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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마당에 있는 옆으로 퍼진 단풍과 위로 치솟은 은행나무가
사이좋은 음양처럼 조화롭다
 기관 마당에 있는 옆으로 퍼진 단풍과 위로 치솟은 은행나무가 사이좋은 음양처럼 조화롭다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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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붉은 단풍나무와 노란 은행나무가 사이 좋은 화합을 보인다. 뾰족한 나무는 수컷이고 펑퍼짐한 나무는 암이라고 어느 책에서 봤다. 이 나무들은 음양의 묘한 조화일까 아니면 그냥 계절이 주는 선물 아래 자연스럽게 그렇게 조화되었을까...

어릴적 자랄 때 부모님이 속상하시거나 흐뭇해 했을 때는 내가 공부를 잘 하고 못 하였을 때 보다 바로 손위의 오빠와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자존심을 내세워 투닥거릴 때 또는 사이좋게 잘 나누어 쓰던 때였다.

이제 부모님은 차례대로 오래 전에 먼 길 떠나셨다. 이후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두 아이가 투닥거리면 속이 쓰리고 두 아이가 다정히 함께 마음을 모아 어려운 일을 상의하거나 옷도 사이좋게 나누어 입는 것을 보면 속이 따스해진다.

사람들에게 묵향을 나누고 가르친 지 아직 20년이 채 못 된다. 그러나 그동안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올곧고 줄기차게 배워 지역의 작가로 등단하거나 또 학생들이나 초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는 것을 보면 보람이 깊다.

일하는 곳 복도창을 열고 위에서 바라본 은행잎
 일하는 곳 복도창을 열고 위에서 바라본 은행잎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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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보람보다도 더 깊은 보람과 따스한 정감을 요즘에 느낀다. 내게 배워 작품 지도를 받아 가로 70센티의 세로 140센티 가량의 작품을 완성한 어르신 한 분이 1400명 중에서 2등을 하여 상을 타고, 그 상을 탄 시상금을 자기를 위해 쓰기보다 어려운 기관에 후원하고 5백 명의 노인들에게 호박떡 나눔을 해서 훈훈하기 때문이다.

유달리 의미가 더 해진 것은  황금빛으로 물든 노오란 은행잎처럼 그렇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집념을 쏟은 유종의 미가 더해져서이다. 하마터면 작품을 출품하지 못할 뻔 했던 그 어르신은 작품 마무리를 앞두고 이전에 받았던 암이 재발하여 두 번째 수술을 받으러 서울에 갔다 오느라 한달 가량 붓을 놓았다.

서울 가실 때에는 사람들에게는 종합건강검진을 받는다고 하고 가셨고 지금도 그런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옛날에는 병을 광고하라고 했지만 말 많고 탈 많은 요즘에는 구태여 광고하려 들지 않는다. 그만큼 암은 노인들에겐 일상화 되어 있기도 하기에 화제 거리도 못되고, 정보의 홍수속에서 어떻게 하면 암을 극복할 수 있는가도 잘 알아지기 때문이다.

요즘은 암 수술도 꼭 개복을 하지 않고 작은 구멍을 통해 하는 새롭고 간편한 표적식인 수술방법이 많이 생겼는데 어르신도 두 번째 수술은 그렇게 받으신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간편한 수술이라 해도 사람의 신체안의 장기일부를 절제하거나 건드리는 것이었는데 어찌 아프지 않을까...

수상 당시 모습
 수상 당시 모습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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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경과가 어찌 될지 몰라 거의  완성한 작품을 제출 못 할 수도 있다고 하고, 그리고 작년부터 책임져 왔던 서예반의 임원직도 내려놓고 빈 마음으로 올라가신 어르신은 경과가 좋아 빨리 퇴원하여 내려오셨다. 그리고 얼마 후 마무리 하지 않았던 작품을 다시 꺼내들고 서두르지 않고 매일 조금씩 조금씩 달팽이 걸음만큼씩 꾸준히 조용히 노력하셨다. 

이 세상의 가장 큰 힘은 재능이 아니고 꾸준함이라는 것을 많은 어려운 과정도 거치고 세상을 살 만큼 산 어르신은 안다. 그리고 침묵의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소리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 소리를 넘어서 마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나도 안다.

500명에게 나눈 은행잎색깔과 같은 맛있는 호박떡 나눔
 500명에게 나눈 은행잎색깔과 같은 맛있는 호박떡 나눔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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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마무리했고 그리고 다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묵향을 피울 수 있을까 하고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내가 지켜본 어르신은 암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이좋게 동행을 하고 계신 것 같다.

암이란 것이 기승을 부리면서 무게를 더하면 어르신은 자신이 동고동락하는 삶의 한 조각 한 조각을 떼어서 균형을 잡는 것 같았다. 이런 지혜로움은 단기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다양한 오욕칠정이 반복되어 감정의 용광로속에서 활활 타고 녹아서 만들어 졌을것이다. 

뭔가 어려울 수록 더 잡고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조금 어려우면 많이 어렵다고 외치고 가진 것도 모자라서 더 가지려는 사람들 속에서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호박떡을 나눈 어르신과 함께 오늘도 동행하는것이 기쁘다. 이런 저런 이유로 호박떡을 많이 먹어보았지만 오늘따라  어르신이 나눈 호박떡이 유달리 맛있고 고맙다.


태그:#서예가 이영미 글, #노인문화예술인식개선, #광주전국노인서예대전 우수상 이병용, #은행잎과 호박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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