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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4일 서산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천주교 대전교구 서산지구 8개 성당 '다 함께 성가 부르기 대회'에서 태안성당 성가대가 합창 연주를 하고 있다.
▲ 태안성당 성가대 공연 2011년 6월 4일 서산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천주교 대전교구 서산지구 8개 성당 '다 함께 성가 부르기 대회'에서 태안성당 성가대가 합창 연주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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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대전교구 태안성당 성가대원으로 오랜 세월 활동해오고 있다. 40대 중반이던 1994년부터 참여했으니 올해로 20년을 헤아린다. 노래로 열심히 기도 생활을 하는 가운데 20년 세월이 바람같이 흘렀다. 그리고 어언 60대 후반으로 접어들게 됐다. 

청년 시절에도 한동안 성가대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재미를 붙이던 중 1975년부터 객지 유랑생활을 함으로써 성가대 활동은 물론이고, 신앙 생활에도 공백이 생겼다. 1980년 봄에 노동판 생활을 접고 귀향함으로써 신앙 생활을 회복했지만 성가대에는 관심이 없었다.

태안 성당에는 일찍부터 성가대가 있었으나 여성 단원뿐이었다. 처음에는 소프라노 일색이다가 알토가 생겨 여성들만의 2부 성가대가 오래 유지됐다. 그러던 중 1994년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다. 1993년 8월 부임한 주임 신부님은 1994년 초부터 미사 때마다 남성 신자들에게 성가대 참여를 부탁하곤 했다. 실효가 없자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부터 미사 후 성당 문 앞에 지켜서 있다가 밖으로 나오는 40대 이하 남성 신자들의 손을 붙잡고 성가대로 데리고 가곤 했다.     

화음의 완성에서 얻는 희열과 성취감

2012년 6월 9일 서산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천주교 대전교구 서산지구 8개 성당 '다 함께 성가 부르기 대회' 태안성당 성가대 합창 연주 직전 대기실에서. 음대 출신 피아니스트인 쥐휘자와 함께.
▲ 지휘자 자매와 함께 2012년 6월 9일 서산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천주교 대전교구 서산지구 8개 성당 '다 함께 성가 부르기 대회' 태안성당 성가대 합창 연주 직전 대기실에서. 음대 출신 피아니스트인 쥐휘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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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후 성당 밖으로 나왔다가 주임 신부님에게 붙잡혀 도로 성당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신자들이 점점 늘어났다. 나도 어느 날 저녁 성당 문밖에서 주임 신부님 손에 잡혀서 도로 성당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것이 내 성가대 활동의 시작이었다.

개중에는 중도에 다시 내뺀 신자들도 있었으나, 대개는 그냥 남아 붙박이듯 성가대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성가대원으로 함께 활동해오고 있는 동료들이 여러 명 된다. 20년 세월 탓에 거의 모두 머리칼이 희게 변했다. 그 동료들 중에는 나보다 두 살 연상인 초등학교 동창도 있다. 그는 테너 파트고, 나는 베이스 파트다.

1994년 비로소 4부 합창단 꼴을 갖춘 태안 성당 성가대에 올곧게 참여해 온 지난 20년 세월을 돌아보면 성가대 참여 덕분에 참으로 기도를 많이 바치며 살았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성가는 기도다. 열렬하게, 때로는 신나게, 또 때로는 눈물이 나도록 절절히 바치는 기도다.

매주 금요일 저녁 미사 후에는 한 시간씩 연습을 한다. 주일의 교중 미사를 대비한 연습이다. 그리고 해마다 부활 대축일과 성탄 대축일을 앞두고는, 또 중요 행사가 있을 때는 달포 전부터 특송 성가 연습을 시작한다. 대축일이나 행사 날이 임박해서는 일주일에 사나흘씩 연습을 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매일 저녁 강행군을 하기도 한다.    

2013년 6월 23일 서산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천주교 대전교구 서산지구 8개 성당 '다 함께 성가 부르기 대회'에서 태안성당 성가대가 합창 연주를 하고 있다.
▲ 태안성당 성가대 2013년 6월 23일 서산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천주교 대전교구 서산지구 8개 성당 '다 함께 성가 부르기 대회'에서 태안성당 성가대가 합창 연주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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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고달픈 일이기도 하다. 성가대에 참여하지 않는 신자들도 성가 연습의 어려움을 감지한다. 절묘한 화음을 들으며 저런 화음의 완성을 위해서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까 생각하는 신자들도 많다. 4부 합창의 절묘한 화음을 접하며 감동 속에서 감사를 느끼면서도, 그 연습 과정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예 성가대 참여를 기피하는 신자들도 있다.

해마다 대축일을 앞두고 새로운 특송 성가 악보를 받을 때는 설렘과 함께 두려움도 감내한다. 매우 어려운 특송 성가를 연습할 때마다 음악적 재질을 타고 나지 못한 내 한계를 절감하며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이 애를 쓰곤 한다. 또 그럴 때마다 성가는 기도이며, 연습도 기도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위안하고 또 채근한다.

정말이지 성가 연습은 그 자체로 기도이다. 무수히 기도를 반복하는 일이다. 재삼재사 무수히 기도를 반복함으로써 마침내 완성된 화음의 기도를 바치게 된다. 힘든 연습 과정 끝에 얻게 되는 화음의 완성은 색다른 희열과 성취감을 안겨 준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이요 성취감이다.    

화음의 세계, 상생과 조화의 세계

2011년 6월 23일 서산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천주교 대전교구 서산지구 8개 성당 '다 함께 성가 부르기 대회'에서 태안성당 성가대가 합창 연주를 하고 있다.
▲ 태안성당 성가대 2011년 6월 23일 서산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천주교 대전교구 서산지구 8개 성당 '다 함께 성가 부르기 대회'에서 태안성당 성가대가 합창 연주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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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힘든 연습 과정 끝에 얻게 되는 화음의 완성, 그 희열과 성취감 때문에 나는 성가대 활동을 계속하는지도 모른다. 열심히 내 베이스음을 발성하는 가운데서도 4부 합창이 빚어내는 화음의 절묘함을 감지한다는 것은 정말 뿌듯한 일이다.

내가 참여하여 일조하는 그 화음의 세계 속에서 새삼스럽게 화음의 가치를 체감하곤 한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 네 가지 소리를 교묘히 배합한 작곡가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도 크고, 그런 곡을 선택해 가르치는 지휘자와 반주자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도 크다. 네 가지 소리를 동시에 정확히 포착하며 손짓을 하는 지휘자를 경이로운 눈으로 보기도 한다.

일찍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가장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의 지휘에 따라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신비스럽고도 장엄한 앙상블을 접하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앙상블은 아니더라도, 내가 속한 성가대의 4부 합창이 만들어내는 화음만으로도 나는 얼마든지 화음의 가치를 체감하며, 세상에 대한 소망을 내 기도로 절절히 발현시킬 수 있다.         

네 가지 소리가 적절히 어울려 만들어내는 그 화음은, 세상의 조화를 반영한다.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돕고, 어울리며 상생함으로써 그것은 가능하다. 음양의 조화 같은 일정한 룰이 존재한다. 그 룰을 깨뜨리거나 뒤틀지 않고 서로서로 존중할 때 어울림의 룰은 극대화된다.

음악은 여러 가지 음과 박을 안고 있다. 갖가지 음과 박이 모여 음악이 된다. 그 갖가지 음과 박이 얼마나 잘 어울리며 기능하느냐에 따라 음악의 성패가 결정된다. 음악이 보여주는 화음의 세계는 바로 상생과 조화의 세계이다.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는 바로 어울림임을 음악은 일깨워준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음악 속에서 위안을 얻고, 희망을 키우기도 한다. 음악을 들으며 세상 속에 음악으로도 존재하는 절대자와 교감을 이루기도 한다. 그래서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개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들이며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사람들, 정치적 욕망과 경제적 탐욕 속에서 조화의 가치를 훼손하며 사는 사람들은 음악을 듣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랏일을 한다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이리저리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일수록 조용히 음악을 듣는 시간도 가져야 하고, 화음의 절묘함과 아름다움을 접해야 하는 것이다.   

내 눈 앞의 예수님을 바로 보기 위해

2014년 9월 21일 천주교 대전교구 태안성당 설립 50주년 기념 감사미사에서 태안성당 성가대가 성가 봉사를 하고 있다.
▲ 태안성당 성가대 2014년 9월 21일 천주교 대전교구 태안성당 설립 50주년 기념 감사미사에서 태안성당 성가대가 성가 봉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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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에 참여하면서 성가대원들에 대한 생각도 하곤 한다. 일단은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음악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성가대에 참여하게 된 동기야 어떻든 깊은 신앙심과 음악에 대한 애정이나 재능 때문에 성가대 활동이 유지될 터이다.

그들은 반복적인 성가 연습으로 기도도 많이 바치며 사는 사람들이다. 신앙심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선물인 음악에 대한 애정으로 성가대 봉사를 한다는 것은 정녕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성가로 열렬히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때로는 절절히 참회도 하고 청원도 한다는 것은 그만큼 하느님과 밀착해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저 하늘 높은 곳이 아닌 이 세상 곳곳에, 내 바로 앞에 계신 하느님을 보려는 눈을 가져야 한다. 하느님과 밀착해 있는 상태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성당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눈으로만 보지 말고 마음 안에 담고 살아야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곳곳에, 내 바로 앞에도 존재한다. 예수님은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수많은 예수님들이 오늘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형태로 저 차가운 거리들에서 고난을 겪고 있다. 또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 안에도 계신다. 

오늘의 현실을 전혀 모르거나 외면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을 방해한다. 세상 곳곳에 못 박혀 계신 예수님을 전혀 모르거나 외면하면서 기도를 하는 것은 바른 기도가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성가를 부르고 재능을 발휘한다 해도, 그것은 세상에 화음의 의미를 선사해 주신 하느님께 제대로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일이 아니다.

신앙심 안에서 음악을 사랑한다면, 오늘 이 순간에도 세상 곳곳에 못 박혀 계신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것을 위해 나는 오늘도 우리 성당 성가대에 참여한다. 그래서 나의 성가대 참여 의지는 더욱 절절하다.

언젠가 초등학교 동기인 동료 단원과 함께 단원들 앞에서 공언한 것이 있다. 나이 70살까지 성가대원으로 활동하겠다고. 그래서 박수도 받았다. 이제 60대 후반 세월로 접어든 나는 70고개가 멀지 않았다. 이제는 생각을 바꾸고 있다. 하느님께서 내 수명을 허락하신다면 80살까지 성가대원으로 남아 있겠다고...

화음의 완성이 안겨주는 희열과 성취감을 위해서. 한동안의 여정을 마쳤을 때마다 갖게 되는 감미로운 허탈감을 위해서. 실은 연습 과정이 더 행복함을 확인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화음의 세계를, 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곳곳에, 내 눈 앞에 못 박혀 계시는 예수님을 바로 보며 절절히 기도하기 위해서...!


태그:#천주교 대전교구 태안성당, #성가대 , #화음의 세계, #4부 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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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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