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갯벌에서 낙지를 잡고 있다.
 갯벌에서 낙지를 잡고 있다.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갯벌 속으로 몸이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 낙지가 있기는 한 건가?
 갯벌 속으로 몸이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 낙지가 있기는 한 건가?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낙지가 딸려나오고 있다.
 낙지가 딸려나오고 있다.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9월부터 화성에서는 낙지잡이가 시작된다. 경기도 해수면적의 80%를 화성시가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전곡항, 궁평항, 백미항 등이 있어 바다에서 나는 먹을거리가 풍부한 것이 화성시의 장점이다.

때문에 이들 항구마을에는 낙지잡이, 조개잡이, 망둥어잡이, 굴따기 등을 할 수 있는 어촌체험마을이 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체험을 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이들 마을을 찾는다. 이들 마을 가운데 특히 낙지가 유명한 곳은 백미리.

지난 2012년 10월, 백미리로 낙지잡이 취재를 간 적이 있다. 백미리 주민들은 백미항에서 배를 타고 도리도 앞까지 가서 물이 빠질 때를 기다려 낙지를 잡았다. 낙지를 잡을 때는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 특히 배를 타고 나갈 때는. 물이 다시 들어오면 낙지잡이를 멈추고 배를 타고 다시 백미항으로 돌아온다.

올 가을 역시 화성으로 낙지잡이 취재를 나갔다. 이번에는 배를 타지 않고 갯벌로 그냥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송교리 갯벌이다. 갯벌 역시 물이 빠질 때를 맞춰야 하지만, 배를 타고 나가는 것보다 접근성이 좋아 여유롭다.

낙지잡이 일정은 화성 토박이인 홍예선씨가 잡았고, 낙지잡이는 영복씨가 했다. 나와 황호현(화성시청 공보담당관실) 감독이 동행 취재했다. 송교리 갯벌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갯벌은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통행이 제한되어 있다.

황호현 감독이 낙지잡이 취재를 하고 있다.
 황호현 감독이 낙지잡이 취재를 하고 있다.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낙지를 직접 잡고 싶었지만, 화성의 갯벌은 초보자가 낙지를 쉽게 잡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카메라를 들고 옆에서 따라다니는 것조차 버겁다. 갯벌이 늪처럼 발이 푹푹 빠지기 때문이다. 엎어지거나 자빠지지 않으면 다행인데, 중심을 잡지 못해서 결국 뒤로 자빠졌다.

엉덩이가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완전히 뒤로 자빠지기 전에 예선씨가 잡아줘서 다행히 갯벌에 벌러덩 눕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

9월의 마지막 금요일 오전, 송교리로 향했다. 예선씨는 트럭을 빌려왔다. 송교리 갯벌은 승용차 역시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송교리 입구에서 영복씨를 트럭 짐칸에 태우고 갯벌로 들어갔다. 갯벌로 가는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이 나 있다. 길 중간쯤에 트럭을 세우고, 고무장화를 신었다. 허벅지까지 오는 주홍색 긴 장화를 예선씨가 준비했다.

갯벌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포장된 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경운기를 타고 들어오는 이들도 있었다. 송교리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다. 갯벌에는 물이 빠지기 전에 쳐놓은 그물들이 있었다. 물이 빠져 드러난 그물 부근에는 갈매기들이 무리지어 앉아서 그물에 잡힌 작은 물고기들을 부리로 톡톡 건드리고 있었다.

장화를 신고 카메라를 메고 갯벌로 걸어 들어갔다. 갯벌에 발을 디디자마자 발이 푹 빠졌다.

"여기는 갯벌이 아주 많이 빠지지 않아요. 도리도 갯벌은 발이 푹푹 빠지지만."

갯벌을 차지하고 있는 갈매기들.
 갯벌을 차지하고 있는 갈매기들.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영복씨의 설명이다. 영복씨는 한때 낙지잡이를 많이 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요즘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랜만에 낙지잡이를 하러 나왔다는 영복씨의 낙지잡는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삽 한 자루를 들고 갯벌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는 영복씨를 따라가는 게 힘에 부쳤다. 걸음을 옮기면 발이 푹 빠진다. 다시 걸음을 옮기려면 갯벌에 빠진 발이 빠지지 않았다. 갯벌에 박힌 발을 겨우 잡아 빼고 걸음을 옮기면 다른 발이 빠져 있다. 걷는 게 아니라 갯벌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꼴이었다. 바닷물이 미처 빠지지 않은 곳은 물을 첨벙거리면서 걸었는데 그게 훨씬 수월했다.

드디어 영복씨의 낙지잡이가 시작됐다. 영복씨 외에도 서너 명이 드넓게 펼쳐진 갯벌에서 낙지잡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갯벌에 흩어져 내려앉은 갈매기들은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파헤친 갯벌을 뒤져 먹을 것을 찾아낸다. 쫓아도 날아가지 않고 버틴다.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가? 함부로 갈매기에게 해코지를 했다가는 갈매기 무리들에게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단다.

바위를 들추면 게가 숨어 있다.
 바위를 들추면 게가 숨어 있다.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낙지가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 낙지, 조금 뒤 라면 속으로 들어갔다.
 낙지가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 낙지, 조금 뒤 라면 속으로 들어갔다.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영복씨가 드디어 걸음을 멈췄다. 초록색 테이프를 잔뜩 붙인 스티로폼 상자를 내려놓고 엎드렸다. 상자에는 잡은 낙지를 담는다. 한 팔은 버티고 다른 한 팔로 갯벌 안을 휘젓던 영복씨가 한참 만에 낙지 한 마리를 낚아올렸다.

개흙이 잔뜩 묻은 낙지 한 마리가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영복씨의 표정이 밝아졌다. 예선씨와 황 감독 그리고 내가 탄성을 질렀다. 그렇게 시작된 낙지잡이는 두 시간가량 이어졌다.

영복씨는 때로는 갯벌에 삽질을 하면서 흙을 퍼낸 뒤 그 자리에 엎드려서 낙지를 잡기도 했다. 삽질은 참으로 힘겨워 보였다. 삽질을 할 때마다 낙지를 잡는 건 아니었다. 허탕을 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영복씨는 '전문가'답게 허탕을 칠 때보다는 낙지를 잡아올릴 때가 더 많았다.

갯벌을 살피는 영복씨는 낙지가 있을 만한 곳을 알려주었지만, 전문가 눈에나 그게 보이지 초보자 눈에는 그 갯벌이 그 갯벌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봐도 낙지가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니까.

갯벌의 그물에는 광어가 걸렸다. 자연산 광어다.
 갯벌의 그물에는 광어가 걸렸다. 자연산 광어다.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영복씨가 잡은 낙지는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크기가 아주 다양했다. 영복씨가 잡은 낙지는 전부 25마리. 그 가운데 두어 마리는 그 자리에서 다리가 죄다 잘리는 수난을 겪으면서 이 세상을 하직해야 했다. 우리가 초장도 없이 그냥 날것으로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바닷물이 빠진 송교리 갯벌에 쳐진 그물에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걸려들었다. 어른 손가락 두세 마디 크기 정도되는 전어, 아주 작은 새우, 꼴뚜기, 쭈구미 등이 걸렸던 것이다. 그것들을 고인 바닷물에 대충 헹궈 그대로 먹는다. 도시에서는 절대로 먹을 수 없는 아주 싱싱한 것들이다. 갈매기들이 그물 주변을 맴도는 것은 그물에 걸린 그런 것들을 먹어치우기 위해서다.

송교리 갯벌에서 그물을 거두고 있다.
 송교리 갯벌에서 그물을 거두고 있다.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갯벌 한쪽에서는 송교리 어촌계장 내외가 그물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커다란 대야를 들여다보니 광어, 망둥어, 새우, 전어 등이 들어 있다. 광어는 뱃바닥이 하얀 것이 진짜 자연산이다. 배낭에서 소주 한 병과 초장을 꺼내는 예선씨. 낙지 잡느라 지친 영복씨에게 목을 축일 것을 권한다.

영복씨가 낙지잡이를 한창 할 때 예선씨와 나는 게잡이를 하러 나섰다. 멀리 입파도가 보이는 송교리 갯벌 한쪽은 굴밭이다. 아직은 굴이 제 맛이 들지 않았다는 게 화성 토박이인 예선씨의 설명이다. 굴은 찬바람이 불어야 제 맛이라든가. 그 주변에서 게를 잡았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것부터 제법 크기가 실한 것까지 돌아다닌다.

예선씨가 바위를 슬쩍 들추자 숨어 있는 게 한 마리가 아주 빠르게 도망친다. 발로 지그시 도망치지 못하게 누르고 게를 손으로 잡아올리던 예선씨가 비명을 질렀다. 게가 집게발로 예선씨 손을 문 것이다. 이곳에는 소라들도 많았다. 눈에 띄는 대로 주우면 된다. 예선씨는 "먹을 것이 널린 갯벌은 천혜의 자원"이라며 "송교리 갯벌을 잘 개발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낙지를 넣고 라면을 끓였다.
 산낙지를 넣고 라면을 끓였다.
ⓒ 유혜준

관련사진보기


낙지를 잡았으니 이제는 요기를 할 때가 됐다. 바다에서 갓 잡은 낙지를 넣고 끓여먹는 라면 맛은 일품이다. 일단은 산낙지를 먹고, 다음 단계로 낙지를 익혀 만든 숙회를 먹고, 낙지라면을 먹었다. 우리 일행은 4명이었으나, 갯벌에서 만난 이들과 같이 어우러져 십여 명이 되었다. 여럿이 모여 먹으니 음식 맛이 더 난다. 꿀맛이 따로 없고,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라면을 먹고 주변을 깨끗하게 치운 뒤, 우리는 트럭을 타고 갯벌을 떠나 뭍으로 돌아왔다. 훤하게 드러났던 갯벌은 이제 몇 시간 뒷면 자취를 감출 터였다. 그리고 날이 바뀌면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면 주민들은 갯벌로 나가 그물을 거두고, 낙지를 잡고, 게를 잡고, 소라를 주울 것이다.


태그:#낙지잡이, #송교리, #낙지, #화성시, #백미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