구나.

누군가 만나서 쓰는 비용이 아깝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내 지갑에서 만 원을 꺼내기는 망설여지는 삶. '이제는 아껴써야 할 텐데'라는 말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속에서 울려퍼지는 하루. 오늘따라 가로등 밑에 선 내 그림자가 더 작게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일까?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는 손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는 손이...
ⓒ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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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절반이 100만 원대 월급으로 사는 세상

소비를 줄이는 일이 성공적이지 못했고, 이메일로 월급날마다 전송되는 급여명세서를 향한 시선의 끝에는 한숨이 따라왔다. 결국 '급여가 더 높아야만 이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하는 질문이 생겼다. 나는 이직을 위해 구직 사이트를 둘러보았고, 어떤 답도 얻지 못한 채로 인터넷 창을 닫는 일을 반복했다.

'고졸에 무스펙'. 나를 표현하는 어떤 단어들이 벽을 쌓은 듯했다. 그것은 곧 내가 지나온 삶이 고스란히 무의미한 시간들이었다는 말과도 같았다. 내가 너무 '나이브'하게 살아온 것일까? 순진하다는 표현을 비하적인 표현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던 20대도 이미 지나가 버렸다. 30대인 나는 이제 이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더 치열하게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정규직이라서, 계약직이라서 이런 삶을 살아도 괜찮은 걸까? 한국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노동자의 절반 가까운 비율이 정규직이 아닌 채, 100만 원대 월급을 받고 살아간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모두가 다 나처럼 힘겹게 한 달을 '버텨내는' 것인지, 아니면 나만 이런 것인지.

이제는 나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지만, 돈이 없어서 삶의 방향과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일을 언제까지 겪어야만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리고 그 의문을 이제 그만두고 싶다. 임금과 일자리를 늘리지 않는 이 사회가 나와 같은 고달픈 삶만을 늘려가는 현실을 바라보는 일도.

덧붙이는 글 | '짠돌이라 부르지 마' 응모글입니다.



태그:#비정규직, #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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