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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지하철 3개의 노선을 1시간 동안 타는 20대 후반의 직장녀 입니다. 지하철 출퇴근 시 특별한 일이 있을까 했는데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사람들을 마주하니 지하철에서 세상을 경험하고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기자 말]

한 때, '김밥천국' , '김밥나라' 등 김밥 프랜차이즈 전성 시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를 홈메이드 김밥이 대신한다.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닌 균형적인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김밥 천원' 찾기 어렵다.

ⓒ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역에서 김밥을 팔고 있는 모습
▲ ▲ 파란모자 김밥아저씨 ⓒ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역에서 김밥을 팔고 있는 모습
ⓒ 임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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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내가 출근하는 것처럼 김밥 아저씨도 역 앞 조그만 가판대를 세우고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김밥 아저씨를 처음 본 건 정확하진 않지만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좋은 2013년 9월 가을 이었다. 이 날을 기억하는 이유는 김밥 아저씨가 장사 하는 곳의 새로운 터전을 역 앞으로 마련하듯이 나 또한 이직을 준비하는 시점이어서 나와 같은 처지에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바쁜 출근길, 나도 그랬지만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 바로 앞에서 김밥 아저씨의 존재가 불편했을 터. 사람들은 김밥 아저씨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났을까? 누군가 말해줬는지 아니면 스스로 깨달았는지 에스컬레이터에서 다섯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으로 터를 옮겼다.

김밥 아저씨는 파란색 챙 모자를 쓰고 있었다. "김밥 있습니다. 김밥 사세요!" 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맛있는 김밥 1,500원" 이라는 문구만을 붙인 채 신문을 보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 모습만 보고 추측하건데 회사를 다니다가 구조조정을 당해서 길거리에 나안게 되었거나 김밥 장사를 크게 하다가 이곳으로 와 장사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궂은 날씨에는 우산을 꽃을 수 있도록 나름 실용적으로 변신해 가면서 김밥 아저씨의 터전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숫기 없어 보이던 김밥 아저씨...며칠 하다가 없어질 것만 같았는데 장사가 꽤 잘되어 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오후 출근으로 여유롭게 역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김밥 아저씨는 가져온 김밥을 다 팔고 아버지 쯤으로 짐작되는 60대 노인과 함께 자리를 정리하는 중인 거 같았다. 매일 보는 김밥 아저씨의 김밥은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그러나 평소 아침 출근 때는 간소하게나마 먹고 오기도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김밥 아저씨만 바라보았지 김밥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난 김밥 아저씨께 가까이 가서 말을 건네었다.

"김밥 있나요?"

김밥 아저씨가 주저 하더니 "여기 있습니다" 하면서 다 싼 짐에서 김밥을 꺼내어 주었다.

이 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밥을 다 팔아서 자리를 정리하는 줄 알았는데 아직 팔지 못한 김밥이 꽤 있었다. 내가 김밥 아저씨를 만났을 때가 9시 쯤 되었으니 더 이상 김밥을 살 사람이 없어 자리를  뜨는 것일까? 자리를 정리하고는 어디로 갈까? 궁금하지만 마음속으로만 물어보았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김밥 하나를 맛보았을 때, 집에서 만든 거 같았다. 김밥 가판대, 나무젓가락 어디에도 김밥 가게를 홍보하거나 연락처가 새겨져 있지 않았고, 5가지 재료가 골고루 풍성하게 들어가 있었다.

1년이 지난 현재 2014년 9월, 김밥 아저씨 옆에 싱그러운 남자 청년 2명이 작은 트럭을 개조하여 커피를 팔고 있다. 김밥 아저씨가 지금의 자리를 1년 동안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역 근처에 김밥집이 없기에 가능했다. 또 역 안으로 들어가면 편의점 김밥이 있지만 같은 금액이면 김밥 아저씨표가 더 맛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밥이 다 팔리지 않은 건 손맛이 느껴지는 심심한 김밥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대기업이 운영하는 편의점 김밥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아니면 김밥 구매자 수 예측을 잘 못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역에서의 아침 장사를 끝내고 남은 김밥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고...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다 나의 추측들이다.

김밥 아저씨가 역에서 자리를 잡을 때와 달리 젊은 청년들이 커피를 판다고 하니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더 보내주고 싶었다. 요즘 바리스타 자격증 따는 게 젊은 층에서 유행인데 커피의 보급화도 있지만 회사를 떠났을 때 동네에 작은 커피숍을 차리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젊은이들은 그 꿈을 조금 빠르게 이룬 건 아닌지? 라는 부러움과 돈 관리를 부모님이 해 주셔서 세상 물정 잘 모르는 내가 변화를 시도할 만한 용기는 있는지? 에 대한 물음이 교차했다.

김밥짚 옆 커피숍, 불행히도 역 앞에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떡 하니 터줏대감과 같이 버티고 있는데...역 앞에 자리 잡은 김밥과 커피숍의 내일은 또 어떠할지 궁금해진다.


태그:#김밥아저씨, #지하철, #출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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