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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원점이다. 청와대는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날, 박근혜 대통령이 '경내'에 머물고 있었으며 모두 21차례에 걸쳐서 서면 또는 유선으로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내용은 지난 13일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이 청와대로부터 수령한 내용을 공개하면서 밝혀졌다.

'의전' 때문에 위기관리센터 방문 안 했다는 이상한 해명

4월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구조작업 모습이다.
 4월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구조작업 모습이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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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대참사가 발생한 지 넉 달이 됐다. 왜 그 큰 배가 갑자기 침몰했는지, 왜 구조요청을 받고 출동한 국가기관은 배에 갇힌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는지, 왜 세월호에서 국정원 문건이 저장된 노트북이 발견됐는지 단 하나도 소명된 것이 없다. 대신에 박근혜 정부는 유병언을 추적했고, 그의 사체를 발견했을 뿐이고 그 아들을 구속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의 문제의 7시간.

아직도 당일 '박 대통령 7시간 행적' 의문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경호실과 비서실의 철통 같은 경호와 업무지원을 받는 대한민국 제1의 공인이다. 그 인물의 7시간 동안의 위치를 청와대라는 권력기구가 아직도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만일 주장대로 '경내'에 있었는데도 입증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대단히 비상식적인 상황이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찍어낼' 당시에는 십년 전 과거 자료까지도 확보했던 권력기구답지 않은 모습이다. 

지난 13일 조원진 의원을 통해 해명하려고 한 박 대통령의 사고 당일 '21차례 보고'를 보자. 안보실에서 서면 3회, 유선 7회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비서실에서는 서면 11회를 보고했다. 안보실로부터 유선보고를 받고 박 대통령이 적절한 지시를 내렸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급하면 문서가 아닌 전화로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청와대 주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비서실이 아닌 안보실에 유선으로 지시했다. 국가 안보상황으로 인식했다. 유선보고가 비서실은 없는데 안보실 7회나 있는 이유다. 그런데 그와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대통령 주재 회의는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향후에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4월 1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사고 상황에 대해 보고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월 1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사고 상황에 대해 보고 받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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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소명이 부족하다 생각됐는지 청와대는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청와대는 "대통령은 사고 초동대응 단계에서 현장 지휘와 구조 활동이 회의 개최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수시로 상황보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별도 회의를 개최하지 않은 것"이라며 부연 설명을 내놓았다. 이 해명도 이상하다. '전원 구조'에서 '대량 구조 실패'로 언론에 보도된 것은 사고발생 몇 시간 이후부터였다. 현장 지휘, 구조 활동 모두 정상적이지 않았다면 당연히 대통령이 나서서 사태를 파악했어야 했다.

이해할 수 없는 해명은 계속된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를 방문하지 않은 것도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상주하고 있었고, 방문하실 경우 의전 등 이유로 신속한 상황 파악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배에 갇혀 있는 상황을 전 국민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의전' 때문에 위기관리센터를 방문하지 않았단 말이다. 백번 양보해서 의전 때문에 발생할 혼란을 걱정했다면 국가안보실장을 박 대통령이 머무르고 있었다는 '경내'로 호출해서 보고를 받았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도 하지 않았다.

조원진 의원을 통해 전달하기를 바랐을 청와대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4월 16일 당일 박 대통령은 21차례나 서면·유선 보고를 받았고 지시를 내리는 등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대통령 주재 회의나 국가위기관리센터를 방문하지 않았던 것은 구조활동에 지장을 주거나, 혹시 의전 때문에 혼란이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했던 것이지 '풍문' 때문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자가당착, 8월 13일 해명과 7월 7일 해명의 차이는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7월 7일 오후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한고 있다. 오른쪽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 답변하는 김기춘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7월 7일 오후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한고 있다. 오른쪽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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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3일 청와대의 입장발표는 '자가당착(自家撞着, 스스로의 말과 행동이 앞뒤가 맞지 않음)'일 따름이다. 지난 7월 7일 청와대 비서실에 대한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집무실에 계셨습니까"를 묻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해 "그 위치에 대해서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 발언이 '대통령의 풍문'으로 확대된 것이다.

8월 13일 청와대는 당일 대통령은 '경내에 있었다'고 밝혔다. 이는 한달 전 김 실장이 밝혔던 '대통령 위치를 알지 못한다'와 상충된다. '경내'에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왜 구체적이고, 스스로 입증 가능한 간단한 방법을 외면한 채 새누리당 의원에게 서면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통해서 간접 설명하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풍문'이 사실로 밝혀졌을 때의 '대재앙'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상황은 엄중하지 않은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박연차 사건 조사 당시 검찰은 돈 전달 과정을 밝히겠다면서 청와내 경내 CCTV를 샅샅이 뒤진 바 있다. CCTV가 촬영되지 않은 은밀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더라면 박 대통령의 '알리바이'는 쉽게 증명될 것이다. 청와대에 머물고 있는 스틸컷만 시간별로 몇 장 공개하면 '어디에 있었나'를 둘러싼 '대통령의 풍문' 논란은 종식될 것이다. 경내에 있었다면 당일 대통령 점심 메뉴는 무엇이었나.

사고 당일 대통령 제1보를 안보실에서 했고, 이후 수 차례 서면보고를 했다는 내용은 조원진 의원을 통해서 처음 나온 설명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지난 달 7일 김기춘 실장이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밝힌 내용의 중복일 따름이다.

이 때문에 야당 세월호 간사인 김현미 의원은 "조 의원의 이야기는 국정조사에서 이미 다 나온 것으로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답변은 전혀 안 된다"고 반박하면서 "당시 박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 보고서를 직접 봤는지, 누구와 상의했는지,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지시사항은 적절한 것이었는지를 검토해볼 만한 자료는 여전히 없다"고 주장했다.

7∙30 재보선 압승, 정면돌파로 방향 전환한 정부∙여당...그 결과는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청와대 비서실 답변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난 4월 16일 대통령 보고 시간이 정리돼 있다.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청와대 비서실 답변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난 4월 16일 대통령 보고 시간이 정리돼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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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7일 김기춘 실장의 발언 이후 '대통령의 풍문'에 관한 인상적인 기사를 쓴 매체로는 <조선일보>의 최보식 칼럼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7/18)과 일 <산케이신문> '박근혜 대통령이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 누구와 만났을까?(8/3)가 있다. 두 매체 모두 사건 당일 박 대통령이 누군가를 만났을 것이라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으며 풍문 속 남자로 '정윤회'를 명시하고 있다.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는데 두 매체를 대하는 청와대의 태도가 매우 상이하다. 청와대는 <조선일보> 칼럼에 대해서는 뚜렷한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청와대의 '격노' 반응이 없자 해당 '풍문'은 힘을 얻어갔다. 그런데 해당 칼럼을 인용한 <산케이신문>에 대해서는 청와대 홍보수석이 직접 등장해 강력히 비판하며 법적 대응 운운했다. 왜 청와대는 매우 유사한 내용에 대해 이토록 다른 태도를 취했는가.

두 매체의 보도 중간에 7∙30 재보선이 있다. <조선일보> 칼럼은 재보궐 선거 전에 게재됐다. '풍문 속 남자'라면서 '정윤회'를 특정했지만 청와대는 침묵했다. 7∙30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압승했다. 상징성이 큰 '동작을' 지역뿐 아니라 호남에서도 실로 오랜만에 박근혜의 복심을 내세워 승리를 거뒀다. 안철수와 김한길이 야당 대표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정치를 비판하기 시작했고, <산케이신문> 보도에 대해서는 강력히 성토하기 시작했다.

지난 3일 일본 <산케이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이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 누구와 만났을까?'란 제목의 기사를 실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3일 일본 <산케이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이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 누구와 만났을까?'란 제목의 기사를 실어 논란이 되고 있다.
ⓒ 산케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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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는 세월호를 넘어서 경제를 살려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조심스레 터져 나오고 있다. 때 마침 청와대는 새누리당 의원을 통해 '7시간의 공백'이 아니며, 따라서 풍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을 전달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7시간 동안 경내에 있었더라면 CCTV 사진 한 장이나, <산케이신문> 경우처럼 홍보수석 등 책임있는 사람이 등장해 주장해야 하는데 새누리당 의원을 통해 변호하는 모양새다. 지금 청와대는 국민을 상대로 '간'을 보고 있나.

끝으로 과연 박근혜 정부는 '정윤회'를 언급하면서 '7시간 공백'을 보도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해당 신문은 자체 취재를 하기보다는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한 김기춘 실장 발언과 <조선일보> 칼럼을 주요한 내용으로 인용하고 있다.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을 조사한 이후 검찰은 참고인 신분으로라도 김기춘 실장과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를 조사해야 할 것이다. 넉 달 동안 박 대통령의 '7시간'을 입증하지 못한 청와대가 과연 비서실장이 검찰에 출두해 7시간을 설명해야 할 수도 있는 위와 같은 상황이 달갑겠는가.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청와대는 아직 '7시간'에 대해 자신이 없다. 조 의원을 통한 청와대의 해명으로는 들불처럼 번지는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을 끄기에 턱 없이 부족해 보인다. 여전히 그 7시간은 '공백' 상태로 남아 있다.


태그:#박근혜, #정윤회, #조선일보, #산케이신문,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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