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개학을 하면 학교는 으레 어수선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2~3일 정도가 지나면 대부분의 학교는 방학의 추억을 뒤로 한 채 안정적인 학교 운영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와 달리, 2학기가 시작한 뒤 3주가 지난 11일까지도 여전히 어수선한 학교가 있다. 학교 정문에는 '혁신학교 준비교 선정'이라는 축하 현수막이 눈에 띄지만 학교 내부를 들여다보면 정상적인 학교의 모습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학생생활지도 부재로 인한 혼란도 아니고, 2학기부터 시행된 오전 9시 등교제의 영향도 아니다.

이 학교 화장실 공사 때문이다. 쉬는 시간마다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마실 물이 없어 옆 건물로 뛰어가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이 전교생 800여명 중 절반에 육박한다. 경기도 연천군 OO중학교의 학생들은 개학한 지 3주가 넘도록 화장실, 정수기 사용의 불편을 겪고 있다. 공사로 인한 소음, 분진 등의 피해도 상당하다. 이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로서 답답한 마음에 이 글을 쓴다.

'공사장'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외부 공사도 마무리 되지 않은 화장실 공사 진척 상황
 외부 공사도 마무리 되지 않은 화장실 공사 진척 상황
ⓒ 이선진

관련사진보기


개학 첫 주, 대다수 학생들은 2주 정도만 고생하면 쾌적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선생님들의 설명을 들었다. 학생들은 곧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한다는 기대감으로 불편함을 참으며 생활해왔다. 그러나, 8월이면 끝날 거라던 공사는 어느덧 추석연휴가 지나도 끝날 줄 모른다.

교사들 또한 "언제 화장실 공사 끝나요?"라는 학생들의 물음에 선뜻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늦은 공사로 인한 불편함을 생태계의 먹이사슬처럼 학생들은 교사에게, 교사들은 관리자들에게 토로하는 일이 매일 반복되고 있다.

이는 학교 전반적인 시설을 관리하는 행정실 또한 마찬가지이다. '언제쯤 끝날 것 같다'라는 막연한 추측만 할 뿐 정확한 일정을 제시하지 못한다. 8월 안에 공사를 마무리지어서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행정실의 설명은 허언이 된 지 오래이다.

이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공사의 발주처가 학교 행정실이 아닌 경기도교육청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공사 관련 일정 등을 실질적으로 조정하고 협의할 수가 없다. 혁신교육으로 공교육의 희망을 만들어간다고 주목받는 경기도이지만, 학교 시설 관리에서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소속의 한 중학교에서 전교생의 절반에 해당하는 400여명의 학생이 이용할 화장실이 없어서, 먹을 물이 없어서 3주 넘도록 불편함을 겪는 현실이라니.

이뿐만인가. 수업시간에 시멘트 가루가 날리고, 복도에 공사 자재가 방치되어 있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지역이 농촌이라서 공사가 늦어지는 것인가?'하는 불순한(?) 생각까지 든다. 공사 진척 상황을 볼 때 과연 이 공사가 9월 안에 끝날 수 있을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계단주의라는 게시판이 오히려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듯하다.
▲ 공사장의 한 현장으로만 보이는 학교 계단 계단주의라는 게시판이 오히려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듯하다.
ⓒ 이선진

관련사진보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연천교육지원청가 지난 7월 11일, 해당 학교에 보낸 공문에서 "시설공사에 따른 공사현장 안전사고 예방 및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공사현장 접근금지 등 생활지도로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교실 앞에서 화장실 공사가 진행 중인데, 이런 공문 내용을 학교 현장에서 지키는 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더군다나 학교 관계자들이 공사 업체에 학생들 수업권 및 안전권을 위해 진행에 있어 개선을 요청해도 잘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이 중학교의 화장실 리모델링 공사는 여름방학이 시작한 7월 22일 이후 약 2주가 지난 8월 7일에야 시작되었다. 개학을 열흘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학교에서는 수차례 교육청에 방학 중에 공사를 진행해서 2학기 학사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하지만,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실앞 복도에 방치되어 있는 공사자재
▲ 좁은 복도에 널브러져 있는 자재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실앞 복도에 방치되어 있는 공사자재
ⓒ 이선진

관련사진보기


전국 최초 학교 안전지원국, 악습부터 고쳐주세요

지난 7월 취임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안전한 학교만들기' 공약에 따라 전국 최초로 재난 안전 총괄기구로서 '안전지원국'이라는 부서를 새롭게 만들었다. 안전지원국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안 중의 하나가 각종 학교 공사와 관련한 학생 안전, 기본적인 학교 교육 활동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일 것이다.

학교 시설 공사와 관련하여 탁상행정식 공문 발송으로 단위 학교에만 책임을 떠넘길 게 아니라, 학생안전보장을 위하여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학기 중 공사에서는 상시적인 감독관리 강화로 학생 안전과 교육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추구하는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의 첫 출발점은 거창한 게 아니다. 관행적으로 학생들의 학습권 및 안전권을 위협하는 악습부터 고쳐나가야 한다.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눈감아 왔던 악습들을 고치는 것이 이재정 교육감이 말하는 '안전한 학교 만들기'의 첫 출발이 되어야 한다. 추석연휴 이후에도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학생들의 고통이 하루 빨리 마무리 되기를 바란다.


태그:#학교공사, #연천군, #안전지원국, #경기도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경기도 외곽의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입니다.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등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