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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살 ㄱ양은 가출해 찜질방 등을 전전하다 함께 어울리던 두 10대 청소녀로부터 조건만남을 할 것을 요구받았다. 이들은 번 돈의 일부를 조건만남을 주선했던 10대 청소년한테 주었고, 이들은 원룸을 얻어 함께 살았다. ㄱ양이 조건만남을 거부했지만, 폭언·폭행에 대한 두려움으로 계속하게 되었고 모든 돈도 빼앗긴 것이다."

"15살 ㄴ양은 '가출팸'이라고 소개한 아이들이 '기지'로 데려가서 숙식을 제공해 주고, 10대 여자 셋과 남자 다섯이 모였는데, 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18살 남자가 '대장'을 했다. 10대 청소년들이 조건만남을 알선하고 청소녀들이 성매매를 해서 그 수익으로 생활해왔다. '대장'은 모두 나간 사이 ㄴ양을 때리고 성폭행하며 조건만남을 강요했다."

가출 10대 청소녀들이 '또래포주'로부터 당하고 있는 사례다. (사)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의 상담사례를 모은 것인데,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여성인권상담소를 비롯한 전국 40여개 단체들은 최근 '김해 여고생 살해사건' 담당재판부인 창원지방법원 제4형사부에 의견서를 냈다. 이 사건은 20대 남성 3~4명이 가출 여중·여고생 4명한테 조건만남을 시키고, 김해 한 여자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피해자(15)가 이들에 맞아 사망한 사건을 말한다.

여성단체들은 "언론은 이 사건을 또래집단에서 일어난 무자비한 살인과 폭행으로 보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 특히 10대 청소녀들이 어떤 위기 상황에 몰려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라 의견서를 낸다"고 밝혔다. 상담 사례를 더 보자.

"14살 ㄷ양은 가출해 SNS를 통해 16~17살인 언니 3명과 18살인 오빠를 만나게 되었고, 이들은 ㄷ양한테 조건만남을 시켰고, 거절하면 폭행을 가했다."

"14살 ㄹ양은 왕따에 시달리다 가출하게 되었다. 성구매 남성들은 돈을 떼어먹기 일쑤였다.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돈을 받고 성매매를 할 것인지, 아니면 폭행과 성폭행을 당하고 모르는 곳에 내려지는 것이었다."

"16살 ㅁ양은 가출 후 잠잘 곳을 찾던 중 숙식을 해결해 줄 '천사' 같은 오빠 1명을 알게 됐다. 오빠는 아파트로 들어서는 순간 ㅁ양한테 성매매를 시키는 본색을 드러냈던 것이다. ㅁ양은 10여일간 하루 서너 차례 모텔을 전전하며 성매매를 해야 했고, 돈도 모두 빼앗겼던 것이다."

이밖에도 사례는 수없이 많다. 10대 내지 20대 남성들이 가출한 여중·여고생과 함께 지내면서 '또래포주' 노릇을 한 것이다. 여성인권상담소는 "가출 10대 청소녀들은 성매매하다 임신을 하는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더 큰 희생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

'김해 여고생 살해사건'에 대한 여성 피고인들의 결심공판이 31일 오후 창원지방법원 315호 법정에서 열렸다. 이날 검찰은 여성 피고인들에 대해 징역형을 구형했다.
 '김해 여고생 살해사건'에 대한 여성 피고인들의 결심공판이 31일 오후 창원지방법원 315호 법정에서 열렸다. 이날 검찰은 여성 피고인들에 대해 징역형을 구형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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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 십대여성인권센터, 경남도상담소시설협의회 등 42개 단체는 "김해 여고생 살해사건 피해자의 죽음 앞에 더 큰 희생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에 의견서를 냈다고 밝혔다.

이들은 "사건의 표면적 실체보다 그 아래 묻혀 있는 어린 청소녀들의 절규에 귀 기울여 달라"며 "여중생들이 사건에 가담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사회적 안전망도 질서도 어떠한 보호체계도 없는 무시무시한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참혹한 몸부림이었다"고 밝혔다.

여성단체들은 "10대 가출 청소녀들은 사회적 안전망이 붕괴된 가운데 방치되고 버림 받았다"며 "가정의 위기 속에서 사회의 냉담한 무관심 속에 버려진 청소년들이 올바르게만 자라나길 바라는 것은 사회적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10대 청소녀들은 성매매의 표적이 되고 있다. 여성단체들은 "현행 근로기준법상 18세 미만은 부모와 후견인의 동의서가 없이 편의점이나 일반식당 등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기에 가출한 청소녀들은 온전히 거리로 전전하고, 먹고 잘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결국 성매매의 표적이 되고 만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출 청소녀들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성매매를 선택하게 되고, 일정한 주거지가 없는 취약점을 이용해 숙식제공을 조건으로 유인해 감금하고 성매매를 강요하며, 돈만 챙기는 피해 사례가 늘어만 가고 있다"로 밝혔다.

'가출팸(가출패밀리)'도 등장한다. 여성단체들은 "가출한 청소녀들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친구들 끼리 마음의 상처를 위로 받고 가출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내기 위해 '가출팸'을 결성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가출 패밀리 또한 변변한 경제적 능력이나 안전망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결국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성매매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단체들은 "먹고 살기 위해 또 다른 가출 청소녀들의 성매매를 알선하게 되고 결국 '또래포주'라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라며 "가출 청소녀들이 여전히 성매매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세상에서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유일한 곳이 성매매뿐이었다는 것이고, 이들의 이같은 호소를 우리 사회는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단체들은 "청소년, 학생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은 우리가 보듬어 줘야 할 꿈나무들이고, 마찬가지로 학교 밖에 있는 청소년들도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라며 "이런 소중한 존재들이 어른들의 이기적인 욕망과 쾌락에 이용 당하고 울타리가 되어줘야 할 사회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그:#조건만남, #가출 청소년, #여성인권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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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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