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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서른셋에 남편을 잃었다. 아픔을 추슬러보겠다고 아들의 손을 잡고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왔다. 하나뿐인 아들조차 납치되어 죽는다. 자살하려고 들른 약국 주인에게 이끌려 교회에 간다. 새 삶이란 이런 거구나, 참 다른 세상도 있구나, 그녀에게 교회는 그랬다.

용서하기로 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들 유괴범이 갇힌 교도소를 방문한다. 유괴범은 교도소에서 하나님을 믿어 용서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라고나서부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더" 이 뻔뻔한 유괴범의 말을 들은 그녀는 뒤집어진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자신이 용서해주러 왔는데, 이미 용서를 받아 용서받을 필요가 없다니. 그녀는 절규한다.

 영화 <밀양>의 포스터
 영화 <밀양>의 포스터
ⓒ 시네마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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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크시다면요 그렇다면, 왜 우리 준이가 그렇게 처참하게 죽게 내버려 두셨어요? 그 어린것이 무슨 죄가 있다구? ... 하나님, 하나님 보고 계세요? 보고 있냐구?

내가 그 인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난 이렇게 괴로운데, 그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받고 구원 받았어요.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영화 <밀양> 중에서)

그리고 다짐한다. 신에게 지지 않을 거라고. 십계명을 어겨 보란 듯이 신을 꺾을 거라고. 그녀는 도둑질을 한다. 교회의 장로를 유혹하여 간음을 저지른다. 교회 수련회 때 찬송가 대신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튼다. ... 이신애(전도연 분)가 영화 <밀양>(이창동, 2007)에서 보인 행동이다.

신과 인간, 그 질기고 오랜 역사

과연 그녀에게 신은 무엇인가? 인간 본질과 고통의 문제, 신과 인간의 역사, 그녀가 만난 신, 어그러진 신, 그녀에게 신은 정말 구원자였나? 영화는 대답을 관객에게 미룬다. 대부분 그렇게 신의 문제는 대답을 회피하는 게 오늘날 익숙한 대처법이다. 무신론자든 유신론자든.

신에 대해 까발리기로 단단히 마음먹은 책이 있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마리 드뤼케르와 종교학자이자 사학자인 프레데릭 르누아르의 대담으로 엮은 <신의 탄생>이 그것이다. "당신은 신이 있다고 믿습니까?"라고 질문한다. 그러나 신 존재 증명에는 침묵한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한 신에 대해 고찰할 뿐이다.

종교로써의 신에 대한 접근방식이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는 몹시 껄끄러울 수 있다. 그러나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조차 '모름'으로 치부되는 신의 역사를 철학, 종교학, 역사, 신학을 넘나들며 명쾌하게 파헤친다. 서문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남녀 신들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유대인이 유일신을 창조했는가? 왜 인간은 신의 이름으로 서로서로를 죽이는가? 의심 없는 믿음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중략) 유대인, 그리스도교인, 무슬림의 신은 동일한 신인가? 철학과 과학은 신의 존재 또는 부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7쪽)

고대의 샤머니즘에서 유대교, 기독교, 동양의 철학과 붓다, 이슬람교, 철학과 과학자들의 신, 무신론에 이르기까지 신의 역사를 담담하게 펼친다. 오강남 교수는 "신이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여기던 시대에서 이제 신이 문제 자체가 된 시대"라고 규정한다. 그렇다. 이제 사람들은 신(엄밀히 말하면 신을 믿는다는 종교인)에게 신물이 났다.

신과 회의(懷疑), 마더 테레사

 책 <신의 탄생> 표지
 책 <신의 탄생> 표지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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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역사는 신을 의지하던 시대, 신에게 제의(祭儀)하던 시대, 신에게 기도를 드리던 시대, 신에게 실망하는 시대, 그리고 지금은 신을 떠나는 시대다. 미래의 신과 인간은 어떻게 될까?

근본주의는 퇴색하지만 종교인 수는 증가한다고 한다. 한편 종교인은 모두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테레사 수녀의 일화는 매우 충격적이다.

많은 사람들은 테레사 수녀가 사망한 지 몇 년이 지난 다음에야 그녀가 무려 50년 동안이나 신의 존재를 의심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충격을 받았지요. 하지만 테레사 수녀는 자신이 믿음을 상실했고, 더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는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전에는 수없이 자주 느꼈고, 벅찬 고통에 직면할 때마다 끊임없이 의심했던 반면, 이제 더는 내면적으로 신이 함께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겠노라고 말했을 뿐입니다.(247쪽)

르누아르는 "믿음은 의심을 허락하며, 의심은 믿음을 없애버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도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모태신앙인인데 신에 대한 회의로 신을 연구했다며, 가톨릭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간증한다. 신이 자신을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아 모두가 신에 대한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어서 믿음(정서적 신뢰)만이 신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쉽게 내 방식으로 말하면, 믿음의 눈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예수는 신이다. 종교나 과학, 철학의 눈으로 보면 신이라고 불리는 역사적(역사성에도 이견이 있다) 예수와 그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한 성경 그대로이다. 그러기에 무수히 회의를 반복하지만 정서적 믿음 안에서 여전히 예수나 무함마드는 신이 된다.

신과 광기, '신의 이름으로'... 무섭다

결국 모든 종교는 고통과 불안 속에서 살면서 마음을 평온하게 지키려는 인간의 필요에 화답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155쪽)

정말 모든 종교가 마음의 평온을 지키려고 하는 걸까? '신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광기와 살인, 폭력과 몰상식, 부도덕은 무언인가. 세속정권을 무너뜨리고 코란을 헌법으로 삼는 이슬람국의 창설을 목표로 여기저기서 터지는 자살테러, 인질극, 공개처형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중세의 십자군운동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1075년 셀주크족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교회를 파괴하고 순례자들을 살해한 것을 기화로 벌어진 8차에 걸친 십자군 원정은 그야말로 기독교 신과 이슬람 신의 대결이었다. 이런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파괴와 살육은 정당한가.

부동산투기를 일삼는 교회, 성추행, 대형교회의 부자세습, 독재정권을 위해 기도회를 열고 심지어는 특정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며 쏟아낸 목사들의 광기어린 설교('보수 후보 안 찍으면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리겠다'는 등), 사찰 주지직을 놓고 싸움박질하는 승려들, 유아성추행한 신부... 과연 종교가, 신이, 마음에 평온을 주는 것 맞는가.

책은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소개된 심리학자 조지 마타린의 실험을 소개한다. 8~14살 아이들에게 여리고성 함락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스라엘인들이 잘했는지를 물었다. 신은 여리고성을 함락하고 여자나 아이들까지 심지어는 동물들까지 모두 죽이라고 했다. 여호수아는 그렇게 했다. 아이들 중 66%가 옳다고 대답했다. 여호수아를 리 장군으로, 여리고를 3000년전 중국의 한 국가로 대치했을 때는 75%가 잘못했다고 대답했다.

근본주의(교조주의)는 무섭다. 저자는 "역사는 종교가 인간에게 최선과 최악 두 가지를 모두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근본주의 종교가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차차 사라지는 양상이다. 지금은 불교식 명상이 유행하고, 샤머니즘에 관심을 갖는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이 늘어나고 있다. 마르셀 고셰가 지적했듯이, "종교 의식에 있어서의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의 시기를 살고 있다.

"정말 예수 믿는 사람 맞습니까?"

영화 <쿼바디스>(김재환 감독)에서 감독이, 재판에 출석하는 조용기 목사에게 했다는 말. 이 말처럼 실감나는 시대가 또 언제일까. 영화 <밀양>의 이신애가  절규하며 찾는 신, 여전히 회의하는 종교인, 광기어린 협잡꾼으로 전락한 종교인들의 추태, 과연 신의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까.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파스칼-

덧붙이는 글 | <신의 탄생>(프레데릭 루느아르, 마리 트뤼케르 지음 / 김영사 펴냄 / 2014. 11 / 337쪽 / 1만6000원)



신의 탄생 - 우리가 알지 못했던 믿음의 역사

프레데릭 르누아르 외 지음, 양영란 옮김, 김영사(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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