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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의 한 부동산 중개소(자료사진).
 서울 동대문구의 한 부동산 중개소(자료사진).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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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집주인과 나의 싸움에서 승리한 쪽은 나라고 여겼다.

기본적인 계약 조건은 이전 집들과 별다를 게 없었다. 다만 집주인이 내건 특약이 하나 더 있었다. 동물을 키우면 안 된다는 것. 이전의 세입자 생활에서도 항상 문제가 되었던 것은 내 반려동물인 고양이였다.

어떤 집주인은 1년 반 동안 고양이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다가 부재중인 세입자를 위한 가스 점검 서비스를 핑계로 내 공간에 들어온 후(돌이켜보면 이것도 참 어이없는 일이다. 내가 없는 집에 집주인이라는 막강한 권리로 문을 따고 들어오다니 엄연한 주거 침입 아닌가) 나를 만날 때마다 '짐승 냄새'를 문제 삼았다. 결국 계약 기간이 끝나기를 기다려 서둘러 이사 할 수밖에 없었다.

공인중개사,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걸까

항상 이사 시기가 되면 집도 집이지만 집주인이 반려동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최대의 고려사항이 됐다. 이번 계약 역시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행히도 공인중개사 아저씨가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가(물론 그 아저씨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빨리 계약을 성사해서 '복비'를 받는 것이 주 목적이었을 테지만).

그는 세입자가 동물을 키우는 것에는 반대한다기보다 동물이 집에 있음으로써 발생하는 민원과 피해가 있을 시에 책임을 묻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건을 제시했다. 물론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 매번 이사 시 자발적으로 도배를 해주고 나왔던 나였다. 고양이 키우는 집은 이렇다 하는 편견을 없애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동의 하에 집 계약을 성사하는 순간 난 나의 승리에 취해 있었다. 이제 눈치 보지 않고 고양이와 살 수 있겠구나.

"그럼, 집 매매도 잘 부탁드려요."

이건 무슨 소리지?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 집주인이 집을 팔겠다는 것 아닌가? 아직 계약서에 도장도 마르지 않은 바로 지금 말이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공인중개사와 집주인은 집 매매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 중이었고, 집이 팔릴 때까지 그 집을 놀릴 수는 없으니 빈집도 관리해 주고, 집을 보러 올 사람이 왔을 때 집을 보여주며, 게다가 매달 월세도 꼬박꼬박 내줄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새로운 계약이 이루어져도 새 집주인의 동의를 얻어, 계약기간 동안 이 집에 살 권리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항을 미리 알았더라면 난 이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황이 생겨 집을 팔 결심을 할 사람에게 잘못을 물을 수는 없다. 어차피 모든 계약의 중간에는 공인중개사라는 '중개자'가 있고, 그들의 행동이 '공인'된 것이기에 우리는 일정의 금액을 지불하는 것 아닌가. 세입자는 공인중개사를 믿을 수밖에 없다. 집주인보다 약자인 세입자의 편이 되어줄 거라는 기대감과 더불어 다른 세입자보다 나를 더 챙겨주는 것 같은 달콤한 말로 마치 내가 특별대우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이 집을 보러 갔을 때 이런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어디 가도 이런 가격에 이렇게 조건 좋은 집 얻기 힘들어요. 내가 학생이 예전에 말했던 게 생각나서 아직 사이트에도 안 올리고 연락한 거야."

그들의 작당에 대한 '괘씸함'과 그렇게나 중요한 부분을 체크하지 않은 내 '부주의함'을 탓하며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 집을 고르는 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던 것을 생각해 결국 이사는 하기로 했다. 

당신이 거래하는 '집'에는 '사람'이 삽니다

자료사진.
 자료사진.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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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과 공인중개사에게 난 누구라도 좋을 소비자였을지도 모른다. 집이 필요한 사람과 집을 넘치게 가진 사람의 상거래. 중개비와 월세를 챙기기만 하면 되는 경제 활동에는 소비자의 환심을 사는 게 중요하지 소비자 입장이 어떤지는 전혀 중요치 않다.

이번 거래에서 집이 팔리는 걸 알았을 때의 내 심정은 그들의 고려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집주인이 바뀌어 이사를 가게 되면, 모든 부담은 집주인이 지게 될 테니 당신은 아무런 손해를 보는 게 없지 않느냐는 그들의 변명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물론 내가 금전적으로 손해 보는 것은 없다. 하지만 이 거래에서 오고 가는 것이 돈이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가끔 집주인에게 연락이 오면 온 신경이 곤두선다. 월세가 밀렸거나, 집을 망가트려서가 아니다.

"집을 보러 온다는데, 언제 시간 되시나요? 잘 부탁 드려요."

내가 집 설명을 잘 못했기 때문인지, 불경기 때문인지, 아니면 집이 팔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은연 중에 전달되었는지 아직까지 집은 팔리지 않고 있다. 집주인은 속이 타겠지만,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계약이 만료되는 날까지 이 상태가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사실 집주인이 월세만 올리지 않는다면 몇 년이고 이곳에서 살고 싶기까지 하다. 그러나 세입자의 집을 향한 사랑은 언제나 외사랑일 수밖에 없다. 세입자가 아무리 집을 사랑한다 한들 그 사랑에 대한 대답은 늘 상처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언제쯤 '방 빼주세요', '월세 올려주세요' 대신에 '집을 아껴줘서 고마워요' 같은 답을 들을 수 있을까.

전국의 집주인 여러분. 당신들에게 집은 단순히 돈을 벌어다 주는 도구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입자에게는 힘든 하루 일을 끝내고 돌아올 쉼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낼 생활터, 꿈을 현실로 구현할 작업터가 되어줍니다. 누군가의 터전을 단지 경제활동의 도구로 보지 말아 주세요. 삶의 터전을 거래할 때는 '돈'보다 '사람'을 먼저 봐주세요.

그리고 이 글을 혹시라도 읽을지 모르는 우리 집주인 아주머니, 저 그냥 이 집과 사랑하게 해주세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나는 세입자다> 응모글 입니다.



태그:#세입자, #월세, #공인중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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