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 수정: 17일 오후 2시 58분]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50가지의 진실> 책표지.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50가지의 진실> 책표지.
ⓒ 북오션

관련사진보기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50가지 진실>(북오션 펴냄)이란 제목만 봐도 책 내용을 금세 알 수 있다. 이 책은 17년째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이은경 원장이 쓴 책, 말하자면 내부고발서다.

"주방에서 받아온 밥은 성인 남자 2명이 먹으면 딱 맞는 분량이었다.

20명의 아이들에게 병아리 모이를 주듯 밥을 나눠주니 밥은 이내 텅텅 비었다. 비엔나소시지는 한 개를 3등분 한 것으로 20명의 아이들에게 3조각씩 나누어 주니 딱 6조각이 남았다(그날 2명이 결석했으니 아이 한명 당 비엔나소시지 3조각, 즉 하나가 돌아간 것이다).

교사는 더 먹고 싶다는 아이에게 한 쪽씩 나눠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리고 잘게 썬 김치 조금, 김 그리고 아무리 봐도 소고기는 보이지 않는 소고기 무국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식단표에 있는 브로콜리는 빠져 있었다. 당일 시세가 너무 비싸 살 수 없었다고 했다."
-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50가지 진실>에서

위는 한 어린이집에서 일하다 그만둔 전직 보육교사가 폭로한 내용이다.

어린이집 식단표의 진실 모르는 엄마들 

어린이집 측에서 부모에게 제시한 주간 안내문의 이날 식단 메뉴는 '오전 간식: 사과 한 개씩/ 점심: 현미밥, 소고기무국, 비엔나소시지, 김, 브로콜리, 김치/ 오후 간식: 궁중떡볶이'였다.

몸에 좋다는 현미밥에 영양가 있는 소고기무국 등 대부분의 부모들은 괜찮은 메뉴라며 만족하고 안심할 것 같다. 그러나 메뉴의 실상은 이랬다. 참고로 이 교사가 당시 맡았던 반은 만 3세반(우리나이 5세 아이들 정원 20명)이었다고 한다.

이 전직 보육교사에 의하면, 오전 간식 '사과 한 개씩'은, '사과 조각끼리 붙어 포크에 서너 개가 같이 찍힐 정도로 얇게 썬 것 약간'. 부모들이 내 아이에게 하나를 다 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달리, 사과 하나로 원생 전부 혹은 한 반 아이들을 나눠 먹인 것이다.

오후 간식인 궁중떡볶이는 또 어떤가. 이날 주방 일을 하는 할머니가 병원 예약 때문에 점심시간 후에 원을 비웠다. 궁중떡볶이는 동네 떡볶이집에서 배달시켰는데, 아이들에게 돌아간 것은 달랑 한 개씩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엄마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식단표대로 먹었는지 확인하며 무엇을 먹었는지 물으면 아이는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었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줬는지 '양'의 진실을 모르는 엄마는 만족했거나 안심했을 것이다. 사과도, 궁중떡볶이도, 비엔나소시지도 먹긴 먹었으니 말이다.

이는 세 번째 이야기. 내용을 읽으며 "집에서 깨작거리기 일쑤이던 아이가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아무것이나 잘 먹고 많이 먹는다"며 좋아하던 한 후배가 떠올랐다. 그 어린이집도 책에서 실례를 든 어린이집처럼 아이들에게 턱없이 적은 양을 준 건 아니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책은 이 이야기에 앞서 6천 원짜리 닭 한 마리로 90명 원아들과 보육교사 몇 명이 먹을 삼계탕을 끓이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요구르트와 곰팡이가 핀 찐빵을 간식으로 준 어린이집의 실례를 든다. 그리고 어린이집들이 어떤 식으로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배만 불릴 수 있는지 그 수법들을 폭로한다.

이어 2011년 11월, 언론의 보도로 많은 부모들을 분노하게 한 '썩은 달걀 간식 사건' 실례(기자 주: 썩은 달걀을 간식으로 주자 한 보육교사가 전화기로 사진을 찍어 포털사이트에 올려 언론보도까지 이어졌다)를 들어 어린이집의 부실한 운영 실태를 보여준다.

필자도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보도를 보며 이를 계기로 부실한 운영이 개선되리라 기대했다. 당연히 해당 어린이집은 폐쇄되었으며, 해당 원장은 자격을 잃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원장은 어린이집 운영 자격을 잃지 않았다. 그 어린이집은 다른 원장이 이름을 바꿔 운영하고 있다.

해당 어린이집 조사를 진행한 대구 A구청 관계자는 지난 13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문제의 달걀이 진짜 상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며 "싱싱하지 않은 오래된 달걀을 아이들에게 제공한 건 맞기에 해당 원장에게 '3개월 자격정지' 징계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징계 기간이 끝나면, 원장은 다시 어린이집을 운영할 수 있다.

"그 엄마는 피망 2개로 80명의 아이를 먹였다고 분노했다. 피망 2개로 80명을 먹이는 방법은 딱 한 가지가 있다. 채썰기, 오이 한 개를 채 썰어 오이무침이라고 하면서 채 썬 오이를 2쪽씩 나눠주는 방법과 같은 것이다.

그 인터넷 카페엔 가락시장에서 배추 겉잎 버리면 할머니들이 주워가기도 전에 어린이집 원장들이 먼저 주워간다는 글도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배추 겉잎을 주워서 된장국을 끓인다는 것이다.... (중략) 

친환경 쌀과 유기농 식단을 제공한다고 추가로 10만 원씩, 15만 원씩 비용을 더 냈는데 시장 바닥에 떨어진 배추 겉잎 주워서 끓인 된장국을 내 아이가 먹는다는 걸 알게 된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원장은 그렇게 끓인 된장국을 입에도 안 댄다. 원장과 교사인 원장의 딸은 점심 때 나가서 1만5000원짜리, 3만 원짜리 점심을 먹는다. 물론 그 비용은 '손님 접대비'로 처리한다."
-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50가지 진실>에서

읽다가 나도 모르게 "미쳤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화도 났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계속 이어진다.

'명절 직후에 차례상에 쓰고 남은 것들이나 냉동실에 수개월 얼린 떡을 간식으로 쪄주는데 곰팡이가 피면 씻어서 쪄주고, 마른 빵 하나를 여러 등분해 우유 없이 주고, 물을 넉넉하게 주면 화장실에 자주 가니 물도 아주 조금만 주고, 오이 몇 개 넣지 않고 소금으로 간을 해 주는' 등의 너무 불편한 그 파렴치한 진실들을 거침없이 말한다.

정직한 어린이집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는 이 책에 소개된 극히 적은 부분이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는데 ▲ 표시 나지 않게 머리를 때려라? ▲ 낮잠을 자지 않거나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울면 작은 골방에 혼자 가두고 불까지 꺼버리는 어린이집 ▲ 아이에게 감기약 이틀 분을 한 번에 먹인 교사의 실체 ▲ 현장 학습비의 절반은 원장 몫? ▲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막고자 교사들의 핸드폰은 출근과 동시에 압수? ▲ 원장이 받은 대출금 원금과 이자 상환은 물론 사채이자까지 특별활동비로 충당? ▲ 1~2억 원 버는 것은 일도 아닌 횡령의 달인인 원장들 ▲ 어린이집 담당 공무원들은 월급보다 많은 용돈을 번다? ▲ '눈 가리고 아웅'하는, 도리어 아이들 보육에 소홀하게 만드는 평가 인증제? 등 어린이집 전반에 걸친 문제들을 50항목에 걸쳐 폭로한다.

책을 읽는 동안 '극히 일부 원장이나 어린이집의 이야기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은 다르다. 믿을 수 있는 어린이집이 오히려 소수라는 것이다. 두 아이가 성년인 내게도 이런 현실은 착잡한데, 단 하루도 어린이집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부모들은 오죽할까?

저자는 지난 17년 동안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절실하게 느꼈던 것들을 토대로 바람직한 어린이집을 위한 다양한 대안들을 각 항목마다 제안했다. 어린이집이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이 출판되자 사실과 다르다며 일부 어린이집 원장들이 분노와 여론이 분분한 것으로 안다. 책을 읽은 사람으로 의견을 덧붙이면, 저자는 현행 어린이집 운영과 관련되는 법조항이나 통계 같은 근거들을 제시하면서 그 실태를 폭로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니 속된 말로 제살 파먹기 주장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런 불편한 진실을 밝혀야만 하는 이유는 분명 있지 않을까? 저자의 주장을 둘러싼 시시비비 또한 하루 빨리 밝혀졌으면 좋겠다.

저자 이은경은...
17년째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이라 여성에게는 최고의 직업이라 생각했고, 영유아를 보육하는 일보다 더 숭고한 일이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어린이집 원장들이, 영유아 보육 시설 종사자들이 앞으로는 희생하고 헌신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더럽고 극악한 짓을 저지르는 현실 앞에서 좌절했다.

사흘이 멀다 하고 어린이집 비리가 터져도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금세 무마되는 현실에, 보건복지부도 시청·군청·구청도 국회·시의회·구의회도 아이들과 부모들이 받는 피해를 외면하기만 하는 현실에 또 한 번 좌절했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생각하면 좌절감에 휩싸여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리하여 영유아 보육정책이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부당한 일을 당해도 말 못하는 영유아의 권리를 대변하고자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50가지 진실'을 썼다.(책에서)

덧붙이는 글 |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50가지 진실>| 이은경 (지은이) | 북오션 | 2014-11-14 | 15,000원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50가지 진실

이은경 지음, 북오션(2014)


태그:#어린이집, #평가인증제, #썩은달걀, #영유아보육정책, #보육교사
댓글2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