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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는 가운데 긴급 출동한 해경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는 가운데 긴급 출동한 해경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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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는 답변은 다르지 않았다.

19일 세월호 선원 9차 공판(광주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임정엽)에 증인으로 나온 해경 헬기 511·512호기 기장들은 지난 재판에 출석한 항공구조사들처럼 세월호 사고 상황을 잘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상황이 긴박했고,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는 대답도 비슷했다. 4월 16일 해경은 하늘에서도, 바다에서도 허둥대고 있었다.

511호기는 사고 당일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헬기다. 조종사 양아무개(47) 기장은 4월 16일  오전 9시 3분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상황실로부터 '맹골수도에서 여객선이 침몰 중'이란 연락을 받고 9시 10분 이륙한 511호기는 9시 27분쯤 현장에 이르렀다. 그런데 양 기장은 "여객선이 침몰 중이라는 것 외에는 (어떠한 정보도) 없었다, 승객 인원도 전혀 인지 못했다"고 말했다.

511호기가 세월호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기회는 몇 차례 있었다. 김춘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5월 공개한 해경 TRS(주파수공용통신) 교신 녹취록에 따르면, 당시 목포해경 상황실은 9시 8분에 모든 국을 대상으로 "현 시각 관매도 남서 2.7마일 세월호 여객선 350명 승선 침몰 중"이라고 알렸다. 9시 45분에는 123정이 "현재 승객이 안에 있는데, 배가 기울어서 못 나오고 있다"고, 3분 뒤에 다시 "현재 승객이 절반 이상 지금 안에 갇혀서 못 나온다"고 말했다. 123정은 그 뒤에도 여러 번 승객들이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양 기장은 "통상 이륙과 동시에 라디오(통신장비)를 켜기 때문에 목포해경 상황실의 교신 내용을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또 출동 중 직접 상황실에 '다른 정보사항이 있냐'고 세 번쯤 묻기도 했는데 응답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511호기가 9시 44분에 승객 6명을 구조, 서거차도 방파제로 이동한다고 교신한 직후 123정이 '아직 배 안에 사람이 있다'고 말한 것도 확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구조 상황에 들어가면 기장은 라디오 볼륨을 줄이고 구조에 집중하며 통신은 부기장이 담당하는데, 부기장 역시 못 들었다고 한다. 정보사항이 없었으니 저한테 보고를 안 했겠죠."

"'여객선 침몰 중' 말고는... 상황실에 물어도 응답 없어"

511호기는 세월호 쪽으로 16번 채널을 이용, 교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123정에 연락을 취하는 등 어떻게든 상황 파악을 위한 노력을 해야 했던 것 아니냐'는 검찰의 질문에 양 기장은 "도착하자마자 구조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답했다. 또 TRS는 항공기 위치나 고도 등에 따라 통신장애가 발생할 수 있어서 교신이 원활하지 않은 면도 있다고 해명했다.

세 번째로 도착한 헬기 512호기 김아무개(44) 기장의 증언 역시 비슷했다. 4월 16일 오전 9시 10분 연락을 받고 출동, 9시 45분에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병풍도 근해에서 여객선이 침몰되고 있으니 구조해야할 것 같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상황실에서 선박 상황이나 승선 인원 등을 알려주는데, 그날 512호기가 출동 당시 전달받은 사항은 좌표뿐이었다. 김 기장은 "중간에 부기장이 목포해경 경비함 3009함과 상황실에 계속 연락했지만 답변을 못 들었다"고 말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는 먼저 온 511호기와 513호기가 이미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고 따로 세월호에 연락하지도 않았다. 김 기장은 "(다른 헬기들로부터) 현장에 도착해 구조 중이고, 세월호가 대형선박이란 얘기만 들었다"고 말했다. 승객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항공기가 많이 투입됐다고 느꼈고, 다들 구조된 줄 알았다고 했다.

512호기는 한 학생을 서거차도에 내려줄 때에서야 아직 여객선 안에 승객들이 많이 있음을 알았다. 정비사로부터 이 얘기를 전달받은 김 기장은 "부기장이 공중을 통제하는 초계기에 무전으로 그 내용을 알렸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512호기가 현장에 돌아왔을 때, 세월호는 선수만 남긴 채 가라앉아 있었다.

한편 4월 16일 당시 선원과 승객, 구조 상황 등을 알려줄 이들의 증언은 20일이면 거의 마무리된다. 이날 열리는 10차 공판에는 해경헬기 513호기 기장과 123정 소속 이아무개 경사, 구조활동에 참여한 어민과 어업지도선 선장, 둘라에이스호 선장이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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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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