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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을 훌쩍 넘기고 새 극장에서 재회한 뮤지컬 <레베카>의 위용은 여전했다. 보다 정교해진 맨덜리 대저택과 스케일이 커진 화염 장면, 신구 조화를 이룬 캐스트들의 합은 초연부터 일찍이 작품의 매력을 알아본 이는 물론이거니와 초연을 놓치고 재연을 기다려온 이들 모두에게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사했다.

초연 당시 평면이었던 맨덜리 저택 세트에 양각화 작업을 거치면서 재연에서는 입체적인 무대로 변신했다.
 초연 당시 평면이었던 맨덜리 저택 세트에 양각화 작업을 거치면서 재연에서는 입체적인 무대로 변신했다.
ⓒ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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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초연과 비교해 올해 재연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공연장의 변화에 따른 무대의 크기요, 둘은 새로운 캐스트들의 합류다. 먼저 이번 재연은 초연 공연장인 LG아트센터에서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로 옮기며 무대 크기가 커졌다. 이 과정에서 맨덜리 대저택은 크기에 맞춰 몸집을 키우고 초연 당시 평면이었던 세트에 양각화 작업을 거치면서 입체적인 무대로 변신했다.

뮤지컬 <레베카>의 백미 중 하나인 맨덜리 저택 화염 장면도 스케일이 커지긴 마찬가지. 영상을 보강하고 불길이 솟는 불기둥을 추가하면서 한층 뜨거운 무대를 만들어낸다. 화염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맨덜리 저택 너머로 굉음과 함께 샹들리에까지 바닥으로 떨어지는 장면에서는 넋을 놓은 채 바라보는 이들도 적잖다.

민영기의 막심(우)은 어딘가 서툴고 유머러스한 매력으로, 엄기준의 막심(좌)은 세련되고 부드러운 매력으로 각각 어필한다.
 민영기의 막심(우)은 어딘가 서툴고 유머러스한 매력으로, 엄기준의 막심(좌)은 세련되고 부드러운 매력으로 각각 어필한다.
ⓒ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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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덜리가 변신을 꾀한 만큼 안주인이 변하는 건 당연지사. 초연 멤버인 오만석(막심 드 윈터, 이하 막심), 옥주현과 신영숙(댄버스 부인), 임혜영(나)을 필두로 민영기와 엄기준, 리사, 오소연이 합류했다.

초연에서 '막심의 교과서'로 통한 오만석과 댄버스 부인의 위상을 높이며 단연 독보적인 배우로 자리매김한 옥주현의 출연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반가울지 몰라도 동일 배역의 다른 캐스트에겐 부담으로 작용했을 터. 새로 합류한 출연진들은 캐릭터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으로 기대 이상의 무대를 보여준다.

민영기의 막심은 엄기준의 막심보다 어딘가 서툴고 유머러스한 매력으로 어필하지만 2막 레베카와의 관계에 얽힌 비밀을 나(I)에게 털어놓는 넘버 '칼날 같은 그 미소'에서는 그 특유의 서늘한 음성으로 무대를 가른다. 엄기준의 막심은 보통은 세련되고 부드럽다가 불현 듯 그를 엄습하는 레베카에 대한 기억으로 혼란스러워지는 장면에서는 신경질적인 말투와 행동으로 좀 더 예민한 막심을 표현한다.

옥주현의 댄버스 부인(좌)은 초연을 토대로 깊어진 연기에, 리사의 댄버스 부인(우)은 어두운 음색과 날선 연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옥주현의 댄버스 부인(좌)은 초연을 토대로 깊어진 연기에, 리사의 댄버스 부인(우)은 어두운 음색과 날선 연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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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주현의 댄버스 부인은 초연 무대의 경험을 토대로 깊어진 연기와 일순간 무대를 장악하는 존재감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음색과 탁월한 조화를 이뤄낸 '레베카' 외에도 레베카를 그리는 '영원한 생명'과 그녀의 죽음과 관련된 전말을 알고 배신감에 무너지는 2막 '레베카(리프라이즈)'는 그녀의 성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편 리사의 댄버스 부인은 옥주현의 댄버스 부인보다 한층 어두운 음색으로 비밀스럽고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는 맨덜리의 분위기와 묘하게 어울린다. 특히 레베카 부인이 생전에 아끼던 큐피드 조각상을 나(I)가 깨뜨렸단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에서는 옥주현의 댄버스 부인보다 날이 서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두 배우가 각각 맨덜리에 드리우는 그림자의 색을 입힌다면, 옥주현의 댄버스 부인은 검푸른 빛에 가까운데 비해 리사의 댄버스 부인은 검붉은 빛이 감돈 달까.

꾹꾹 눌러쓴 연필자국처럼, 뮤지컬 ‘레베카’는 재연으로 ‘지울 수 없는’ 자국 하나를 더욱 선명하게 아로새겼다.
 꾹꾹 눌러쓴 연필자국처럼, 뮤지컬 ‘레베카’는 재연으로 ‘지울 수 없는’ 자국 하나를 더욱 선명하게 아로새겼다.
ⓒ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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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번씩 이명처럼 귓가를 맴돌던 '레베카'는 어쩌면 쉽게 잊힐지도 모른다. 숨 막힐 듯 간절하게 '레베카'를 부르짖던 댄버스 부인의 음성과 확인할 길이 없어 더욱 궁금한 레베카의 '칼날 같은 그 미소'는 언제 그렇게 인상적이었냐는 듯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이다. 그러나 지우개로 아무리 깨끗이 지워내도 그대로 남아있는 꾹꾹 눌러쓴 연필자국처럼, 뮤지컬 <레베카>는 초연에 이은 재연으로 '지울 수 없는' 자국 하나를 더욱 선명하게 아로새겼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공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지선의 공연樂서, #문화공감, #뮤지컬 레베카, #옥주현, #엄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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