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광주비엔날레 앞 광장입구에 불이 타고 있다. 미국작가 '스털링 루비'가 만든 난로에서 연가가 나오고 퀴퀴한 냄새도 난다. 뒤 벽화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터너 상 수상자 영국작가 '제러미 델러'의 대형작품으로 문어가 벽을 뚫고나오는 게 인상적이다
 광주비엔날레 앞 광장입구에 불이 타고 있다. 미국작가 '스털링 루비'가 만든 난로에서 연가가 나오고 퀴퀴한 냄새도 난다. 뒤 벽화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터너 상 수상자 영국작가 '제러미 델러'의 대형작품으로 문어가 벽을 뚫고나오는 게 인상적이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광주비엔날레는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생긴 비엔날레로 제1회 때 관객이 163만 명이 다녀갈 만큼 한국현대미술의 새 장을 열었다. 그 광주비엔날레가 올해 벌써 20주년을 맞았다.

광주 비엔날레가 2014년 5월 세계적 권위의 미술 매체인 '아트네트(artnet)'가 선정한 세계 5대 비엔날레에 이름을 올렸다. 비엔날레의 역사와 관객 수, 예산, 영향력, 큐레이터 등 여러 지표로 산출된 것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 휘트니 비엔날레, 유럽순회 비엔날레인 마니페스타도 5대 비엔날레로 뽑혔다.

2014 광주비엔날레(9월 5일부터 11월 9일까지)에는 올해도 38개국 103작가(111명)가 참가한다. 외견상으로 세계적 수준의 대규모 비엔날레다. 하지만 성년의 나이를 맞아 한 단계 도약할 단계가 되었다. 그래서 창조적 파괴를 통해 다시 현대 미술의 새 장을 펼치고자 '터전을 불태우라'라는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주제를 선정한 것 같다.

이번 주제는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저항 의식을 드러낸 80년대 미국 밴드 '토킹헤즈'의 대표곡을 차용한 것으로, 비엔날레 광장 정면에 영국 터너 상 수상자인 '제러미 델러'가 그린 불타는 전시관을 뚫고 나오는 대형 문어를 상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영국 출신 '제시카 모건'이 총감독을 맡다

2014 광주 비엔날레 국내외기자 및 전문가 초청 설명회에서 이번 전시에 대해 설명하는 영국출신 '제시카 모건' 예술총감독
 2014 광주 비엔날레 국내외기자 및 전문가 초청 설명회에서 이번 전시에 대해 설명하는 영국출신 '제시카 모건' 예술총감독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2014년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은 영국 테이트모던 수석큐레이터 출신인 '제시카 모건(Jessica Morgen, 45)'이 맡았다. 그는 지난 3일 국내외기자 앞에서 "불태운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불태운 뒤 새 피를 수혈하는 것이 중요해 참여 작가 중 90% 이상을 신진 작가로 채웠다"라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전시는 유럽과 다르게 성장한 한국사회와 역사에 대한 연구결과물로 봐도 된다. 불이 어떤 물질을 태우게 되면 그 물질이 변화하듯 다양한 변화를 볼 것이다. 작품 중 터전을 불태우는 작품이 많다. 지리적이든 물리적이든 자신을 가두고 있는 개념을 불태우려는 예술가의 시도를 담으려고 했다"고 말한다.

'이용우' 비엔날레재단 대표도 "터전이 조금 일찍 불탔다"면서 "광주비엔날레는 단순한 현대미술의 전시가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문화·정치·사회·미학적 담론을 형성하는 곳으로 이 자체가 토론의 플랫폼이 된다"라고 했다. 이런 행사가 중요한 건 유럽의 고갈된 상상력을 아시아적 상상력으로 대처할 시대가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광주 포럼에 참가한 구겐하임 수석큐레이터였고 프라다재단 관장인 '제르마노 첼란트(74)'는 "정말 터전이 불타려면 원점으로 돌아가 미술이 자살을 빼고 할 수 있는 모든 대안은 다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이번에 기존제도의 파괴와 방화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일지 아니면 그냥 재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임민욱 작가, 한국사회 터부를 건드리다

임민욱 작가의 퍼포먼스 '내비게이션 아이디' 왜곡된 역사에 대한 재해석이면서 동시에 동서간 감정을 해소하는 화해와 통합의 성격도 띤다. 이 해프닝에 국내외기자들 관심을 보였다
 임민욱 작가의 퍼포먼스 '내비게이션 아이디' 왜곡된 역사에 대한 재해석이면서 동시에 동서간 감정을 해소하는 화해와 통합의 성격도 띤다. 이 해프닝에 국내외기자들 관심을 보였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개막식 전 광주비엔날레 광장에서는 비가 오는 가운데 이번 주제를 한국 상황에 맞게 반영한 '임민욱' 작가의 퍼포먼스 '내비게이션 아이디'가 사람들 주목을 끌었다.

한국전쟁 중 경산 코발트광산과 진주지역에 학살된 민간인 유해가 방치돼 왔는데 그걸 컨테이너 2대에 담아 이곳으로 내려놓았다. 그 유족들이 까만 눈가리개를 한 채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 오월어머니회와 극적으로 만난다. 동서의 지역감정을 넘어 치유의 굿을 벌인 셈이다. 헬기로 항공촬영한 후 비엔날레 전시장에서 재중계된다.

이 퍼포먼스는 한국사회가 금기시하는 터부를 건드리는 것으로 한국역사의 가려진 치욕과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나게 한 작품이다. 역사의 상처를 껴안고 하루를 고통과 절망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여정을 행위예술로 잘 보여줬다.

이와 연관된 임민욱 작가의 설치 작품 '천개의 지팡이'도 인상적이다. 1949년 12월 24일 문경 석달마을에서 민간인학살사건 중 형과 어린 사촌의 시신 아래 깔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채의진 작가가 30년간 슬픔과 분노로 점철된 삶에 맞선 투쟁으로 자신이 모은 나뭇가지와 뿌리로 지팡이를 만들었고 그걸 재구성한 것이다.

권력·체제비판과 왜곡된 역사 재해석 등 

에드워드 킨홀즈 & 낸시 레딘 킨홀즈(미국작가) I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The Ozymandias Parade)' 혼합매체 1985
 에드워드 킨홀즈 & 낸시 레딘 킨홀즈(미국작가) I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The Ozymandias Parade)' 혼합매체 1985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불 I '다이어트 다이어그램' 1992년 작. 몸을 주제로 남성폭력 사회를 고발하다
 이불 I '다이어트 다이어그램' 1992년 작. 몸을 주제로 남성폭력 사회를 고발하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제1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미국작가 에드워드 킨홀즈와 낸시 레딘 킨홀즈의 공동 설치품인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는 해적선을 연상시킨다. 바로 군대와 국가적 권위 형태에 비판적 질문을 던지는 것 같고 권력과 신자유주의체제 등에 대한 저항의식이 엿보인다. 이 작품에는 "당신은 정부에 만족하는가?"라는 설문이 있어 재미있다.

또한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는 '이불' 작가의 1989년 일본거리에서 괴물형상의 솜옷을 입고 벌인 퍼포먼스 다큐멘터리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과 성의 상품화, 군대문화를 비판한 작품도 선보인다. 1980년 말 사회변혁기 끝에 발견한 마지막 식민지라고 칭했던 여성의 문제를 그의 작품에 가감하게 대두시켰다. 

므리날리니 무케르지(인도작가) I '수목생성' 1991-1992. 금속프레임 속 대마섬유. 인도의 전통 재료 쓴 조각으로 예술과 공예같은 경계방식이나 성별 경계도 해체한다. 문명에 반대하는 자연에 대한 찬양이 담겨 있다. 전시벽지가 마치 불타고 있는 것 같은 극적효과를 주었다.
 므리날리니 무케르지(인도작가) I '수목생성' 1991-1992. 금속프레임 속 대마섬유. 인도의 전통 재료 쓴 조각으로 예술과 공예같은 경계방식이나 성별 경계도 해체한다. 문명에 반대하는 자연에 대한 찬양이 담겨 있다. 전시벽지가 마치 불타고 있는 것 같은 극적효과를 주었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제인 알렉산더(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I '보병대와 야수' 2008-2010. 군사력관리, 보안전략, 감시체재, 미디어역할 등 초점 맞추고 인간야수 형상을 통해 인간소외와 종속화를 부각시킨다
 제인 알렉산더(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I '보병대와 야수' 2008-2010. 군사력관리, 보안전략, 감시체재, 미디어역할 등 초점 맞추고 인간야수 형상을 통해 인간소외와 종속화를 부각시킨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제2전시실은 전 세계 빠르게 확산되는 소비 문화와 이로인해 벌어지는 물질적 생산으로 인한 소외감을 언급한다. 제3전시실은 집과 파편화된 도시풍경 등 건축을 주제로 이를 파헤치고 그 토대를 묻는다. 제4전시장은 섹스, 젠더, 급진적 주체성, 규범을 비틀고 전복하는 내용 등의 문제를 제기한다. 제5전시장은 영상작품이 주다.

주최 측에서는 변방의 약자가 보는 시선을 미술담론과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극대화하는 체제에 대한 저항과 왜곡된 역사사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품에 역점을 두었다고 말한다. 언어적으로 소외된 자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듯 문화적으로 표현이 제외된 자에게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의도인 것 같다.

'수목생성'이나 '보병대와 야수'와 같은 작품에서도 위에서 지적한 이번 전시의 테마들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 같다. 파편화된 인간과 피폐화된 자연이 연상된다.

일반 전시와 비엔날레 전시의 다른 점

2014년 9월 4일 광주포럼 발표자 및 토론자 기념사진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퓌순 엑자치바시(사하 예술재단 이사장), 마야 호프만(루마재단 이사장), 니콜라스 세로타(영국 테이트 미술관장), 샐리 탤런트(리버풀 비엔날레 디렉터), 제르마노 첼란트(프라다재단 관장), 모름, 다이 지캉(상하이 젠다이 그룹 회장), 정형민(국립현대미술관관장), 압델라 카룸(아랍현대미술관장), 바르토메오 마리(세계현대미술관협의회 회장), 프란체스카 포사티(바우어그룹 회장), 아네트 쿨렌캄프(카셀 도큐멘타 대표이사), 이용우(광주비엔날레대표)
 2014년 9월 4일 광주포럼 발표자 및 토론자 기념사진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퓌순 엑자치바시(사하 예술재단 이사장), 마야 호프만(루마재단 이사장), 니콜라스 세로타(영국 테이트 미술관장), 샐리 탤런트(리버풀 비엔날레 디렉터), 제르마노 첼란트(프라다재단 관장), 모름, 다이 지캉(상하이 젠다이 그룹 회장), 정형민(국립현대미술관관장), 압델라 카룸(아랍현대미술관장), 바르토메오 마리(세계현대미술관협의회 회장), 프란체스카 포사티(바우어그룹 회장), 아네트 쿨렌캄프(카셀 도큐멘타 대표이사), 이용우(광주비엔날레대표)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그러면 여기서 일반전시와 비엔날레 전시의 차이가 뭔지 궁금해진다.

이번에 총감독을 맡은 제시카 모건은 도록서문에서 비엔날레의 역할은 "지배적인 문화정책과 전통과 유산을 중시하는 일반전시와 다르게 비엔날레는 유동적이고 유연하며 즉각적이고 동시대적이고 주제에 초점을 맞춰 창조적 표현의 스펙트럼 제공이 가능하다"라고 했는데 이번 전시가 자본에서 얼마나 자유로울지 궁금해진다.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 60년대 이탈리아에서 미국의 상업미술에 대항해 값싼 재료로도 시적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주장한 전위미술운동)'라는 용어의 창안자로 유명한 '제르마노 첼란트(위 검은 안경 쓴 사람)'은 앞에서도 그의 말을 인용했지만 그는 비엔날레에 대해 제시카 모건보다 한 발 더 나가 정치적으로까지 해석한다.

"비엔날레와 미술관 전시의 차이점은 뭔가. 그것은 유럽미술관은 전통적으로 제도권 안에 있었는데 국가제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 되는 것이 비엔날레 정신이다. 또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소통의 도구로 독립된 제도가 요구하는 시위의 결과물도 전시될 수 있는 게 바로 비엔날레 정신이다."

이어 그는 "150년 제도화된 미술관이 과연 불탔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미술이 원점으로 돌아가 누구도 어느 시대에도 시도하지 않은 전혀 새로운 대안은 내놓아야 한다"며 "그냥 시스템 변화의 반복이 아니라 시인이나 음악가도 시와 음악으로 정치적 이슈를 언급하는데 미술에선 정치적 이야기가 없다"며 그런 점을 아쉬워했다.

예술경험 확장, 문화민주화시대 과제

제2전시장에는 전시장 풍경. 일반관객, 유명 미술관장, 큐레이터, 전시기획자, 소장자, 국내외 미술부기자 등 다양한 직업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작품을 두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뒤로 '에코 누그로호(인도네시아 작가)'의 캔버스에 자수를 놓은 '도덕적 무정부주의'라는 제목의 2014년 작이 보인다
 제2전시장에는 전시장 풍경. 일반관객, 유명 미술관장, 큐레이터, 전시기획자, 소장자, 국내외 미술부기자 등 다양한 직업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작품을 두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뒤로 '에코 누그로호(인도네시아 작가)'의 캔버스에 자수를 놓은 '도덕적 무정부주의'라는 제목의 2014년 작이 보인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탈리아어로 2년에 1번이라는 뜻을 가진 '비엔날레' 이와 유사한 국제미술행사는 3년마다 일본에서 열리는 '요코하마 트리엔날레'가 있고, 5년마다 독일에서 열리는 '카셀 도쿠멘타'가 있다. 독일식은 완벽성을 추구해 준비기간이 훨씬 더 길다.

결론적으로 '비엔날레'는 예술경험의 확장이라는 면에서 개인의 '삶의 질'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이라는 측면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21세기 문화시대를 맞아 예술적 향유를 골고루 돌아가게 하는 것 우리시대의 과제 중 하나가 되었다.

이번 비엔날레의 평가는 극에서 극이다. 반이정 미술평론가는 인터뷰에서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주제와 관련해서 전시가 응집력이 없고 매우 산만하다. 비엔날레가 일반 전시와 다른 특징을 살려내지 못했다"고 혹평했으나, 다른 언론사 기자는 전시가 짜임새 있다며 호감을 보였다.

내가 보기엔 20년을 맞아 비엔날레의 상투화와 피로감을 없애기 위해 "터전을 불태워라"라는 탁월한 주제에도 2년 전 비엔날레보다 성공적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미디어아트에서도 소홀히 했고, 압도하는 숭고미나 아니면 잔잔한 울림과 감동을 주는, 아니면 머리칼을 곤두서게 할 정도로 전율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2014 광주비엔날레 방문정보] http://www.gwangjubiennale.org/gb/view/



태그:#2014 광주비엔날레, #제시카 모건, #제르마노 첼란트, #터전을 불태우라, #임민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