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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형마트 매장 입구에 걸린 문구
 어느 대형마트 매장 입구에 걸린 문구
ⓒ 송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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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에 들렀다가 계산대에서 낯익은 아주머니를 만났더란다. 십여 년 전에 그가 살던 아파트 상가에서 슈퍼를 운영하던 분이었다고 했다. 바코드를 열심히 찍고 있는 아주머니의 얼굴에 민망한 기색이 역력하더란다. 민망하기는 그도 마찬가지였을 터…. 그 분이 슈퍼 주인에서 대형마트 계산대의 '비정규직 아주머니'로 '변신'하기까지 과정은, 안 봐도 비디오다.

대형마트의 횡포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옛말에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고 했던가. 그런 횡포도 다 확실한 '누울 자리'가 있어서다. 시쳇말로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그 핵심은 쇼핑의 편리함과 가격 경쟁력일 것이다. 

맞다. 대형마트는 쇼핑하기에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물건 값이 동네 슈퍼나 편의점보다 훨씬 싸다. 쇼핑 환경의 쾌적함이야 재래시장에 비하겠는가. 주차도 편리하다. 비행기나 탱크 말고는 없는 게 없어서 쇼핑을 한방에 끝낼 수 있다. 심지어는 동서양식을 망라한 메뉴에서 입맛대로 골라 식사까지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 중 으뜸은 역시 가격이 싸다는 점일 것이다.

실제로 싸다. 어디 그뿐인가. 심심치 않게 증정품이니 사은품이니 하는 것들까지 옆구리에 붙어 나온다. 이름하여 '1+1'이다. 할인행사도 수시로 열린다. 유통기간이 짧은 식품을 중심으로 대폭 할인 행사까지 벌인다.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아낌없이 공급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기업의 사회적 공공성에 입각해서 영업이익을 줄이는 대신 그 이익의 일부를 소비자들에게 환원하기 위해서란다. 과연 그럴까. 

대형마트 제품 가격이 동네 슈퍼나 편의점보다 싼 이유는 간단하다. 싸게 납품 받아서 싸게 파는 것이다. 제품을 납품하는 생산자나 대리점은 20% 마진을 본다. 대형마트 또한 20%의 이익을 남긴다고 한다. 생산자나 대리점의 마진 20% 중 10%를 후려치면 대형마트의 마진은 얼마겠는가. 이걸 계산하는 건 초등학교 저학년 애들도 식은 죽 먹기다.

'1+1'의 '1'도 생산자나 대리점에 떠넘긴다. 적자를 호소하면 납품중단에다 제품회수로 윽박지르기 일쑤다. 그뿐인가. 생산자나 대리점은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이 끝나면 밤을 새워가며 제품 진열까지 해주어야 한다. 울며 겨자 먹기다. 그런 횡포에 생산자나 대리점은 견뎌낼 재간이 없다. 재간은 곰이 무릎이 까지도록 넘고 돈은 되놈이 챙기는 격이다.

지방의 대형마트에서 쓸어 담은 돈은 서울로 간다. 지역에 돈이 남아나지 않는다.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가격경쟁에서 밀린 중소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생산자나 대리점도 대형마트가 아니면 물건을 납품할 곳이 없다. 가격 후려치기는 더욱 기세를 올린다. 그러고도 우리 마트의 제품 가격이 얼마나 싼지 모르냐고, 다른 마트보다 비싸면 그 몇 배를 돌려주겠노라고 장담한다.

거대자본으로 강탈한 '유통권력'을 마구 휘둘러서 지역경제를 무너뜨리고, 중소 영세 상인들의 생활터전마저 고사시키고 있는 이 땅의 대형마트는 한마디로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Janus) 같다. 소비자에게는 웃는 얼굴로 판매하고, 생산자나 대리점을 상대로는 단물쓴물 다 빨아먹는 '빨대'다.

그뿐인가. 한때는 어엿한 자영업자였던 이들을 영화 <카트>의 '계산대 아주머니' 같은 비정규직으로 양산해서 그들의 '밥줄'을 틀어쥐고 있지 않은가. 

어느 대형마트 전단지를 보니 그림 속의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오더란다. '고객님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Your health and safety is our first priority)'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냥 '고객'이 아니고 '고객님'이라고? '우선'이 아니라 '최우선'이네? 게다가 '고객님'을 'You'로 번역한 걸 보다 보니 아주 오래 전인 1970년대 중반에 가수 임희숙이 불러서 히트한 노래 하나가 떠오르더란다.  

믿어도 될까요 당신이 하신 말씀 사랑한다 그 말을 제가 믿어도 될까요 믿어도 될까요 그대의 약속을 내년 봄의 그날을 제가 믿어도 될까요 아아 나는 행복해요 누구보다 누구보다도 그대여 변치 마세요 영원히 영원하도록…


태그:#대형마트, #비정규직, #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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