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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관 마당에 있는 옆으로 퍼진 단풍과 위로 치솟은 은행나무가 사이좋은 음양처럼 조화롭다 |
ⓒ 이영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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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붉은 단풍나무와 노란 은행나무가 사이 좋은 화합을 보인다. 뾰족한 나무는 수컷이고 펑퍼짐한 나무는 암이라고 어느 책에서 봤다. 이 나무들은 음양의 묘한 조화일까 아니면 그냥 계절이 주는 선물 아래 자연스럽게 그렇게 조화되었을까...
어릴적 자랄 때 부모님이 속상하시거나 흐뭇해 했을 때는 내가 공부를 잘 하고 못 하였을 때 보다 바로 손위의 오빠와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자존심을 내세워 투닥거릴 때 또는 사이좋게 잘 나누어 쓰던 때였다.
이제 부모님은 차례대로 오래 전에 먼 길 떠나셨다. 이후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두 아이가 투닥거리면 속이 쓰리고 두 아이가 다정히 함께 마음을 모아 어려운 일을 상의하거나 옷도 사이좋게 나누어 입는 것을 보면 속이 따스해진다.
사람들에게 묵향을 나누고 가르친 지 아직 20년이 채 못 된다. 그러나 그동안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올곧고 줄기차게 배워 지역의 작가로 등단하거나 또 학생들이나 초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는 것을 보면 보람이 깊다.
그러한 보람보다도 더 깊은 보람과 따스한 정감을 요즘에 느낀다. 내게 배워 작품 지도를 받아 가로 70센티의 세로 140센티 가량의 작품을 완성한 어르신 한 분이 1400명 중에서 2등을 하여 상을 타고, 그 상을 탄 시상금을 자기를 위해 쓰기보다 어려운 기관에 후원하고 5백 명의 노인들에게 호박떡 나눔을 해서 훈훈하기 때문이다.
유달리 의미가 더 해진 것은 황금빛으로 물든 노오란 은행잎처럼 그렇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집념을 쏟은 유종의 미가 더해져서이다. 하마터면 작품을 출품하지 못할 뻔 했던 그 어르신은 작품 마무리를 앞두고 이전에 받았던 암이 재발하여 두 번째 수술을 받으러 서울에 갔다 오느라 한달 가량 붓을 놓았다.
서울 가실 때에는 사람들에게는 종합건강검진을 받는다고 하고 가셨고 지금도 그런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옛날에는 병을 광고하라고 했지만 말 많고 탈 많은 요즘에는 구태여 광고하려 들지 않는다. 그만큼 암은 노인들에겐 일상화 되어 있기도 하기에 화제 거리도 못되고, 정보의 홍수속에서 어떻게 하면 암을 극복할 수 있는가도 잘 알아지기 때문이다.
요즘은 암 수술도 꼭 개복을 하지 않고 작은 구멍을 통해 하는 새롭고 간편한 표적식인 수술방법이 많이 생겼는데 어르신도 두 번째 수술은 그렇게 받으신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간편한 수술이라 해도 사람의 신체안의 장기일부를 절제하거나 건드리는 것이었는데 어찌 아프지 않을까...
수술경과가 어찌 될지 몰라 거의 완성한 작품을 제출 못 할 수도 있다고 하고, 그리고 작년부터 책임져 왔던 서예반의 임원직도 내려놓고 빈 마음으로 올라가신 어르신은 경과가 좋아 빨리 퇴원하여 내려오셨다. 그리고 얼마 후 마무리 하지 않았던 작품을 다시 꺼내들고 서두르지 않고 매일 조금씩 조금씩 달팽이 걸음만큼씩 꾸준히 조용히 노력하셨다.
이 세상의 가장 큰 힘은 재능이 아니고 꾸준함이라는 것을 많은 어려운 과정도 거치고 세상을 살 만큼 산 어르신은 안다. 그리고 침묵의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소리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 소리를 넘어서 마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나도 안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마무리했고 그리고 다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묵향을 피울 수 있을까 하고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내가 지켜본 어르신은 암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이좋게 동행을 하고 계신 것 같다.
암이란 것이 기승을 부리면서 무게를 더하면 어르신은 자신이 동고동락하는 삶의 한 조각 한 조각을 떼어서 균형을 잡는 것 같았다. 이런 지혜로움은 단기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다양한 오욕칠정이 반복되어 감정의 용광로속에서 활활 타고 녹아서 만들어 졌을것이다.
뭔가 어려울 수록 더 잡고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조금 어려우면 많이 어렵다고 외치고 가진 것도 모자라서 더 가지려는 사람들 속에서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호박떡을 나눈 어르신과 함께 오늘도 동행하는것이 기쁘다. 이런 저런 이유로 호박떡을 많이 먹어보았지만 오늘따라 어르신이 나눈 호박떡이 유달리 맛있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