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5일 오전 경기도 과천 '코오롱 정리해고 분쇄투쟁위원회' 농성천막을 찾은 밀양, 청도 주민들.
▲ 밀양,청도 주민 30여 명 '전국 농성장 순례' 15일 오전 경기도 과천 '코오롱 정리해고 분쇄투쟁위원회' 농성천막을 찾은 밀양, 청도 주민들.
ⓒ 손지은

관련사진보기


"노동자들 단물 쓴물 다 빼묵고 이렇게 거리로 내몰고, 이북도 이렇게는 안 한다카든데!"

16일 오전 11시 서울지하철 4호선 과천 정부청사역 4번 출구 앞. 우뚝 솟은 코오롱타워 앞에 자리 잡은 '코오롱 정리해고 분쇄투쟁위원회' 농성천막 안에서 호통 소리가 들렸다. '밀양 할매' 한옥순(67)씨의 목소리였다. 함께 온 할매들은 하나 둘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정상천(43) 코오롱투쟁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로부터 최일배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장의 소식을 듣던 중이었다.

최 위원장은 단식 40일째 되던 지난 14일에 병원으로 후송됐다. 병원에서도 42일째 단식을 이어갔다. 지난 2005년에 정리해고 당한 그는 올해로 10년째 농성 중이다.

"노동자가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노. 너무 분통스럽다." 

한씨의 호통이 계속 이어지자 옆에 있던 할매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국민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거 아이가." 
"와 세상이 거꾸로 가노."  

밀양·청도의 할매·할배 23명이 전국 각지의 고난 받는 이들을 위로하는 연대의 순례에 나섰다. 현재는 그들에게도 고된 시간이다. 밀양756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청도 345kV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밀양 송전탑 전국대책회의는 "오랜 세월 온 힘을 다해 싸워왔으나 공권력의 강력한 비호 아래 올 12월 말에 시험 송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시기 주민들이 고속버스를 타고 순례에 나선 이유는 딱 하나, 고마움 때문이다. 이들은 순례에 나서면서 "오랜 시간 밀양과 청도의 싸움에 연대해준 많은 노동자와 시민에게 답례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알렸다. 또 "억울함과 분노를 안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밀양과 청도를 출발한 주민들은 경북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 농성장을 시작으로 총 2박3일 동안 전국을 순례한다. 첫날 강원도 홍천군 골프장 반대 주민 농성장에서 밤을 보내고, 16일에는 경기도 과천 코오롱 농성장, 평택 쌍용차 굴뚝 농성장, 안산 합동분향소 등을 찾았다. 오는 17일 전라남도 나주 한전 본사를 끝으로 전국 순례를 마무리한다.

가는 길마다 눈물바다... "사랑합니다, 힘내이소" 

16일 밀양·청도 주민들이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안 70m 높이 굴뚝에서 농성 중인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실장이 눈에 들어오자 탄식을 내뱉었다.
 16일 밀양·청도 주민들이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안 70m 높이 굴뚝에서 농성 중인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실장이 눈에 들어오자 탄식을 내뱉었다.
ⓒ 손지은

관련사진보기


코오롱 정리해고 분쇄투쟁위원회 농성천막에서 훌쩍이던 주민들은 경기 평택시 쌍용자동차 굴뚝 앞에서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70m 굴뚝 위에 있는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실장이 눈에 들어오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두 노동자가 굴뚝 위에 오른 이유는 지난달 13일 대법원 판결 때문이다. 그날 대법원은 쌍용차 해고는 무효라는 원심을 뒤집었다. 이때도 밀양 주민들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법원 앞에서 함께 있었다. 굴뚝 위에서 전화로 연결된 김 사무국장은 "대법원 선고를 받고 너무 억울해서 울음도 안 나왔는데, 옆에서 같이 울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마음을 전했다.

쓰고 있던 모자가 날아갈 정도로 칼바람이 매서웠지만 주민들의 발걸음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할매들은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고 "(굴뚝에서 나오는) 가스 마시지 마세요", "힘내이소,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다. 굴뚝을 향해 두 팔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직접 챙겨온 '청도 감말랭이'와 대추, 고추 등을 전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두 울어버린 안산 합동분향소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밀양·청도 주민 30여 명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과 손을 맞잡고 서로를 위로했다.
▲ 세월호 유가족과 손잡은 밀양 주민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밀양·청도 주민 30여 명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과 손을 맞잡고 서로를 위로했다.
ⓒ 손지은

관련사진보기


주민 모두가 울어버린 건 경기도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에서였다. 유가족 간담회 등으로 이미 몇 차례 유가족과 만난 적이 있었지만 분향소에 온 건 처음이었다. 주민들은 강당 한 켠을 빼곡히 채운 영정 사진 앞에서 모두 고개를 숙였다.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를 기다리는 아이들 사진을 봤을 때는 "구명조끼까지 다 입었는데"라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분향을 마치고 유가족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유가족과 주민들은 서로 껴안으며 위로했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평생을 우에 사노, 이런 세상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청도 할매' 이억조(75)씨의 말에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할배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이날 주민들은 세월호 유가족에게 '저항과 연대의 증표'를 전달했다. 증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지금 겪는 이 고난이 나와 너, 우리의 존엄을 함께 지키기 위한 것임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연대와 저항의 약속을, 그렇게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만들어가겠다는 다짐을 함께 합니다. 앞으로도 잡은 손 놓지 않겠습니다."

유가족을 대표해 증표를 건네받은 고 김동혁군의 어머니 김성실(50)씨는 "지금까지 들어본 그 어떤 약속보다 값지다"고 화답했다. 다른 유가족들은 손바느질로 만든 노란 리본을 주민들의 가슴에 달아주었다. 주민들은 시민들의 후원으로 마련한 빨간 목도리로 보답했다.

주민들은 간담회를 마친 후에도 한참동안 유가족의 손을 놓지 못했다. 주민들은 관광버스 앞까지 마중나온 유가족과 일일이 인사한 뒤 씨앤앰 고공 농성 노동자와 용산참사 유가족 등이 기다리는 서울 광화문 광장으로 서둘러 떠났다.


태그:#밀양, #청도, #송전탑, #농성장, #순례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