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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는 순간 배보다 더 큰 배꼽이... 길 건너 두오모 성당이 보인다
 자리에 앉는 순간 배보다 더 큰 배꼽이... 길 건너 두오모 성당이 보인다
ⓒ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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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렌체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 한국의 편의점이나 교회 수만큼이나 카페가 많다. 아침 일찍 성 조반니 세례당 근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며 느긋하게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일명 두오모 성당)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다. 한 잔에 2유로(약 2800원)가 채 되지 않는 저렴한 가격으로 유러피안이 될 수 있다. 

많은 현지인들은 가게 안에 있는 바 앞에서 주문을 하고 바리스타가 바로 내려주는 커피를 받아 그 자리에서 선 채로 후루룩 마시고 나간다. 아마 출근시간에 쫓기나 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지 않은가. 야외에 마련된 테라스에 앉아 웨이트리스의 서빙을 받으며 이른 아침 피렌체의 향기를 느껴보자.

시간이 지나면서 햇살도 점점 따가워지고 사람들도 많아진다.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멋지고 세련된 손짓으로 웨이트리스를 불러 계산서를 요구한다. 두 명이 마셨으니 기껏해야 4유로 정도 나왔겠거니 생각하면서 1유로짜리 동전을 세고 있는데, 계산서가 이상하다. 분명히 커피 값은 1.5유로 정도였는데 계산서에는 7유로가 넘는 금액이 찍혀 있다. 동전이 아니라, 지폐가 나와야 할 상황이다. 그 때서야 문득 떠오르는 생각, 아…. 이게 소위 말하는 자릿세구나. 외국에서는 테이블에 앉으면 자릿세를 받는다더니 이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된 거 같아 뭔가 속은 기분이다.

마찬가지... 여기서 먹으면 괜찮으련만...
 마찬가지... 여기서 먹으면 괜찮으련만...
ⓒ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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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리에 앉는 순간...?!
 저 자리에 앉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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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포로로마노 뒤 쪽에도 꽤 괜찮은 바(bar) 두어 군데를 찾아냈다. 식사와 술을 함께 파는 곳인데, 바텐더와 유쾌하게 농담을 주고 받으며 저렴하게 푸짐한 저녁 식사와 맥주를 곁들일 수 있다. 만약 마음에 들어 다음 날 다시 가게 된다면, 바에 앉을 수 있기를 기도하자. 만약 바가 다 차서 테이블에 앉게 되면 어김없이 자릿세가 추가된다.

한국에서 여러 여행 관련 블로그 등을 보면 이런 소위 '자릿세'에 대해 다소 불쾌해하는 이들을 꽤 본다. 그리고 자릿세를 아끼는 방법에 대해 나름 여러 가지 노하우가 올라와 있다. 어떤 이들은 문화적 차이니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고 하기도 한다. 한국사람이라면 음식값 외에 별도의 돈을 지불하는 것이 처음에는 누구라도 껄끄럽게 느껴질 것이다. 단순히 문화 차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는 문제지만, 머무는 동안 '왜 이런 문화가 생겼을까?'라는 궁금증은 계속 이어졌다.

피렌체는 현재 인구 36만 명 정도로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시이다.(중세 때는 인구 6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이 작은 도시에서 어떻게 그 짧은 기간 동안 그렇게 많은 천재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엄청난 창의력을 폭발시킬 수 있었던 첫 시작은 무었이었을까?

연세대 김상근 교수는 새로운 창조의 계기 중 하나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재발견이라고 한다. 과거 신이라는 이름 아래에 억압받아 오던 인간성, 즉 인간의 삶과 죽음, 고통과 절망, 희노애락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 전에는 언제나 근엄하고 거룩하기만 하던 예수와 여러 성인들이 르네상스 시대 미술에서는 번민과 고통을 겪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인간성에 대한 재발견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 근대정신의 초석을 다지게 되고 훗날 프랑스 혁명으로까지 이어진다. 인간은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하고, 그 가치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까지도 유럽 여러 선진국의 기본 철학이다.(물론 르네상스 시대에도 여성이나 아이들의 인권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열악했다. 하지만 그 때 이러한 개념들이 움트기 시작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얼굴이 평온하다(중세 작품)-우피치 미술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얼굴이 평온하다(중세 작품)-우피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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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똑같이 손발에 피가 흐르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르네상스 초기)-우피치 미술관
 인간과 똑같이 손발에 피가 흐르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르네상스 초기)-우피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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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철학이 현대에도 유럽인의 삶에 남아있는 사례는 무수히 많지만, 앞서 말한 '자릿세'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메뉴 판에 적혀있는 가격은 커피와 음식의 가격이다. 다시 말해 그것을 서빙하는 종업원의 노력에 대한 가치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바에 앉아 직접 내 손으로 받아 먹고 마시는 커피와 음식보다 테이블에 앉아 먹는 것이 더 비싸게 된다. 나를 위해 테이블을 셋팅해주고 음식을 날라주고, 치워주는 노력 즉 '사람값'을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야박하게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야박한 것은 오히려 우리가 아닐까? 식당에서 식사하다가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의 원가가 과연 얼마나 될 지 나름대로 유추해 본 경험이 다들 꽤 있을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원재료의 가격만을 유추하고 그 외 사람의 노력에 대한 가격을 고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학교 식당 같은 단체 급식의 경우도 재료의 원가만 계산해서 너무 비싸다고 불평하는 경우도 많다.(물론 재료비로 장난 치는 몰염치한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다.)

예전에 꽤 유명한 중견 프랜차이즈 업체의 컨설팅을 맡아 그 프랜차이즈 업체를 1년 넘게 들락거린 적이 있었다. 그 와중에 점주들 대상의 교육자료도 훑어 본 적이 있었는데, 비용을 줄이는 방법에 인건비 부분이 들어 있었다. 그 업체 컨설팅을 위해 여러 타 프랜차이즈 업체의 자료도 벤치마킹 했는데, 어김없이 인건비 절감 방안이 필수적으로 들어 있었다.

우리는 사람값을 쳐주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물론, 손님을 가족같이 생각해서 푸짐하게 주는 주인 아주머니의 인심이나, 바쁜 단골집 사장님을 대신해 냉장고에서 직접 소주를 꺼내오는 손님들의 정감 어린 행위까지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인심 혹은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가치를 무의식 중에 무시해 온 것이 확대되어 사회 전반 곳곳에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음식을 예로 들긴 했지만, 이렇게 사람값을 무시하는 인식이 점점 커져 간다. 정당한 노동자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고, 법에서 정한 각종 야근과 특근 수당을 당연한 듯이 무시하는 기업가들의 인식에는 이러한 문화적 원인 역시 크다. 당장 식당에서 테이블에 앉았을 때 봉사료를 더 내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이거나 향후 노동자가 될 사람들이다. 우리가 제대로 된 노동의 가치를 받기 위해 타인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사람값'에 대해 인식하는 노력이 병행되고 그런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역시 누군가의 사람값을 착취하는 이가 될 수 있다. 서비스를 공짜와 동의어로 생각하지 말자.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구미지역언론협동조합 뉴스풀(www.newspoole.kr)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자릿세, #르네상스,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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