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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실에서 3일, 모란시장에서 3주 동안 일을 해 보았을 뿐인데 왠지 모를 자신감이 붙었다. 이젠 뭘 해도 두려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이라고 했던가. 이 단어를 나도 써먹게 될 줄은 몰랐다. 

두 번의 알바를 실패했지만 다시 도전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른건 몰라도 '오기' 하나는 타고 났나 보다. 내게는 밑천이 없고 가진 것은 몸뚱아리 하나뿐이니까. 어쩌면 오기가 밥 먹여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의 알바 실패... '근자감'이 생겼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막상 하려면 꽤 기술이 필요하다. 반죽을 제대로 넣지 못해 흘리기 일쑤였다.
▲ 호두과자를 굽고 있는 지인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막상 하려면 꽤 기술이 필요하다. 반죽을 제대로 넣지 못해 흘리기 일쑤였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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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가게를 접었던 지인은 이전에 신촌에서 했던 호두과자 노점을 다시 시작한다고 한다. 알바 체험기 두 번째 기사에서 말했듯이 노점은 장소가 제일 중요하다(관련 기사 : '무한리필' 아이스커피, 대체 왜 망한 거지?). 신촌이라는 금싸라기 땅에서 호두과자 노점은 대박에 가까울 만큼 잘 팔렸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곳에 장소를 하나 더 봐두었는데 내가 하겠다고 하면 기꺼이 나에게 그 장소를 빌려주겠다고 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지인 덕을 톡톡히 보아 점유하기 어려운 곳에서 노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장소가 정해졌으니 메뉴를 정해야 한다. 내가 하기로 한 곳의 다른 노점에서는 무엇을 팔고 있는지부터 알아보았다. 거리 노점의 대부분의 히트 메뉴는 역시 '떡볶이와 오뎅, 튀김'이었다. 당연히 그 메뉴는 서너 곳이나 있었고 다른 메뉴도 있었지만 다행히 호두과자는 없었다.

지인은 내가 호두과자를 하면 기계도 외상으로 빌려 주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다른 메뉴를 할 때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려면 호두과자를 하는 수밖에. 내 자리는 다른 자리에 비해서 좀 외진 곳이라 잘 팔릴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시작하기로 했다. 

실패한 호두과자들... 하루종일 배가 안 고프다

생각보다 맛있다. 지나가다 발견하면 많이들 사드시기를...^^
▲ 내가 파는 호두, 땅콩과자 마차 생각보다 맛있다. 지나가다 발견하면 많이들 사드시기를...^^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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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지나고 드디어 호두과자를 팔기 시작한 첫날. 오후 1시부터 준비해 팔기 시작한 때가 오후 4시 즈음이었다. 아직 행인은 그리 많지 않다. 첫날이라 지인이 옆에서 과자 굽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호두 모양, 땅콩 모양의 쇠로 만들어진 틀에다 호두와 땅콩을 넣고 반죽을 붓는다.

보기에는 쉬워 보였는데 막상 만들려니 반죽 넣는 게 힘들다. 적당한 양을 틀에 넣고 익기를 기다렸다 뒤집어야 하는데, 익는 시간을 잘 가늠하지 못해 타기도 하고 덜 익기도 한다. 과자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도 않는다.

"이게 쉬워 보여도 튜브를 잡고 붓는 방법이 다 있어. 엄지와 검지는 튜브의 입구를 잡고 세 번째 손가락과 네 번째 손가락으로 반죽의 양을 조절해야 해."

"알았어. 하다 보면 금방 되겠지 뭐"하면서 튜브를 잡고 틀에 붓는데 처음이라서인지 반죽이 줄줄 흐른다. 모양틀에 정확히 붓는 게 아니라 옆으로 다 흘리고 만 것이다.

"아까운 반죽 다 흘리고 잘 한다."

답답한 지인은 한마디 하며 다시 알려준다.

"왼손으로는 틀 하나에 쓸 반죽 양만큼 잡고, 더 이상 반죽이 나오지 않게 튜브를 접어. 오른손으로는 아까 말해준 방법으로 틀에 붓고."

아, 그렇게 간단하게 보였던 일이 실전에 들어가니 이렇게도 안 될 줄이야. 웬만한 음식은 눈썰미만으로 뚝딱 만드는 편인데 이건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지? 근자감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날씨와 좁은 마차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호두과자를 굽는 인생이라니, 정말 다이내믹하다. 그 와중에도 손님이 왔다.

"호두과자 얼마예요? 중(中)자로 하나만 주세요."

다른 노점은 재료와 도구가 많이 필요하고 솜씨도 있어야 하지만 호두과자는 반죽을 공급하는 곳이 있으므로 받아서 굽기만 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이 일에 숙련되려면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솜씨로 과자를 굽느라 뜨거운 철판틀에 데기 일쑤다.

"앗~! 뜨거워."

눈 깜짝할 사이에 오른팔 측면을 뎄다. 과자를 굽는 틀은 항상 불에 달구어져 있기 때문에 조금만 허둥거리면 왼팔 오른팔 할 것 없이 덴다. 거기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거나 굽는 시간을 늦추면 과자는 여지없이 타고 만다. 새까맣게 탄 과자를 손님들에게 줄 수는 없으니 아깝다고 먹은 호두과자와 땅콩과자 덕분에 하루 종일 배가 고프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는 '알바' 채용할 수 있을까

밤이 되면 환한 전구를 켜고 장사를 하고 있는 노점상들이다. 맛있는 메뉴들이 많다.
▲ 역 근처의 노점들 밤이 되면 환한 전구를 켜고 장사를 하고 있는 노점상들이다. 맛있는 메뉴들이 많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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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를 시작한 지 5일째 되는 날,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인사를 하러 왔다고 소개를 한다.

"저는 이 지역 노점상연합회 사무장입니다. 옆의 분은 지역장님이시고요. 여기서 호두과자 판다는 얘기를 못 들었는데 언제부터 하시게 된 건가요?"
"아, 네에. 5일 정도 되었습니다.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하고요."
"그렇군요. 모쪼록 장사 시작하셨으니 대박 나시길 바랍니다. 어려운 점 있으면 언제든지 상의하시면 되고요. 참, 회비는 ○○원이고 가끔씩 집회가 있으면 참석해야 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제야 노점이라는 것도 조직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우리 사회 서민들이 가장 적은 돈으로 쉽게 접근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인 노점. 하지만 노점은 정부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다. 오히려 시나 관할 자치구는 '거리의 미관을 해친다', '거리에서 파는 음식은 청결하지 않다'는 등 그들만의 기준으로 예고 없이 단속을 한다.

일단 단속이 나오면 대책 없이 모든 수단을 빼앗긴다는 얘기를 노점을 하던 지인들로부터 듣기도 했다. 나도 언제 그 단속에 걸려 마차를 빼앗길지 모르는 것이다. 약간의 두려움이 있기는 했으나 노동절 집회에서 보았던 위풍당당한 노점상 연합회 깃발을 떠올리면서 용기를 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자 호두과자와 땅콩과자 모양이 제법 예쁘게 나온다. 한 번 왔던 손님들도 다시 오고, 왔던 손님들을 기억하고 '또 오셨냐', '맛있게 드셨냐'고 하니 좋아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팔 수 있을까, 노하우를 익힐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전국노점상연합회라는 단체에서 상근하는 후배가 생각났다.

"나, ○○역에서 호두과자 판다. 잘 되는 비법(?)좀 알려줘."
"오~ 언니, 드디어 시작하셨군요! 노점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데 고생이 많겠어요. 전에도 말했지만 노점은 장소가 제일 중요해요. 그리고 메뉴를 정할 때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게 아니고. 그 쪽 지역장님도 계시니까 잘 상의해서 하세요. 처음엔 힘들어도 익숙해지면 할 만할 거예요. 참, 곧 추워지니까 오뎅을 팔면 좋을 텐데..."

그래, '오뎅을 팔아야겠다'라고 마음 먹고 다음 날 양옆에 있는 상인에게 오뎅을 팔아도 되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자기는 오뎅을 팔 수 있는 도구도 다 있지만, 워낙 오뎅 파는 곳이 많아서 못 팔고 있단다. 역시 인기 있는 메뉴는 선점하기가 쉽지 않군. 그래도 나름대로 상도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여름 같았던 9월이 지나고 10월이 되었다. 자고로 노점은 날씨가 추워져야 활기를 띤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매상이 점점 올라간다. 처음엔 재료값도 안 남을 것 같던 매상이 이제 거의 평균을 찾을 만큼 지속적으로 팔리고 있다.

며칠 전에는 빨간 색이 식욕을 자극하는 색깔이라는 게 떠올랐다. '비록 노점이기는 해도 프로의식을 갖자'라는 생각으로 부랴부랴 빨간색 앞치마를 사서 입었다.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에도 '과학'이 숨어 있다는 걸 몰랐지만 과학이고 자시고 매상만 오른다면야 무언들 못하리.

알바 체험기 첫 번째 이야기에 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을 빌미로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왔다(관련 기사 : 학교급식실 실상에 경악... 3일만에 해고됐다). 나는 이제 어엿한 노점인이다. 무언가의 등에 떠밀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한 일이다. 그래서 즐겁게 일한다.

40대 아줌마가 선택할 수 있는 단기 일자리의 현실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체험이다. 인생에서 이렇게 역동적이었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은데, 나에게 그 시간은 쪽방촌에서 활동했을 때와 지금 이 순간인 것 같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오면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고 한다. 어쩌면 그 때는 내가 알바를 채용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달콤한 상상을 하며 오늘도 '똥줄' 타도록 뛴다. 지하철 막차를 놓치면 오늘 일당이 날아가니까.

덧붙이는 글 | 몇 개 안 되는 시리즈의 글을 마칩니다.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태그:#노점,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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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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