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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노동을 하며, 건강한 일터에서 일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용자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건강한 일터를 훼손하려 하고, 노동자는 점점 더 나빠진 일터에서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기,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노동자들의 변호사들인데요. 이들 변호사가 직접 쓰는 '우리 사회에 영향을 끼친 노동법 판례'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2013년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검찰이 '업무방해죄'를 이유로 노조간부 170여명을 기소한 이후 전국 각지에서 지금도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오는 17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당시 철도노조 위원장 등 중앙간부에 대한 1심 마지막 재판이 예정되어 있다.

한국 사회에서 파업은 어떤 이미지일까. 불온하거나, 불법적인 것 혹은 사회악으로 받아들이거나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생각하진 않는가. 언론에 등장하는 파업 뉴스를 떠올려 보자. 검찰 공안부, 경찰이 등장해 '엄단, 불법파업, 체포, 압수수색, 구속' 등 무서운 말들을 쏟아낸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말들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얼마 전 법정에서 어느 재판장으로부터 "변호인 주장대로라면 명백히 목적상 불법인 파업도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기도 하였다. 물론 파업을 하는 과정에서 폭력, 손괴행위가 있었다면 그 행위는 당연히 형사처벌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파업은 단순히 집단적으로 일손을 놓고 즉, 노무 제공을 거부하고 일터에서 나오는 행위를 말한다. 엄격히 말하면 그것은 근로계약상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무불이행'일 뿐이다. 이처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 파업을 형사처벌하겠다는 것'은 채무불이행을 형사처벌하겠다는 것과 같다. '근로 제공을 하지 않았으므로 임금 지급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몰라도, 형사처벌이라니.

파업을 형사처벌하는 나라

전국철도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해 12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서 수서발 KTX 운영회사 설립 이사회 개최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철도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해 12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서 수서발 KTX 운영회사 설립 이사회 개최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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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을 형사처벌하는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어떨까. 국제노동기구(ILO, 유엔산하 기구로 각 국가의 정부, 노동조합, 사용자단체 3자로 구성된 노사정기구) 제105호 '강제노동의 폐지에 관한 조약' 제1조 d항에 따르면, 동맹파업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강제노동으로 보아 금지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의 '결사의 자유에 관한 글로벌 리포트'(Global Report, 2000)를 보면,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체포하고 구속하는 대표적인 노동권 침해 국가로 한국을 들고 있다. 당시 한국과 함께 열거된 국가들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중국, 콩고공화국, 코트디부아르, 엘살바도르, 에티오피아, 가봉, 기니, 기니비사우, 인도네시아, 레바논, 모로코,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파라과이, 세네갈, 스와질랜드, 수단 등이다. 그래도 개선이 없자 지난 2004년 글로벌 리포트에서 한국을 비롯한 몇 개의 나라를 다시 '노동권에 대한 심각하고 급박한 침해가 있는 국가'로 분류해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국제노동기구 결사의자유위원회도 2000년 이래 매년 그리고 국제연합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에서도 2001년과 2009년에 걸쳐 거듭 '폭력이 수반되지 않은 노동자의 단체행동과 관련된 다양한 행위'를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비폭력적 쟁의행위'를 처벌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등 국제사회의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위력을 행사하여 업무를 방해한 행위를 처벌하는 위력업무방해죄에 관하여 우리와 거의 동일한 규정을 두고 있는 일본은 어떨까? 일본은 폭행이나 협박 등 폭력적인 수단으로 사용자의 업무를 방해하는 경우에 한해 처벌한다. 비폭력 단순 파업은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 하지 않는 게 일본 내 학설 및 판례라고 한다.

일본 이외 현재의 유럽 각국이나 미국도 마찬가지다. 위법한 쟁의행위는 주로 손해배상 등 민사상 책임을 묻거나 징계 등을 내릴 뿐이다. 쟁의행위에 따르는 폭행·협박·강요·재물손괴 등은 각각 처벌의 대상이 되지만, 비폭력 단순파업은 업무방해죄 등의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단순히 노동을 거부하는 파업 행위는 채무불이행일 뿐 최소한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라는 게 국제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일을 하지 않는 단순파업도 업무방해죄인 '위력'에 해당한다면서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다만 예외적으로 주체, 목적, 절차,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을 따져서 처벌을 면해 주었다.

그러나 파업이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는 데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계속되고, 이런 대법원의 해석에 동조하는 노동법 학자가 거의 전무할 만큼 큰 비판에 직면해서인지 2011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14인의 대법관 중 3분의 2이상이 합의체를 구성하여 판결하는 것을 말한다. 이 사건은 13인의 대법관이 재판부를 구성하고 판단하였다)로 판례를 일부 변경하기에 이른다.

'모든 파업은 무조건 위력에 해당하여 일단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보지 않고, 전후 사정과 경위를 따지겠다, 노동조합의 파업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서 그 때문에 사업을 운영하는데 그냥 혼란과 손해가 아니라,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경우와 같은 파업만 업무방해죄의 위력 행사에 해당하여 처벌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변경한 것이 그것이다(대법원 2011. 3. 17. 선고 2007도482 전원합의체 판결)

이 당시 국제사회의 보편적 상식에 입각하여 '단순파업 행위는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낸 대법관은 안타깝게도 5인(김지형, 전수안, 이홍훈, 이인복, 박시환)에 불과하였다. 전원합의체 판결(다수의견)에서 사용한 언어만을 보면, '업무방해죄'를 엄격히 예외적으로만 적용하겠다 밝히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업무방해죄'는 여전히 살아남게 되었다.

21세기 관심법, 업무방해죄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이 민주노총 건물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지난해 12월 26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앞에서 경찰들이 철도노조 체포영장 발부자의 수배 전단지를 쥔 채 검문검색을 벌이고 있다.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이 민주노총 건물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지난해 12월 26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앞에서 경찰들이 철도노조 체포영장 발부자의 수배 전단지를 쥔 채 검문검색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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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에 와서 업무방해죄는 21세기에 다시 살아난 궁예의 '관심법'처럼 매우 자의적으로 적용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대법관 마음에 안 들면 '불법', 파업이 성공하여 손해가 크면 '불법' 이런 식으로 말이다.

법관들이 자의적으로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일이 본격화 되면 어떤 경우에 파업이 처벌받는지가 불분명해지는 상황이 된다. 지금이 그렇다. 누군가 '이렇게 절차를 밟아서 파업을 하면 업무방해죄 대상이 안 됩니까?'라고 물으면, "글쎄요... 대법관 마음에 달려있어서 뭐라 답을 드리기가 어렵네요"라고 대답을 해야 할 판인 것이다. 만일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사법부, 법관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장기적으로 사법체계에 대한 국민의 심각한 불신마저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다.

지난 2013년 철도노조 파업 사건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었던 '파업→체포영장, 압수수색→노조파업 약화→형사처벌로 불법화→손해배상, 해고로 노조파탄'이라는 상황에서 단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파업 직후 철도공사가 참가한 노동자들을 업무방해죄로 고소하자, 수사 당국은 이를 이유로 하루 건너 또는 매일 출석요구서를 발송하는 방식으로 노조간부들을 압박했다.

동시에 형식적인 체포영장 발부 요건을 갖추기 시작했다. 12월 16일경 체포영장 청구를 시작하여 총 35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였다. 특이한 점은 노조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처장, 지방본부장 등 주요 간부 외에 고속기관차, 기관차 등 기관사가 속한 지부의 지부장, 파업 참가자가 많은 지부의 지부장 등이 체포 영장의 표적이 된 것이다.

파업참가율이 높은 지부의 지부장들이 영장 발부의 주요 타깃이 되었다는 건 검찰의 목표가 파업 자체의 무력화(지부장의 체포를 통한 지부 조합원들의 이탈)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실제 체포영장 발부로 주요 노조간부들의 발은 순식간에 묶였다).

뿐만 아니라 경찰과 검찰은 철도노조의 노조 중앙 사무실, 각 지방본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철도노조의 각종 투쟁지침이나 유인물, 소식지 등은 모두 노조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누구나 볼 수 있으며, 노조 회의자료나 교섭자료 역시 이미 공개되어 있거나 공사 측이 이미 확보를 하고 있는 자료들인데 말이다.

반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수사는 은밀하고 소극적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대부분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처분을 내린다. 노조를 대하는 태도와는 확연히 다르다. 수사상의 필요성보다는 보여주기식 강제수사, 즉 노조와 조합원들을 압박하고 이들을 범죄자, 불법행위자로 낙인찍기 위한 여론몰이 성격이 강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사용자엔 은밀하게, 노동자엔 단호하게

2013년 12월 22일 민주노총에 진입한 경찰병력이 진압용 해머를 앞에 두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 경찰의 민주노총 진압장비 해머 2013년 12월 22일 민주노총에 진입한 경찰병력이 진압용 해머를 앞에 두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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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된 업무방해죄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 '사용자가 파업을 예측하였는가'의 여부가 노동자들의 유무죄를 가리는데 매우 중요한 사실이 된다. 유무죄를 정확히 가려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게 검사의 직무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이자 법률상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라면, 수사의 기본 상식이 있는 검사라면 철도공사가 사전에 파업을 예측하였는지 조사해야 한다.

조사를 통해 파업에 대비하여 대체근로자를 채용했는지, 비상수송대책 계획을 세웠는지 등을 조사해야 한단 말이다. 그리고 철도노조의 경우, 이런 사실은 노조사무실을 압수수색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철도공사 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해야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 "변호인단에게도 압수수색권을 줬으면 좋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실상은 어떨까. 검사가 해야 할 일을 오히려 피고인이 하고 있다. 현재 전국 각 법원에서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 철도공사가 파업을 예측하였고 심지어 대체인력 준비, 비상수송대책을 수립했다는 등의 자료를 피고인이 힘들게 구해서 제출하고 있다. 비단 이 재판만이 아니다. 2008년 촛불파업 재판, 2009년 철도노조 파업 재판 등 이런 비슷한 재판들이 여기, 저기서 계속되는 게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파업은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사회는 계속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자본의 소송대리인을 하는 검사도, 재판을 해야 하는 판사도, '단순파업은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는 변호인도 그리고 무엇보다 단지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구속되고, 형사피고인으로 법정에 서야 하는 노동자들 모두,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이 불행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파업=업무방해죄'를 끝내는 것뿐이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변호사로, 민주노총 법률원 원장입니다.



태그:#파업권, #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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