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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진민호씨와 어머니 박미자씨가 사이좋게 폼을 잡았다. 이 곳은 어머니가 30년동안 노점상을 했고, 대를 이어 아들이 5년 동안 노점상을 한 곳이다.
▲ 모자지간 아들 진민호씨와 어머니 박미자씨가 사이좋게 폼을 잡았다. 이 곳은 어머니가 30년동안 노점상을 했고, 대를 이어 아들이 5년 동안 노점상을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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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장통에 가면 점포이름 대신 '총각네'라 불리는 과일가게가 있다. 왜? 주인인 진민호(34)씨가 총각이니까. 대체로 재래시장 과일가게는 나이 드신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하기 일쑤니까 유별나다. 

여기에 가면 또 유별난 게 있다. 여기가 노점상인지 점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분명 건물이 아니고, 시장 길가에 있으며, 포장마차처럼 둘러싸여 있으니 노점상이 분명한 듯하다.

하지만, 노점상이라고 하기엔 석연찮다. 그 안엔 카드결제기, 텔레비전, 냉장고 등이 있고, 각종 전등 시설이 되어 있다. 비록 천막으로 둘러쳤지만 가게 안은 실내가 분명하다. 가게 이름도 있고, 조그만 간판도 있다.

민호씨는 "우리는 안성시청에 신고하고, 사업자등록증도 있는 곳"이라며 미소 짓는다. 비록 안성시청에서 설치한 공용카메라이긴 하지만, CCTV도 여기를 비춘다. 그 옛날 노점상이나 포장마차는 잠시 잊어야 할 듯하다.

"덕분에 과일 장사를 마치고, 포장마차 안에 과일을 덮어두고 가도 도둑이 없다"는 민호씨는 "저녁 늦게 일하는 분들과 새벽 일찍 일하는 분들도 여기에 관심 가져 주시기에 가능하다"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심을 얻어야 도둑도 들지 않는다"고 귀띔해줬다.

요즘 이 과일 노점상엔 석류도 있다. 이 석류 또한 민호씨가 직접 맛보고 사온 석류다.
▲ 석류 요즘 이 과일 노점상엔 석류도 있다. 이 석류 또한 민호씨가 직접 맛보고 사온 석류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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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노점상, 아들이 물려받은 사연

민호씨는 과일을 떼러 가는 날이면 오전 2시 50분에 일어난다. 서울 가락시장(도매청과시장)으로 출동한다. 물건을 싣고 안성으로 오면 8시. 그때부터 과일을 정리하면 반나절은 후딱 지나간다.

끼니를 제때 먹는 법이 없다. 낮 12시를 전후해서 누군가 교대하러 온다. 그녀가 바로 어머니 박미자(55)씨다. 어머니가 교대를 해주면 그제야 민호씨가 '아점(아침과 점심)'을 먹는다. 일을 하다보면 끼니를 굶기가 일쑤다.

"5년 전 처음 시작할 땐, 무척 힘들었다"는 민호씨.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원래 장사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부모님이 30년 전, 이 자리에서 과일노점상을 해왔을 뿐이다. 하지만 5년 전 당시, 가정의 생활고와 부채 때문에 민호씨가 결단을 내렸다. 혼자 장사하는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학업(대학원)을 포기하고, 과일장사에 나섰다. 과일장사라고는 어렸을 적, 부모님의 어깨너머로 본 게 다였다.

밥 굶기를 밥 먹는 듯하고, 잠 안 자기를 잠자 듯했다. 1년 365일 정해놓고 쉬는 날도 없었다. 명절은 아시다시피 더 바빠 못 쉬었다. 처음엔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일만 해야 하는 현실이 그에겐 버거웠다.

감들이 보기 좋게 앉아서 자신을 사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 감 감들이 보기 좋게 앉아서 자신을 사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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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사를 시작하고 많이 달라진 점은 전처럼 돈을 함부로 못 쓴다는 것이다. 무얼 사려고 하면, 과일 하나 값이 얼마라는 게 머리에 떠오른다"며 웃는 민호씨는 이제 알뜰한 살림꾼이 다 되었다.

월요일이 웬 성수기? 이런 재밌는 사연이

여기도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다. "성수기는 금토일월"이라는 어머니 미자씨. 아니 그런데 웬 월요일? 월요일이 성수기인 사연이 재밌다.

농촌도시 안성이다 보니 어르신들이 많다. 이 어르신들이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은행문도, 병원문도 열지 않으니 집에서 쉬었다가 월요일에 대거 장터가 있는 시내로 모여든다. 그 바람에 과일도 사가는 게다.

이 가게엔 초등학생부터 구순 노인까지 다 애용한다. 초등학생은 엄마 심부름으로 오고, 구순 노인은 손자 사주려고 온다. 주부는 물론이고, 중고생과 대학생도 온다. 안성의 모든 세대가 이 가게를 통해 과일을 맛보는 셈이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어머니 미자씨의 '눈물 사연'이 한강을 이룬다. "30년 전부터 장사를 이 자리에서 시작했는데 노점상 단속이 심해 엎어진 과일을 보며 혼자서 운 적도 많았다"며 지난 시절을 떠올리는 미자씨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진다.

하지만 "지금은 든든하고 행복하다"는 미자씨. 왜? 누구 때문에. 그렇다. 바로 아들 민호씨 때문이다. 비록 남편은 없지만, 아들 민호씨 덕분에 세 식구(엄마 미자씨와 아들과 딸)는 요즘 별 일 아닌 것에도 웃게 된다고 했다.

사과도 먹음직스럽다. 직접 먹어보고, 어머니 미자씨의 30년 노하우로 골라온 사과이니 그렇지 않겠는가.
▲ 사과 사과도 먹음직스럽다. 직접 먹어보고, 어머니 미자씨의 30년 노하우로 골라온 사과이니 그렇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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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보다 재래시장 과일이 더 맛있는 이유

어머니 미자씨는 "직접 맛 볼 수 있다. 주인이 맛보고 사온 거라 분명히 맛있다. 때론 가격을 깎아도 준다. 때론 덤으로도 준다. 혼자 과일을 고르지 않고, 주인과 함께 좋은 과일을 고를 수 있다"며 대형마트보다 재래시장 과일이 더 좋은 이유 5가지를 일러주었다.

아들 민호씨에겐 야무진 꿈이 생겼다. 안성에서 최초로 '창고형 청과 도매센터'를 해보는 거다. 장사 시작 전부터 꿈꾸어 왔지만, 장사를 하면서 꿈이 구체화되고, 자신감도 생긴 거다.

"나의 전략은 입소문이다. 바로 맛으로 승부하는 것. 그래서 과일은 반드시 내가 직접 먹어보고 도매로 구입한다"는 민호씨를 보면서 단순한 장사꾼이 아닌 경영가의 포스를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12월 4일, 진민호씨가 경영하는 노점상 점포에서 이루어졌다.



태그:#노점상, #과일, #재래시장, #총각사장,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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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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