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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 해고자 최일배씨.
 코오롱 해고자 최일배씨.
ⓒ 점좀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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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단식 36일차 최일배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아래 코오롱 정투위) 위원장의 최고 혈압은 107mmHg이다. 어제는 97mmHg까지 내려갔다. 며칠 동안 울렁거리는 속은 진정이 되지 않는다. 힘이 빠지고 냄새에 민감해져서 사람들이 곁에 오기만 해도 힘이 든다.

매일 검진하는 한의사는 초긴장 상태다. 곡기 끊고 40일 가까이 버틴, 그의 위와 장기는 비상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에게 힘드냐고, 언제까지 할 것이냐고 묻지 않았다. 가장 힘든 질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3650일, 지난 1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는 개울을 건너는 징검다리를 놓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실력이 돌다리를 모두 놓을 수 없다면 인정해야지. 우리가 완성해야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우리가 딱 열 개만 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또 놓을 수 있으니까…. 그런 마음이에요."

해고 이후 10년까지 따지면 입사 연차가 23년인 그. 최일배씨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면 후배에게 좋은 선배로 대접받았을 선한 눈매를 가졌다. 그를 만나고 천막 농성장을 나서던 날, 살을 에는 한파가 조금 꺾였다.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기념일로 이름 붙여진 날이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입사하고 8년 동안 노동조합 근처도 안 갔던 사람

코오롱 해고자 최일배씨가 머물고 있는 천막.
 코오롱 해고자 최일배씨가 머물고 있는 천막.
ⓒ 점좀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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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에 책이 나옵니다. <아빠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라는 제목이에요. 코오롱 투쟁을 알리고 싶은 욕심에 딱딱하지 않는 에피소드들로 책을 썼어요. 일반 시민에게 노동자의 투쟁에 대해 알리려고 쉽게 썼어요. 그런데 쉽지 않더라고요. 쓰다 보니 자서전 같기도 하고, 정투위 책이 아닌 것 같고…. 포기했다가 9월에 다시 욕심을 내서 썼죠. 책이 나오면 사람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무리했어요. 읽어 본 사람들은 재밌다고 합니다. (웃음)

내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모두 썼어요. 유니온숍이 아니었으면 조합원으로 가입도 안 했을 것 같은, 그런 사람 이야기죠.

저는 영덕 변곡초등학교를 나왔어요. 촌에서 살았어요. 중학교 1학년 마치고, 2학년 때에 대구로 전학 와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죠. 공부를 안 해서 대학에 떨어지고…. 서비스업을 주로 하다가 군대 갔다 와서 25살에 코오롱에 입사했어요. 사실 서비업이라고 하기도 그런 게, 성인 오락실에서 일했어요. 옆집 사람이 제주도에서 성인 오락실을 오픈하는데 가 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더라고요. 제주도라는 말에 혹했죠. 제주에서 1년, 부산에서 1년 일했어요. 그런데 못하겠더라고요.

돈 버는 재미는 있는데, 일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면 후회가 밀려와요. 돈 있는 사람들이 와서 잃는 건 괜찮았는데,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사람들도 한 방을 하기 위해 와요. 부인이 와서 난리 치는 걸 보면 내가 괜히 그 사람들 돈을 빼먹은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어요.

먼지 묻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죠. 목공소에 들어가서 기술을 배웠어요. 6개월 정도 일했는데 모친이 전화를 하셨어요. 이종사촌 형님이 코오롱에 다니는데, 취직하라는 거예요. 지금 배우는 일이 기술이니까 계속 배우고 싶다고 말했죠. 그런데 모친이 자기 체면도 있으니, 번듯한 기업에 취업하라고 하더라고요. 거절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바로 원서를 냈지요. 1992년에 코오롱에 입사했습니다. 그렇게 입사해서 노동조합 근처에도 안 갔어요.

1997년인지, 1998년인지 노동쟁의 찬반투표가 있었어요. 모두들 투표를 안 했어요. 결국, 투표가 무산됐지요. 우리 반장이 총회 투표는 어차피 안 될 것이니, 네가 날 좀 도와 달라고 하는데 그 목소리가 더 호소력 있게 들렸어요.

그러다 1999년 11월 노동조합 7대 임원 선거에서 부위원장으로 당선되었어요. 갑작스런 일이었지요. 그때 우리 위원장이 바른 사람이었어요. "노동조합 간부는 조합원들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이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대로 배웠죠. 목소리 크고 싸움만 잘하는 사람이 간부 하는 줄 알았는데, 그때 제가 많이 변했습니다.

지난 10년 안 해 본 투쟁이 없습니다

코오롱 본사 앞.
 코오롱 본사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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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안 해 본 투쟁이 없었어요. 고공농성, 노숙, 단식, 로비점거, 불매운동, 회장 집 점거, 유서 쓰고 자해하고…. 2번 구속되었죠. 첫 번째 구속은 회장 집에 들어간 것이었어요. 그때는 절박했어요. 구미공장 송전탑에 동지 세 명이 올라갔죠. 양 사방 1m도 안 되는 널빤지 위에서 생활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지나면 반응이 올 것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반응이 없었어요.

내려 오게 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어서 조급했어요. 로비 점거는 사흘 만에 쫓겨나고, 위에 올라간 동지들이 힘들어 하는데…. 부담도 엄청 컸어요. 방법은 회장을 만나서 담판 짓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회장 집에 들어가는 것이었어요. '어쨌든 끝내야 한다. 종지부를 지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다른 생각은 안 났어요.

새벽 5시라는 것, 현관 유리를 깨고 들어가는 것 등등. 어쨌든 개인이 가족들과 생활하는 곳인데…. 그런데 그때는 그런 상황이 보이지도 않았어요. 우리는 위해하려고 들어간 게 아니니까, 회장과 대화를 하려는 순순한 뜻에서 간 것이니까. 남의 가정집에 들어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죠. 그 사건으로 10명이 연행되고, 저랑 부위원장이 구속되었죠.

투쟁하면서 아쉬운 건, 2005년 7월에 해고자로 노조 위원장이 되었던 때였어요. 당선되리라고는 0.1%도 생각하지 못 했죠. 말 그대로 선거 투쟁이었어요. 그런 목적으로 출마했기 때문에 당선되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계획이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못했어요.

해고자 출신 노조위원장이라는 시비에 말려서 회사 정문에서 취임식을 할 정도였죠. 그때 준비하고 무언가를 했어야하는데…. 아쉬움이 남아요. 두 번째는 2006년 창립 50주년 행사였어요. 정말, 총력을 기울이는 투쟁이었죠. 정문 울타리를 넘어서 본관이라도 점거했어야 하는데…. 아직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78명이 해고 되었어요. 50명이 투쟁 결의를 했죠. 희망과 전망이 보이면 결집력 높고, 결과물이 없으면 이탈자가 생겼어요. 정리해고 판결 나왔을 때, 패소했으니까 많이 떨어져 나갔죠.

10년 지난 지금은 12명이 남았습니다. 각자 생계를 이어가고 있고, 투쟁만 하는 사람은 김혜란 동지하고 저, 그리고 민주노총 이상진 부위원장이 있어요. 장기투쟁사업장이 제일 힘든 게 생계잖아요. 한두 해는 당연히 대출하고, 보험 깨고, 아이들 학원 줄이면서 버티는데 오래되면 힘들죠. 그래도 우리는 장기투쟁사업장을 지원하는 뚝딱이(장기투쟁사업장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기획사)의 혜택을 봤어요. 생계 자금을 최소로 지원해 주었어요.

늘 미안한 사람, 아내 그리고 잘 커준 아이들

코오롱 해고자 최일배씨.
 코오롱 해고자 최일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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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만난 건 나이트클럽이었어요. (웃음) 당시 아내는 친구 생일 때문에 왔고, 나는 회식을 갔다가 만났죠. 나중에 알고 보니 회사 동료더라고요. 1992년에 만나서 1994년 11월 13일에 결혼했죠. 그날은 전태일 열사 추모일에요. 지금은 고등학생 딸하고, 중학교 3학년 아들이 있어요. 아내는 첫째를 임신하면서 바로 퇴사했어요. 당시에는 모두 그런 분위기였어요. 결혼하면 여성 동지가 퇴사를 했죠. 임신하면 더욱 더 그랬죠. 아내도 일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는데, 아이들을 키우면 좋겠다고 해서 내가 말렸죠. 그런데 해고되니 별 수 없이 아내가 생계에 뛰어들어야 했어요.

그 사람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요. 아내 덕분에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빠입니다. 우리 딸은 아빠같은 사람하고 결혼할 거라고 해요. 처음에 구속되었을 때,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이라서 충격을 받을까봐 말을 안 했어요. 그러다 석 달 만에 편지를 썼죠. "여기는 나쁜 짓하고 죄 지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그런데 아빠처럼 죄 짓지 않은 사람도 온다. 그런 사람을 양심수라고 부른다"라고 말이죠.

다행히 딸이 이해해줬어요. 그래서 이번 책 이름이 <나쁜 아빠가 아니다>이기도 하고요. 한편으로 경제적인 책임을 못 진 나쁜 아빠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쳤기에 나쁜 아빠가 아니라는 뜻도 되고요. 제 자신에게 변명하는 제목일지 모르지만요.

우리가 옳다는 신념을 버린 적 없습니다

저에게는 신념이 있어요.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요. 누가 뭐라 하던, 결과물을 떠나서 코오롱이 재계 순위 23위인데 경영상 이유로 78명 해고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믿음이 있어요. 더 큰 것은 여기까지 오는데 우리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 그런 것들이 우리의 신념을 확인하는 순간이라고 할까요? 그걸 증명해주는 10년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합니다. 그때 그런 이야기를 자주합니다. '개울'이 있잖아요? 그걸 건너려면 돌다리를 놓아야 해요. 우리는 그런 돌다리를 놓는 거죠. 그런데 우리 실력으로 돌다리를 모두 못 놓을 수 있지요. 그렇다면 인정해야죠. 우리가 완성해야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우리가 딱 열 개만 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또 놓을 수 있으니까…. 그런 마음이에요.

아직, 못 해 본 것이 있어요. 몇 천 명 모아서 하는 투쟁이요. 2000명 이상 모이는 집회를 해 봤나? 지금 생각하니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래서 오는 13일이 기대가 돼요. 10년  만에 처음으로 노동자들이 많이 모이는 날이니까요. 그날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설레기도 하고….

아쉬운 게, 또 한 가지 있어요. 바로 아내죠. 그 사람이 나한테 '당신한테 무관심한 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다'고 하거든요. 정말로 이해해요. 그런데 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요. 그 사람한테는 10점도 아니고 0점이지만, 0점. 10년 동안 저는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거든요. 많은 사람들의 격려를 받아서 늘 고마웠거든요. 그래서 아내에게도 인정받으면 더 원할 게 없을 것 같아요.

옷을 만들려면 실이 필요잖아요? 내가 있던 곳은 옷감을 만들기 위한 최초의 실을 만드는 공정이었어요. 복직하면 식당에서 줄을 서서 동료들과 밥을 먹고 싶어요. 거기가 회사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이거든요. 사람들을 만나서 밥을 먹으면서 얘기하고 싶어요.

코오롱을 응원하는 메시지.
 코오롱을 응원하는 메시지.
ⓒ 점좀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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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조돈문 교수가 저자로 참여한 <위기의 삼성, 한국 사회의 선택>의 북 콘서트 현장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박성주씨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에게 노조가 생긴 후 점심시간, 기본급 그리고 업무 차량이 생겼어요. 그런데 그런 건 다 집어 치워도 돼요. 우리에게는 인격이 없었어요.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없었어요. 이제는 우리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삼성 관리자들에게 무시당하고 쌍욕을 먹으면 같이 항의할 수 있는 수많은 동지가 있어요.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었는데, 이제 희망이 생겼어요."

정리해고가 쉬워도 너무 쉬운 나라, 취업 준비생이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업하고 싶다'고 말을 하는 나라, 고용주들의 '갑'질이 점입가경인 나라, 고용불안으로 노동자들의 권리가 사라지는 나라, 노동이 모욕으로 억눌려도 받아먹어야 할 임금 때문에 치를 떨며 살아야 하는 나라. 그래서 최일배씨와 박성주씨가 하는 일은 작지 않다.

종적 감춘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최일배씨와 동료들이 살아온 10년은 힘겨운 세월이었어나 한편으로 존엄한 세월이었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내가 확인한 것은 알 수 없던 10년의 이유였다. 그래서 최일배씨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삐그덕 거리면서라도 살 만한 사회로 가기 위한 첫 출발이다. 그를 더 이상 굶기고 싶지 않다. 이게 사는 건지, 매일 한탄하면서 살고 싶지도 않다. 오는 13일, 과천 코오롱 앞에서 우리 모두의 품위를 보여주고 싶다, 나는.

*<10년의 투쟁, 3650인의 화답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 약하기 때문에 그들을 지키고 싶습니다.

코오롱 연대의 날 포스터.
 코오롱 연대의 날 포스터.
ⓒ 코오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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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등산복 업체 코오롱, 10년째 왜 이러나)

덧붙이는 글 | 박진 기자는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태그:#최일배, #코오롱, #코오롱정리해고, #단식, #최일배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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