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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014년 9월 15일 오후 2시 50분]

'싸가지 없는 진보'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진보진영에 '돌직구'를 던진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는 지난 8월에 출간한 그의 저서 <싸가지 없는 진보>를 통해 야권을 비판했다. 지난 2012년 대선 이후부터 최근의 지방선거까지,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선거에서 진 원인으로 '싸가지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의 주장은 "지지층 이외의 집단이 보이는 감정에 진보진영이 둔감하게 반응한 것이 중도 성향의 유권자를 돌아서게 만들었다"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민주당 지지층 중에서 식자층을 중심으로 한 집단이 유권자를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오히려 반감을 샀다는 것이다. 많은 언론사에서 그의 저서와 발언에 대해 기사화하기 시작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이 논쟁에 불을 붙였다. 지난 2일, 진중권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도덕재무장 운동도 아니고"라며 반박에 나섰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는 '싸가지 없음'이 아니라 '메시지 없음'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서 강준만 교수는 같은 날 저녁 CBS의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진 교수 주장에 98% 동의한다"고 발언했다. 그는 "진보의 문제는 메시지 부족"이라는 의견을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나머지 2%의 요인, 진보의 싸가지 없음으로 인해 애초에 메시지 자체가 외면받는 상태라는 점을 역설하며 재반박했다.

한편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진보는 일상으로 가야 한다"며 앞서 거론된 두 사람의 주장을 모두 반박하기도 했다.

중도의 시각에서 진보진영은 '싸가지 부재 상태'

<싸가지 없는 진보> (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08 / 1만 2000원 )
▲ 싸가지 없는 진보 <싸가지 없는 진보> (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08 / 1만 2000원 )
ⓒ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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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강준만 교수의 '싸가지 없는 진보' 담론이 진보진영이 겪는 문제를 잘 지적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옳으니 당연히 따라야 한다'는 논리를 펴던 새정치민주연합의 태도가 중도층의 반발심을 자아냈다는 지적은 이미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난 이야기다.

극우 성향의 누리집 '일간베스트'의 어느 회원은 "민주화 세력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의문을 제기하면 멍청한 사람으로 분류되는게 싫었다"며 자신이 보수 지지자가 된 계기를 발언한 바 있다.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커뮤니티가 자기합리화를 위해 내세운 변명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무시해도 좋은 말도 아니다.

그 뿐만 아니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20대 개새끼론'은,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청년층을 비난하는 민주진영의 태도와 묘한 유사점이 있다. 이러한 태도가 오히려 20대의 분노를 샀다.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는 '20대의 낮은 투표율'이 중장년층의 투표율보다 낮기는 하지만 선거패배의 핵심요인은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감히 야권에 표를 주지 않았단 말이냐'는 자세가 오만함으로 비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할 말만 있으면 싸가지는 문제가 안 됩니다"라는 진 교수의 반박은 다소 잘못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선거에서 지지층의 결집에 몰두하느라 부동층과 중도계열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하는 일에 실패하거나 오히려 반감을 산다면,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은 극히 낮아지기 때문이다.

단지 '옳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만으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진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민주당은 이미 지난 선거에서 승리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인 논리보다 본능적인 감정의 이끌림에 더 크게 좌우되는 존재다. 장구한 인류역사 속에서 이성적 사고가 발휘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점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는 작동 방향이다.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찍어도 좋을 이유를 주는 일'과 '찍고 싶은 대상이 되는 일'이 얼핏 비슷하게 보인다. 하지만 관심이 적어 무심하게 선거판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특히 중도성향의 유권자에게는 확연히 다르게 보인다. 중도 지지층의 입장을 들어보라. 그들은 자신들의 시각에서 보기에 '진보진영은 싸가지 부재 상태'라 말한다.

당위성만으로 표를 달라는 발상, 건방지다

그는 최근 자신의 저서 <싸가지 없는 진보>를 통해 진보진영에게 일침을 가했다.
▲ 강준만 교수 그는 최근 자신의 저서 <싸가지 없는 진보>를 통해 진보진영에게 일침을 가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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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것이 포퓰리즘이거나 지키기 힘든 공약일지라도, 지난 선거마다 새누리당은 지지층의 욕망을 대변하는 동시에 야권의 메시지를 흐려놓는 담론을 쏟아냈다. 더불어 자세까지 낮추어 '도와주십시오'나 '살려주십시오'같은 구걸에 가까운 읍소전략을 선보였다. 지난 몇 차례의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압승이 과연 우연이었을까. 이런 저자세 전략만으로 선거의 당락이 결정됐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이 '경제 부흥'의 슬로건을 걸고 민심을 자극할 때, 민주당은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잘살게 해주겠다'며 보수정당이 표방하던 가치는 그들의 지지층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유권자를 유혹하는 메시지였던 반면, 민주당은 그 욕망을 통째로 부정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지난 7·30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당시 전남 순천 지역구에서 벌어졌던 상황이 그랬다. 이정현 후보는 지역개발을 외쳤던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예산폭탄을 막겠다고 대항했다. 알다시피 선거는 민주진영의 참패였고 이정현 의원이 당선되었다. 유권자의 바람을 인지하지 못하고,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것에 급급한 결과였다. 비록 국정운영을 위해서 후자가 옳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위성만으로 반드시 표를 달라는 발상은 건방지게 보이기 쉽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을 반기고 반하는 이를 거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런데도 지난 선거에서 민주진영의 태도는 "내가 옳으니 너가 손해를 보더라도 나를 찍어야 바람직하다"의 수준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심지어 지금도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열성 지지자를 만족시킬 수는 있겠으나 그 외의 유권자로 하여금 싸늘한 반응을 자아낼 우려가 크다. 거기다 선거패배 이후에도 원인을 내부에서 찾지 못하고 책임회피를 위해 '유권자 개새끼론'을 들먹인다면 유권자와의 균열은 더욱 벌어질 따름이다.

비생산적인 논쟁 접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결국 연이은 선거패배는 '단일화 실패'나 '투표율 저조'로 변명될 사안이 아니라, 유권자의 시각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다.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명제는 듣기에 불쾌하더라도 틀렸다고 쉽게 단언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는 진보가 '싸가지'가 아니라 '메시지'의 부재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분명 새겨들을 가치가 있는 지적이다.
▲ 진중권 교수 그는 진보가 '싸가지'가 아니라 '메시지'의 부재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분명 새겨들을 가치가 있는 지적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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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진중권 교수가 완전히 틀린 것인가? "메시지가 없다"는 그의 지적은 일견 수긍이 된다. 이에 대해서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을 의제로 설정했던 예가 가장 좋았던 사례다. 그 이후의 선거에서 진 교수의 말처럼 야권은 사회에 던질 만한 담론이 부족했다. 진 교수의 비판도 적절한 동시에 민주진보진영에 절실한 것이다.

다만 애초에 이를 논쟁으로 삼은 것, 판을 짜는 방식이 잘못되었다. 진보의 '싸가지'와 '메시지'가 양자택일의 요소가 아니라 모두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주장의 정당성'은 표심을 얻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었다. 마찬가지로 '싸가지', 유권자의 심리를 파악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둘은 상호보완의 과정을 거쳐야 할 요소이고, 동시에 논의해야 마땅하다. 하나만으로는 부동층이나 지지층 바깥의 중도성향 유권자를 자극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이미 여러 번의 선거결과로 보았다.

'진보의 싸가지'를 두고 촉발된 논쟁은 소모적인 설전으로만 이어지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진보진영이 후퇴가 아니라 이름 그대로 앞으로 전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토론의 화제는 '둘 중에 어느 것이 옳으냐'가 아니라 '싸가지를 갖추고 메시지를 던질 자세가 되었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두 가지 요소 모두 중요하지 않다는 양비론도 현재 거론할 논점으로는 적절한 시각이 아니다.

대화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유권자의 욕망에 정당의 방향성을 적절하게 융합하지 못한다면 다음 선거의 결과도 밝게 예측하기는 힘들 것이다. 경쟁자의 논리에서 허우적대지 말고 다양한 의제를 만들어내야 한다. '왜'와 더불어 '무엇을 위해서'가 수반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필수적이다.

이런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현재 제자리걸음인 논쟁의 방향을 당장 바꾸어야 한다. 앞으로 논의가 발전적으로 계속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의제를 선점해야 하는지 되짚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메시지가 대중에게 거부감 없이 와 닿도록 도덕적 우월감을 내려놓아야 한다.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오늘날 총체적 난국에 빠진 야권의 문제는 어제의 '진보 정체성'이 아니라 내일의 '진보가 보여줄 정치'이기 때문이다.


태그:#싸가지 없는 진보, #강준만,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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