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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N 드라마 <미생>을 보면 슬픈 장면이 하나도 없는데, 왠지 마음이 먹먹하고 슬프고 눈물이 나온다. 아무리 노력해도 올라 갈 수 없는 나무인 '장그레'의 비정규직 처지가 가슴이 아프고, 똑똑하고 예쁜 '안영이'가 상사들에게 받는 대우가 몹시 속상하고 부당해도 반항 한 번 못하고 꾹꾹 누르는 모습이 그러하다.

신입 사원들은 이리저리 치이지만 안영이, 장그레, 장백기, 한석률에게 한 가지 부러운 점이 있다. 이들 중 누구 하나 속상할 때, 회사 옥상으로 쪼르르 나와 열린 공간에서 눈이라도 마주치면서 동병상련을 풀 때가 그렇다.

어려운 회사 생활이라도 동기들의 끈끈한 정과 그들이 지닌 인간다움이 있기에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교사들은 사실 그렇게 풀 때가 없다.

2교시 끝나고 있던 티타임(커피를 마시면서 누가 가져온 빵이나 과자를 먹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없어진 지도 꽤 되었다. 예전엔 컴퓨가가 발달하지도 않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없어서 쉬는 시간에 다들 모여서 그날 있을 일이나 업무 협의를 주로 동학년 별로 했던 것이다. 업무 이야기를 하다가 반 아이들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러다가 속상하거나 잘 모르는 일이 있으면 서슴지 않고 물어보고 옆 반 선생님 지도 방식에 충고도 하고 또 스트레스도 풀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냥 아이들하고 쉬는 시간도 같이 보내고, 점심시간 남은 시간도 같이 있고, 아이들 하교 후에는 공문을 하거나 수업 준비를 한다. 공식적으로 모이는 시간은 회의가 있는 날이나 긴급한 전달 사항이 있을 때다. 우리 선생님들은 그렇게 수다를 잃어버리고 업무에만 충실한 사람들이 되어갔다.

답답했다. 각 방에 들어가서 혼자 최선을 다하지만, 이들이 같이 만나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훨씬 더 재미있고 일할 맛이 나지 않을까? 아니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뭘 같이 배우면 어떨까?

그러던 중, 옆 반 1학년 선생님이 말을 꺼냈다.

"나, 리코더 좀 하는데......"

귀가 번쩍 열렸다.

"선생님, 리코더 같이 하면 어때요?"
"응, 재능 기부는 할 수 있어. 사람들만 모아 와."

알토 리코더를 배우는 늦깍이 학생들.
 알토 리코더를 배우는 늦깍이 학생들.
ⓒ 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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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선생님의 열띤 리코더 강의.
 1학년 선생님의 열띤 리코더 강의.
ⓒ 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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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지난 4월에 결성해서 12월까지 비록 작은 연주회 한 번 해 보지 못했지만, 우리들은 꾸준히도 모였다. 나, 1학년 선생님, 5학년 선생님, 6학년 선생님, 돌봄 선생님, 방과 후 코디네이터 선생님, 유치원 방과 후 선생님. 이렇게 7명이 매주 수요일 학생들을 모두 보내고 4시부터 5시까지 1학년 교실에 모여서 알토 리코더를 배웠다.

난 <조진희의 알토 리코더>를 복사하고 나누어 주는 악장을 맡았고, 1학년 선생님은 재능기부 강사가 되어 일을 추진했다. 전교조에서 나오는 교사 동아리 지원비로 가끔 맛있는 칡국수와 곤드레 밥도 먹었다.

"난 박자 개념이 너무 없어. 한 박자, 두 박자 잘 지켜지지가 않아."
"난 호흡이 안 되네. 아이고, 숨이 차요."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던 가곡인데, 이렇게 리코더 곡으로도 나와 있네."

참, 즐거워들 하셨다. 처음 배우는 알토 리코더라 운지법도 다르고, 손가락 간격도 커서 조금 힘들어 했지만, 다들 신 나는 표정들이다.

"항상 뭔가를 배우고 싶었어요. 이렇게 시켜주니 고맙네!"

돌봄 선생님은 안 되는 리코더이지만, 핸드백엔 항상 리코더를 넣어 가지고 다니셨다. 난 수요일이 은근히 기대되는 날이었다.

"우리, 리코더 팀 회식해요."
"좋아. 먹어야 힘도 나고 리코더도 세게 부르지."

수요일마다 컴퓨터에서 해방이 되어서 좋았고, 서로 얼굴 쳐다보면서 악보보면서 사람 사는 맛을 느껴서 좋았다. 그렇다. 좀 만나서 놀자. 배우기도 하고 일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좀 놀기도 하자.

리코더를 통한 우리의 만남은 바쁠 때는 빠지고, 하기 싫을 때는 넘어가고 그런 적도 4~5번 정도 있었지만, 우리들을 음악으로 묶어주고 기다리는 수요일을 만들어준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리코더 산 거 아까우니까, 내년에 또 하자."
"좋아, 좋아. 천천히 가면 어젠가는 끝에 가 있겠지."

이렇게 우리는 리코더를 통해 여유도 배웠다.


태그:#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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