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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8일 <세계일보>의 '정윤회 국정개입' 보도 이후 논란이 뜨겁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정윤회씨와 동생 지만씨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가 이뤄졌지만, 사건의 얼개가 명확히 잡히지 않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말은 많지만 실체가 잡히지 않고 있는' 이 사건의 이면을 정리해봤다. 사건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이번 정리는 어디까지나 중간점검이라 할 수 있다.

① 문건 파동은 왜 갑자기 터져 나왔나?

정윤회씨를 둘러싼 의혹 제기가 법정까지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씨가 '박지만 미행 의혹'(3월 23일), '정윤회가 승마협회 좌지우지한다'(4월 9일), '정윤회씨 딸,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특혜 논란'(6월 20일)을 연속 보도한 <시사저널>을 명예훼손 고소한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진 때는 7월 24일이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사건은 시사주간지와 '현직 대통령의 옛 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의 대결 구도였다. 압수수색설로 한때 시끄러웠던 <세계일보>의 기사들도 처음부터 주목받은 것은 아니었다.

지난 11월 25일 "정윤회씨의 공직자 인사개입 의혹을 감찰했던 청와대 실무자(박관천)가 사실상 좌천성 인사조치를 당한 데 이어 감찰을 지시했던 공직기강비서관(조응천)도 두 달 뒤 사표를 내고 나간 것으로 확인됐다"라는 신문의 첫 보도만 해도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세계일보> 11월 28일 1면 보도 갈무리
 <세계일보> 11월 28일 1면 보도 갈무리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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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흘 뒤 <세계일보>가 '청와대 내부 문건'을 근거로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설은 정씨가 자신의 비선라인을 활용해 퍼트린 루머였다"라면서 정씨의 국정개입설을 기정사실화하자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특히 '문고리 권력' 3인방이 포함된 청와대 안팎 인사 10명의 존재를 언급하며 이들을 중국 후한 말 환관에 빗댄 '십상시'(十常侍)라고 지칭한 보고서의 표현을 소개한 것이 당사자들을 크게 자극했다. 청와대는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오늘 안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등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시각이 11월 28일 오전 9시 30분께였다.

② 문건 파동의 큰 줄기는 박지만과 정윤회의 갈등?

검찰 조사를 받기위해 출석하는 박근혜 대통령 친동생 박지만 EG회장(15일)과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 정윤회씨(10일).
▲ 검찰 출석하는 박지만-정윤회 검찰 조사를 받기위해 출석하는 박근혜 대통령 친동생 박지만 EG회장(15일)과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 정윤회씨(10일).
ⓒ 권우성/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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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과 정씨가 불편한 관계, 더 정확히는 박 회장이 정씨를 불편하게 보는 것은 분명하다.

박 회장은 1990년 육영재단 운영권을 둘러싼 큰누나(박근혜 대통령)와 작은누나(박근영)의 갈등 국면에서 후자의 편을 들었다. 그는 그해 12월 <우먼센스>와의 인터뷰에서 "큰누나(박근혜)와 최태민 목사(당시 육영재단 고문, 1994년 5월 1일 사망)와의 관계를 그냥 두는 것은 큰누나를 욕먹게 하고 부모님께도 누를 끼치게 되는 것 같아 떼어놓으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알려진 대로 지난 5월 12일 가정법원에서 이혼이 확정되기 전까지 정씨는 최 목사의 사위였다.

박-정 갈등설은 "박지만 '정윤회가 날 미행했다'"라는 제목의  <시사저널> 기사(3월 23일치)로 표면화됐는데, 미행 미스터리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정윤회 동향' 문건의 존재가 공개되면서 비선 간의 암투설로 비화됐다.

1993년 크리스마스이브 새벽, 필로폰 투여 혐의로 두 번째 구속된 박 회장에 대해 이듬해 2월 3일 법원에 치료감호를 신청한 사람은 당시 서울지검 남부지청 특수부 검사였던 조응천 전 비서관이었다. 박 회장은 정확히 체포 1년 만에 공주치료감호소에서 풀려났다.

1989년 3월10일 경향신문 1면에 실린 박지만 회장의 모습. 필로폰 복용 혐의에 대해 한 차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그는 2년 뒤에는 재범으로 수원교도소에 갇히는 몸이 된다.
 1989년 3월10일 경향신문 1면에 실린 박지만 회장의 모습. 필로폰 복용 혐의에 대해 한 차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그는 2년 뒤에는 재범으로 수원교도소에 갇히는 몸이 된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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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의원실에서 정씨와 한솥밥을 먹었던 '문고리 3인방' 등 비서진들과, 박 회장과 가까운 조 전 비서관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서 "정씨가 끝까지 거짓말을 하면 그때는 내가 나설 것"이라는 박지만 회장의 발언이 보도되기도 했다(12월 5일 <중앙일보>).

그러나 박 회장은 지난 15일 검찰 조사에서 미행자의 자술서 등 세간의 의혹을 풀어줄 근거를 내놓지 않은 상황. 그럼에도 '누군가 자신을 감시한다'는 박 회장의 트라우마가 오래 전부터 형성된 점도 이번 사건에서 간과할 수 없다. 다음은 1992년 3월 출간된 '청와대 비서실'(김진 씀)에서 박 회장이 직접 밝힌 이야기다. 조금 길지만 인용한다.

"지금 생각하면 쑥스럽지만…. 그 즈음(1977년 육사입학부터 79년 10·26사이 – 필자 주)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하던 한 여직원과 친해졌어요. 서로 순수한 마음으로 가끔 시내에서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고…. 그 나이에 흔히 있는 평범한 사귐이었는데 주변에서 알게 되었지요. 아버님(박정희 대통령)께서 저를 불러 '아직 이른 나이니 앞으로는 만나지 말아라'고 하셨어요.

그 애는 결국 나 때문에 청와대 근무를 그만두었습니다. 만날 수는 없었지만 대신 나는 그 애와 전화로 이런저런 대화를 했어요. '아버님은 나보고 만나지 말라시지만 나는 너와 계속 친구로 남고 싶다'는 말도 하고요. 그런데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이 그 통화내용을 몽땅 도청하고 녹음해 아버님 앞에서 녹음기를 틀었어요. 아버님께서는 녹음내용을 들으면서 스스로 부끄러워하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당시 차 실장은 충성하느라 그랬겠지만, 나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어요."

③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 국정개입의 실체 있나?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왼쪽부터)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왼쪽부터)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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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는 이해 당사자들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이어서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검찰은 일단 "비선의 국정개입으로 볼 수 있는 뚜렷한 정황이 없다"는 잠정 결론으로 나아가고 있다.

논란의 단초가 되는 이른바 '십상시 모임'에 대해 ① '정윤회 문건'의 제보자로 알려진 박동열 전 대전국세청장이 정보의 근거를 명확히 대지 못하고 ② 정씨와 청와대 비서진들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한 결과 '십상시 모임'은 없었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셈이다. 모임 자체가 없었는데 정씨의 국정개입이 가능했겠느냐는 반론에 힘이 실리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청와대에서 유출된 '정윤회 문건'에 국한된 얘기다.

특히 정씨 딸의 아시안게임 승마대표 선발 논란은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조선일보>에 밝힌(기사 보기) 문체부 국장·과장의 전격 경질(2013년 10월 2일)과 연결된다.

"정씨의 측근으로 알려진 박아무개씨가 대한승마협회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라는 잡음이 들려오자 문체부의 두 간부가 국가대표 선발전을 관장하는 승마협회 내부 비리를 조사하고 있었는데, 박 대통령이 같은 해 8월 21일 유 장관을 집무실로 불러 둘의 경질을 직접 지시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유 전 장관은 김종 문체부 차관과 이재만 총무비서관의 '부당한' 인사 개입까지 거론했다.

청와대도 박 대통령의 지시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해당 간부들이 체육계 적폐 해소에 소극적이고 안이하게 대처한다는 민정수석실의 보고에 따른 조치지, 비선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 제기한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의 '청와대 파견 경찰인사 개입 의혹'도 검찰 수사에서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는 부분이다.

'문고리 3인방' 중 한명인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14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관련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 '문고리 3인방' 이재만 비서관 검찰 조사 '문고리 3인방' 중 한명인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14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관련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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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문고리 3인방' 중 검찰 조사를 받은 사람은 이재만 비서관(12월 14일) 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7일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정씨와 문고리 3인방, 김종 차관 등 12명에 대한 수사를 별도로 의뢰한 것도 다방면으로 뻗어나간 의혹들을 규명해야 할 검찰 수사가 '문건 유출' 경로를 확인하는 선에서 유야무야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문건 유출은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1일 수석비서관 회의), "찌라시 얘기에 나라가 흔들린다"(7일 새누리당 지도부 오찬 회동)는 식으로 일찌감치 사건의 성격 규정을 해버리면서 검찰의 수사방향이 너무 빨리 정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해서라도 '정윤회 문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63.5%, 한국사회여론연구소 9~10일), "검찰 수사를 신뢰하지 않는다"(63.7%. 한길리서치 12~13일 조사)는 여론조사 수치는 검찰 수사가 이번 논란의 종착역이 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태그:#박지만, #정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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